반짝반짝 오색의 윤슬
강원도 설악산 반경의 마을에는 봄도 늦게 오고 겨울엔 특히 해가 짧아 따뜻한 양지쪽에서 쪼그리고 앉아 해를 따라가며 그렇게 어린 시절의 겨울날들을 보냈다. 이제는 관광지로 변해버린 ‘나 어릴 적’의 설악산 자락의 마을들이 내 추운 겨울의 기억과 함께 흑백 사진처럼 아스라히 추억으로 깔려 있다. 장수대 깊은 골, 맑은 물, 밤새 숨을 쉬어도 깨끗한 공기가 내 어린 시절의 보약이었다.
오색약수터에 살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곧장 약수터로 달려갔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약숫물을 받아왔다.
약수로 지은 밥은 연두 빛이 감돌고
달큰한 내음이 나는 향긋한 밥이었다.
언젠가 오색약수터를 방문했을 때, 엄마가 지어주시던 기억을 살려 약수밥을 해보았으나 어릴 적 그 빛깔 고왔던 엄마의 밥은 아니었다. 이 약수는 아마도 유통 시간이 있어서 오색에서 서울까지의 시간을 기다려주는 약효는 아닌듯 싶었다.
내게는 오색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있다. 오색의 마을은 골짜기 냇물을 끼고 양쪽으로 집들이 있었다. 냇물 양쪽으로 군인 관사와 상점들이 있었는데 이 상점들은 주로 지역 특산물과 관광 상품을 파는 곳이었다. 그 시절에는 관광지라고 해봤자 미니스커트를 잘 차려입은 언니들과 군인 아저씨들이 전부였다. 지금도 흑백 사진처럼 히뿌옇게 떠오른다.
내가 살던 군인 관사는 오색의 냇물 하류쯤에 있었고 그 시절 나는 관사 앞 냇물에 쪼르르 내려가서 자주 요강단지를 부시곤 했었다. 그날은 장마가 한창이던 어느 비 갠 날로 기억된다. 장마 중이라 가운데 쪽으로는 흙탕물이 거세게 내려가고 있었고 냇물 가장자리 쪽으로 물이 점차로 맑아지고 있었다. 냇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흘러가는 물에 조심조심 요강을 부시던 중, 조막만한 손으로는 힘겨웠을 요강이 손에서 미끄러져 나간 것이다. 겁이 덜컹 났던 어린 나는 요강을 건지려는 생각으로 거센 물에 뛰어 들고 말았다. 겁도 없지. 요강은 물살을 타고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 야속하게 내가 손을 뻗는 바로 앞에서 유유히 떠내려가고 있었다. 하류 쪽은 물살이 더 거세었고 깊었다. 내 무릎밖에 안 차는 할아버지 댁 마루도 어릴 적 기억으로는 키를 넘는 높이가 아니었던가. 어린 나에게 냇물은 그렇게 깊었고 넓었다.
물살은 세어지고 요강은 내 손 바로 앞에만 있었다.
조금만 가면 그것을 잡아챌 수 있는 거리인데...
요강과 나는 더 이상 좁혀지지 않는 그 거리에 있었다.
흙탕물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보다는 요강을 떠내려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만 으로 온 힘을 다해 점프를 했던 거 같고 어찌어찌 해서 겨우 요강을 움켜 잡았다. 그리고 그다음은 기억에 없다.
그 후 내 머릿속에는 이튿날 개울가에 한쪽만 남아 있던 내 빨간 슬리퍼와 고요하고 맑게 빛났던 냇물의 모습만 남아 있다. 무섭고 두려웠던 기억을 잊고 싶은 기능이 작용한 거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어릴 적에도 그랬지만 무섭고 두려워도 해야 할 일은 꼭 하고야 마는 근성 같은 것이 있는 아이였든 거 같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그런 일들을 하고야 만다. 최근에 박사 논문을 완성할 때도 그랬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것도 한계인데 논문 심사를 앞두고는 진퇴양난이었다. 너무 어려워서 실력의 한계를 느낀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이제까지 한 것이 있는데 뒤로 후퇴도 할 수도 없었다. 포기한다는 것은 그동안의 시간과 열정이 너무나 아까웠고 나중에 후회할 것이 뻔했다. 거기까지가 나의 한계라는 것을 깨닫고나니 막막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걸 뛰어넘어야 했다. 어릴 적 요강단지를 끌어안았던 근성이 남아 있었던 걸까. 나는 기어이 학위를 받고야 말았다. 하루에 1킬로그램씩 살을 내려가면서까지, 그것도 우수 논문상까지 타면서...
기적이 내 인생에 내려앉았던 것이다. 사실 그때의 기도는 영혼을 끌어올리는 그런 간절함이었다. 그 간절함이 50년 전에 오색 냇가에 내려앉았던 기적을 50년이 지난 후 다시 한번 내 인생에 내려앉게 하심이다. 그때 요강단지와 함께 거센 물살에 휘말렸더라면 지금 내 인생은 … 다시 생각해도 기적이다.
한 차례 폭풍 같은 경험이 지나간 다음날, 그 맑고 빛나던 오색의 윤슬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그 깨끗함까지도... 살면서 만나는 기적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너무 무섭고 두려웠지만, 만약 요강단지를 떠내려 보냈다면 나에게 오색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아마도 오색 = 흙탕물로만 기억했을지도….
그 반짝반짝한 오색의 윤슬이 내 기억에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50년 전, 어린 나의 엉덩이를 두드려주고 싶다.
"수고했어, 00야!~ 요강단지 떠내려 보내지 않고 건져낸 거. 아주 잘~~ 했어..ㅎㅎ"
사진 brooke-lark-kXQ3J7_2fpc-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