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후반, 아직 늦지 않았겠지?
28년을 출판사의 북디자이너로 일했다.
열정의 꿈을 꾸고, 바라고, 참고, 견딘 시간들이었다.
이제 다른 꿈을 꾸고 싶다. 그 꿈도 지금과는 방향이 많이 다를 거 같지 않지만
오래도록 즐겁게 할 수 있는 뭔가를 하고 싶다.
28년은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인...
나는 그 시간을 사랑했다. 그것도 아주 열정적으로 살아 냈다.
회사도 일도... 내 삶도 주어진 시간과 상황 속에서 늘 최선을 다했다.
그렇다고 매우 만족은 아니지만 비교적 만족이다.
그동안 열심히 디자인했고 열심히 아이디어를 냈다.
때로 내 아이디어가 회사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난감한 순간들도 있었으나 나는 그것을 내가 앞서가는 탓으로 위로를 했었다. 실제로 내가 제안한 것이 10년쯤 시간이 지난 후에 받아들여지기도 했으니까...
그러니 내 회사 생활은 얼마나 곤고했을지 짐작해보시라.
그러지 않았어도 된다는 것을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마감 5분 전에 알게 된 미련 곰퉁이였던 나...
참 많이도 깨지고 다치고 이제 영혼마저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된 거지.
너무나 익숙한 시간들이 흐르고 있다. 뭔가를 해야 할 거 같다. 회사도 나도 변화가 필요한 거지.
변화가 따른다면 우리 회사는 지금보다는 훨씬 잘 나가는 회사가 될 것이다.
뭔가 현대 경제 논리에 맞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영이 되는
한마디로 신의 축복을 받은 회사의 직원이다. 나는…
느리게 인생을 배우는 나는 아마도 평생 할 일이 많을 거 같다.
신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며 일보따리도 함께 보내신거 같다.
다시 만나는 날까지 늘 끌어안고 다니다가
잘 해결하고 돌아오라는 특명도 내리셨겠지?
이제, 신의 축복을 받은 이 익숙한 나의 일을 곧 접어야 하는 시간들로 서서히 걸어 들어가는 시점에 있다.
그러나 아직 시간이 조금은 있다. 아마도 정각까지 한 5분 정도?
이 기간은 내 의지로 조금 더 일찍 접을 수도 있고 끝까지 갈 수도 있다.
이러다 보니 내 갈등은 태풍이 올라오는 바다의 너울과도 같고
내 심장은 주인의 허락도 없이 툭하면 나대기 일쑤다.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는 거지.
내 나이를 의식하니 더 늦기 전에 몰두할 어떤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이제 차분히 맘을 추스른다. 회사 걱정일랑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고 내 안의 내가 나를 타이른다.
지금 내가 회사를 위해 세운 플랜들은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그리될 것이니 지금은 서둘지 말라고 안위한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며...
나는 이제 그 소리를 들으려고 마음먹었다.
이제 네 인생을 돌아보라고 또 다른 내가 말을 건다.
이제 더는 늦지 않게 하고 싶은 무언가로 그 간의 열정을 옮기라고 독려한다.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고 나의 어깨를 토닥여준다.
내 안의 고마운 내가...
그래서 글을 쓴다. 좌충우돌 나날들을 지내오며 이 나이에 아직도 꿈이 끝나지가 않아서 이 글을 시작한다.
무모 하달 지 용감 하달 지...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딱히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닌데 어쩌자고...
나는 지금, 디자이너로서 에세이스트가 되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
나이를 먹었다고 은퇴가 내일모레라고 해서 꿈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무모한 확신이 어쩌자고 자꾸만 꿈틀거린다. 큰일이다. 또 다른 꿈들이... 이제는 좀 실현 가능하고 오롯이 나를 위한 멋진 꿈을 꾸고 싶다.
아직 늦지 않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