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명 비하인드 스토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김춘수 님의 시 '꽃'이다.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이 표현 때문에 이 시에 끌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이름을 불러주고 그다음에는 이름을 불러준 사람에게로 가서 꽃이 되는 것이다. 수많은 꽃 중에서 꼭 집어 한 꽃을 선택하고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인연이고 섭리이다. 우리는 다 누군가의 꽃이다. 이름 있는 꽃이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그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이 인연이고 섭리이다.
나에게 꽃이 될 존재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어렵우면서 흥미로운 일이다. 누군가의 이름은 다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름 하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니 그 사람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된다. 그래서 아이를 낳았을 때 이름을 짓느라 부모들이 그렇게 애를 쓰는게 아닌지. 나도 그랬다. 정말 특별하고 의미 있는 이름을 골라 내 아이에게 지어주고 싶었다. 그리 고심을 했건만, 20년쯤 지나니까 비슷한 이름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만 그 이름에 목이 메었든 게 아니었든거 같아 슬그머니 보통의 줄에 서 본다. 사람 생각이, 호불호가 다 비슷한 모양이다.
딱히 의미 없는 이름도 있다.
그냥 지나가는 이름으로 붙여준 이름을 가진 바로 나. 내 이름이다.
오랫동안 너무나 부끄러웠던 내 이름 금순.
65년생인 내 이름은 금순인데 오히려 35년생인 우리 시 어머님 이름은 요즘 세대 이름인 가빈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임가빈 씨!
그 시대에 우리 어머님은 그 이름이 그렇게도 부끄러웠다고...
30년의 간극을 두고 이름이 바뀌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싶다. 그랬다면 내가 만족했을까?
내가 태어난 65년생 이름은 주로 경희, 미경이, 은숙이, 미애, 영애, 은실이, 은경이다.
그런데 금순이라니... 다행히 군인이셨고 당시 교회를 잠시 나가셨던 아빠 덕분에 은애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이름도 딱히 빼어나지는 않지만 금순보다는 내 생각에 이쁜 이름이다. ㅎㅎ 모두에게 은애로 불리며 자란 내게 기어코 이름으로 인한 첫 혼란이 찾아왔다.
국민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강원도 설악산 자락에 있는 장수대 국민학교(아마 이 학교는 지금은 없어졌을 것이다. 그때 분교였을 가능성이 크다)에 입학하는 첫날, 내 이름은 낯설고도 낯선 금순이가 되었다.
우리는 만나면 처음에 이름을 물어본다. 누군가를 소개받을 때도 그렇다.
"이름이 뭐예요?"
"너 이름이 뭐니?"
"What's your name?"(왓츠 유어 네임)
"お名前は何ですか"(오나마에와 난데스카)
....
이게 만남에서의 올바른 첫 번째 루틴이다.
드디어 선생님께서 이름을 칠판에 써보라고 하셨다. 자기 이름 정도는 쓸 줄 아는지, 한글은 떼고 왔는지 테스트를 하셨든거 같다. 그런데 우리 엄마 김 여사님!!! 아마도 학교 가기 전에 한글을 가르치시긴 한 거 같은데 호적 이름 대신 '은애'를 가르치셨다. 학부형은 처음이신 분이라 학교에서 호적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을 모르셨던 걸까? 그날 선생님이 한 명 한 명 이름을 칠판에 쓰시며 환영을 해주셨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칠판에 내 이름을 쓰셨다. 그 이름이 낯설고 세상 너무 어려웠다. 내 이름이 아닌 글씨를 쓰시고는 내 이름이라고 하셨으니 어린 내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그때까지 내 이름 은애는 대충 동그라미만 굴리면 되었지만 선생님이 새로 알려주신 '금순'은 나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문자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나는 한글을 제대로 떼지 못한 채 입학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금'자는 적당히 가로획과 세로획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잘 보고 그리면 되었으나 '순'자의 '시옷'이 난감하고도 애매한 문자였다.
어찌하리. 나는 그렇게 어려운 내 이름과 처음 마주한 것이다. 영 낯설고 남의 이름 같은 내 이름을...
10대와 20대의 학창 시절은 이름이 참 많이도 불리는 시기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불리는 이름. 초등학교 때는 아침 조회 시간에 한 번만 불리지만 중학생이 되고 나면 아시다시피 과목마다 선생님이 바뀌니 한 시간에 한 번씩 이름이 불리었다. 늘 부끄러웠던 내 이름, 그래서 마음이 붙지 않았던 내 이름이었다.
30대와 40대를 지나오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름을 바꾸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50대 중반을 넘어선 어느 날 나는 난생처음으로
“이름이 참 이쁘시네요~~” 하는 말을 들어버렸다.
시골에 사는 어느 독자분한테 말이다.
그분의 이름은 김! 순! 이! 하하.
내 이름을 처음 소개하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대중가요가 있다. 짐작들 하셨겠지만 "굳세어라 금순아"이다.어른들이 아니면 선배들이 꼭 나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이 노랫말을 읊었었다. 그때마다 이 노래가 어찌나 싫었던지. 그런데 이 노래가 명곡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이런 역사적인 노래가 요즘같이 트로트가 대세인 시대에 만들어졌다면 국민 트롯이 되었을 노래다. 노래에는 동시대의 역사와 고뇌와 삶의 애환이 젖어 있다. 아마 내 이름은 1950년대의 잘 나가는 이름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모든 시대의 흐름을 바로바로 따라가야 트렌드이지 뒤늦게 따라가면 한물간 유행이 되고 만다.
남아선호 사상이 투철하신 할아버지께서 장남의 첫 손녀가 못마땅해서 이름을 지어주실 생각을 안 하시자, 1940년 초반에 태어나신 우리 막내 고모님께서 "금순이는 어때요?" 하셨고 "그 이름도 나쁘지는 않다"시면서 조부께서 마지못해 승인해 주셨다는 내 작명의 비하인드 스토리.
귀에 낯설고 입에 안 붙는 미운(?) 이름 때문에 원망을 여러 번 한듯하다. 그때마다 그 시절에는 이쁜 이름이었다는 대답이 돌아왔었지. 그나마 서당에서 한자를 가르치시던 조부께서 한자의 뜻을 달리해 주셨다고... '옷깃 금'에 '순할 순'으로... 순한 옷깃? 이 이름의 뜻을 나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딱히 조부님에 대한 원망이 무마되지 않는 내 이름 한자 풀이다. 그러나 이름을 바꾸고 싶을 때마다 이 이름이 대기만성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바람에 촌스럽기 그지없는 이름에 정 붙이며 살고 있다. 사람 앞일 혹시 모르니까?
공식적으로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나를 금순이로 부르지만 가족이나 어린 시절부터 나를 알고 계신 지인들은 아직도 은애로 불러주신다. 아마 금순이가 맘에 들지 않은 사람들이 나를 은애로 불러주려니 생각한다.
아무려면 어떤가. 이제 100년을 꺾어 살아오면서 이름 때문에 부끄러웠던 철없던 시절의 그 시간들에 미안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는 적응을 했다. 평범한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독특하고 특이하고 세련된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다지만, 어쩌랴. 그렇더라도 평범한 인생이 축복임을 알아가는 나이가 되면 촌스럽다고 부끄러워하던 이름도 정이 가는 것을...그러니 현대적인 감각이 뚝뚝 떨어지고 세련미 넘치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싶었지만, 어색한 새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은 부르는 사람도 어색하고 아마 듣는 사람도 어색할 테지?
주변에 개명한 분들이 몇 있는데 여간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다.
끝자가 윤, 서, 빈인 지원이, 지윤이, 서윤이... 뭐 이런 이름으로 바꾸고들 살아간다.
그러나 개명은 사절, 내 이름과 이제는 정으로 살아가는 나이가 되었다. 또 이 나이에는 인생의 눈을 어디에 맞추고 살아가는가가 더 중요함도 배워진다.
나도 이참에 어렸을 때 부르던 이름, 그나마 좀 나은듯한 이름인 은애로 개명해볼까?
나를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들에게 혼란을 초래할까 싶어 접는다.
내 이름 금순, 이제 정 붙이고 남은 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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