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 번의 만짐에...
나이가 들면서 보니 이 세상의 절반은 몸이 이픈 사람들인 거 같다. 몸이 아니면 마음이라도 아픈 사람들… 우리는 대부분 어딘가에 병을 안고 살아가는 중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신 대부분의 일은 병자를 고치신 일이었다.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병든 자를 고치시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바치셨다니 얼마나 감사한가.
몸이 병들었다는 것은 죄의 결과라고도 하지만 어쩌면 병든 자 자신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고 한다. 어쩌다가 몸이 망가지기까지 이르렀을까.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사고로 인해서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무지로 인한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자기 몸의 바른 설명서대로 사용하지 않은 결과이다. 알고도 귀찮아서 모른 채 했거나 아예 몰라서 그랬을 수 있다.
최근에 허리가 아파서 고생한 적이 있다.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아팠었다.
가끔 병원에서 치료도 받았으나 사후약방문으로 급한 불만 꺼왔다.
운동도 하다 말다 하면서 나이를 의식하지 않았다가 이번에 호되게 고생을 했다.
그러고 나서 알아낸 사실... 내 걸음걸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저 편한 대로 '내 몸 사용 설명서'와 무관하게 걸었던 50년 이상의 기간이 내 몸을 여기저기 아프게 한 것이었다. 한쪽 발목이 틀어진 것도 모른 채 잘도 걸어 다녔다. 몰라서 이리되었다니... 웃픈(웃기지만 한편으론 슬픈) 현실이다.
성경에는 모든 재산을 치료를 위해 의사에게 다 바치고도 불치의 판정을 받았던 한 가련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여인에게도 예수의 소식이 전해졌다. 소망이 되살아났다. 예수의 소문에 관심이 고조되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주위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다. 예수께 가까이 다가가기에 병든 몸은 너무나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이었다.
병든 몸으로 최선을 다해 예수께 나아갔던 여인의 이야기가
군중이라는 넘을 수 없는 벽을 한계로 여기에서 멈췄다면 어땠을까.
그렇더라도 나쁜 결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다른 병자를 치료하셨고 군중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약한 인간을 위한 소망에 집중하셨던 그분의 복음은 바로 이것이다.
무리를 헤치고 그 여자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와 주신 것.(DA, 343) 이것이 복음이다.
가까이 가기에 너무 어려운 그분이라 판단하고 소망의 끈을 놓으려는 그 순간에 속절없는 우리에게로 와 주시는 분, 우리의 필요를 먼저 알아주신 그분의 임재를 알아차려야 한다. 몸이 망가지면 마음도 망가진다. 지혜가 둔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탄의 계획이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성령의 계획을 거스르지 않는 한 그분은 언제나 우리에게 먼저 와 주신다. 내 손이 닿을만한 곳까지 말이다.늘 우리에게 먼저 와 주시는 분은 그분이셨다.
예수님께 병 고침을 받은 가장 큰 조건은 늘 확실한 믿음이었다.
이 가련한 여인도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행위로 병이 나은 것이 아니라 옷자락을 만지는 그 한 번의 만짐에 그녀의 일생의 믿음이 집중된 것이었다.(DA, 343)
그 여인의 간절함과 그 믿음이 그녀를 살린 것이다.
폭풍우가 휘몰아쳐 격노한 파도가 일어 금방이라도 뒤집어질듯한 나무판자 같은 선상에서의 제자들의 부르짖음도 이와 같았다. 야이로가 그의 딸의 생명을 간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유대 고관이 자신의 아들의 생명을 위해 예수님께 나아갔을 때도, 거라사의 고침 받은 광인들과 38년 동안 억눌렸던 가버나움의 중풍병자와 문둥병자도...
예수님은 미리 아시고 구원의 손길이 닿을 위치에까지 임하셨던 것이다.
병든 몸으로 예수님께 나아가 일생의 믿음을 집중하여 간구한 자들은 모두 나음을 입었다.
죄로 인한 억눌림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간절함으로 일생의 믿음을 집중하여 간구하는 자를 결코 외면하시지 않는 그분은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사 43:1, 4)라고 말씀하신다.
그분께 이토록 소중한 존재인 나를 깨닫는 순간
내게도 일생의 믿음이 집중된 그 한 번의 만짐이 허락될 것이다.
*4세기 중엽에 쓰인 『외경 빌라도 행전』(The Apocryphal Acts of Pilate) 또는 『니고데모 복음서』(Gospel of Nicodemus)에 여인의 이름이 ‘베르니케’(Βερνίκη, Bernice)로, 이 책의 라틴어 역본에서는 ‘베로니카’(Veronica)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