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시부모님과 20년 살기
시부모님과 20년 살기 시부모님과 20년 살기
좀 과하게 표현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예민한 나는 자다가도 지붕이 무너질까를 염려하면 살았었다. 움직임은 둔하면서도 머릿속은 항상 분주한. 그래서 내 인생의 계획뿐 아니라 남편과 아이들의 미래도 모두 내 손에서 계획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아줌마였다. 나는...
대체로 여자 나이 50이면 신체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인생 갱년기로 접어드는 시기이다. 성격 급한 나는 40 중반부터 이 시기로 접어들었다. 서른 초반에 시작된 결혼, 육아, 직장생활로 분주한 시간들을 소화해 내다 보니 속은 부실, 겉만 멀쩡했다. 이제는 겉도 부실... 첫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에 실패했다는 이유를 궁색하게 붙여본다. 이유야 어떻든 대상포진에, 이른 폐경에 양쪽 어깨의 오십견까지 남들 천천히 하는 것을 내 몸뚱이는 일찌감치 완벽 마스터했다. 늘 작심삼일이었건만 다이어트가 삶의 중요한 루틴이었던 때가 있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말랐다는 소리로 바뀌었다. 보이지 않는 뱃살이 꼭꼭 숨어있기는 하나 어느덧 남들 보기에 말라 보이는 중년 아줌마가 되고 말았다. 나이가 들면 좀 후덕해 보이는 것이 품위인데 나이 들어 말랐다는 것은 이미 성격 고약함을 인정하는 몸뚱이인 것이다. 때로 카리스마라는 그럴듯한 위장술로 대체되곤 하지만 그건 벼랑 끝에 서서 받는 위로일 뿐이다.
회사 일을 왕성하게 했던 시절에는 왼쪽 어깨가 아파서 한동안 고생을 했다. 어깨 통증으로 고생한 첫 번째 경험이다. 이 말은 두 번째 경험도 있다는 얘기. 작년에 그 두 번째로 오른쪽 어깨 오십견, 회전근개 파열, 석회 건염 등 한꺼번에 어깨병이 들이닥쳤다. 잠도 못 자게 아파서 부득불 수술을 했다. 그 후 1년이 넘도록 고생 중이다. 이쯤 되면 누군가에게 이 고통의 화살을 돌리고 싶어 진다. 돌아가신 어머님께 1차로 돌려드린다. 어머님 용서하세요~~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처음에는 시부모님께 얹혀살았는데 살다 보니 모시고 살게 되었다. 20년을 그랬다. 병약하신 시어머님은 곤궁한 삶이었지만 늘 즐겁게 사셨다. 이미 돌아가셨지만 지금도 어머님은 웃는 얼굴로 기억된다. 원체 약골이셨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내 남편에게 삶을 헌신하셨다. 아들을 위한 오롯한 헌신의 삶을 살다가신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셨다.
결혼 후 20년을 나는 남편 와이셔츠를 다릴 일이 없었다. 어머님은 마땅히 당신이 해야 할 일처럼 해주셨다. 그뿐 아니라 3년 터울 우리 두 딸도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어머님이 다 키워 주셨다. 남편과 나의 두 딸들은 어머님께 각별한 존재였다. 물론 나도 딸같이 대해 주셨지만 시어머님이 친정 엄마가 될 수는 없었다고 이제 와서 고백한다. 남의 집 시어머님과 비교되는 우리 어머님이었기에 초반에는 높이높이, 하늘 높이 인정해 드렸었다.
아쉽다. 365일 같이 사는 게 아니라 특별한 날에나 안부가 궁금한 날에 찾아 뵐 수 있는 처지였다면 우리 친정 엄마가 추억하는 나의 할머니처럼 그렇게 담뿍 정 넘치는 고부 사이가 되었지 않았을지... 살면서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었다. 화무십일홍이라고 그 좋은 분과도 한 공간에서 오래 부대끼며 살다 보니 만족이 없는 나는 병이 나고 말았다. 부부 이외에는 다 큰 어른들이 한집에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운 계기였다. 살면서 경험으로 배운 여러 가지 중 실천하면 보상이 따르는 가장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보상은 평안이다. 지금 나는 다 큰 내 딸들과도 따로 산다. 다 큰 어른들이 한 집에 사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아이들은 각자 직업을 갖게 되면서 요즘 젊은이들의 로망인 독립생활을 하겠다고 분가했다. 처음에는 섭섭해서 매일 저녁 눈물바람을 했지만 지나고 보니 참 좋다. "아이들이 오면 좋고 제 집으로 돌아가면 더 좋다."더니 나는 그 말을 백번 공감한다. 딸들이 오겠다고 하면 정말 반갑고 좋다. 어디서 힘이 나는지 할 줄 모르는 요리도 이것저것 힘이 나서 한다. 잘 먹고 나서 돌아가겠다고 하면 ㅎㅎㅎ 더 좋다.
병이 나건 말건 시부모님과 20년을 함께 살았다. 20년의 시간동안 켜켜이 쌓인 애증의 추억을 기록해 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시간은 흐르고 나면 추억이 된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아버님 치매 때문에 조금 일찍 가고 안 계신 어머님을 떠올리면 짠하고 안타깝다. 남편은 나훈아 님의 트롯,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를 읊조리면서 어머님을 떠올린다. 홍시가 나는 이 늦가을에 우리는 그렇게 어머님을 추억한다.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