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처럼 글을 쓰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의 여유가 아주 많다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전 나의 근황은 이랬다. 정신없이 바쁜 일이 끝나고 무기력하게 시간이 가던 즈음이었다. 회사의 경력은 몇십 년이나 되었고 진부한 일상에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나는 늘 또 어떤 새로운 걸 시작할까를 구상하고 있었고 때마침 브런치로 눈이 갔다. 전에 한번 작가 도전에 실패한 경험이 있던 터라 꼼꼼히 준비했다. 지난해 초, 나의 목적은 "브런지 작가 되기"였고 결국 그 목적은 이루었다. 글쓰기를 시작하니 나름 재미가 쏠쏠했다.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뿌듯함은 나를 행복한 글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간간이 올라오는 브런치 작가님들의 댓글은 용기가 되었고 그 내용 또한 격조가 있었다. 나도 품위 있는 댓글로 화답하려고 노력했다. 나의 일상을 기록한 어떤 글들은 조회수가 폭발하기도 했으며 브런치 입문의 나날들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이 새로움이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당시, 늦게 시작한 공부를 마치고 가까스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꽃중년인 나는 대학의 시간강사 모집으로 또 눈을 돌렸다. 이번에는 인맥이 아닌 실력으로 해보리라 마음먹었고 겁도 없이 진*사에 서류를 접수했다. 한번 기회 되면 해보자였는데 발표 기간이 거의 지나도록 소식이 없자 은근 실망과 낙담이 되었다. 나의 도전을 알렸던 지인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비보를 알리며 이제는 브런치에 글이나 쓰며 즐겁게 살아야지 다짐을 하던 즈음, 덜컥 합격이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또 새로움에 입문을 했다.
50 후반을 달려가는 이 나이에도 회사일과 강의를 병행하니 세포가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딸들보다도 한참 어린 제자들을 대하며 나도 젊어지는 듯했다. 행복한 노년을 위해 필수 대인관계 아이템은 젊은이들과 사귀는 것이라고 했다. 이 젊은이들과 더 잘 사귀기 위해 내가 아는 것에 더해 책을 몇 권 더 구입했다. 논문을 쓰던 때 다시는 공부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었건만 또다시 공부를 했다. 이번에는 가르치기 위해서...
대면 수업이었다면 열정적으로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겠지만 비대면 강의는 10년 전 강의할 때랑은 차원이 달랐다. 열정적으로 강의를 준비했지만 비대면 학습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10년 전에 가르쳤던 제자 J가 생각이 났다. 교수님들로부터 그 제자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10년 전 열정적으로 가르쳤던 덕에 나는 소중한 제자 하나를 두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의 SOS를 듣자마자 코로나로 만남을 꺼리던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친절하고 세심하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다. 차근차근 하나하나 아주 꼼꼼히... J는 디지털 세대와 아날로그 세대의 간극을 메워주었다.
언제든 전화를 하면 씩씩하게 받는다. 그리고 귀찮을 법도 한데 친절하게 나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학기가 끝날 즈음 성적을 정리할 때 나는 또 난관에 봉착을 했고 나의 제자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와 내 문제를 해결해 주고 갔다. 이번 학기에는 또 얼마나 도움을 청할지 모르지만 혼자서도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말리라.
게다가 인성과 지성과 품성이 얼마나 아름답게 잘 자랐는지
나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며느리 삼고 싶은 그런 규수로 자라났지 모야.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거지.
학생들에게 강의 평가도 우수하다는 그 애는 자랑스럽게도 나의 제자가 아니겠어?
이제는 어였한 동료 교수님!!!
우리는 같은 대학에서 함께 강의를 하고 있다. 이번 학기 나의 수업은 1교시에서 6교시까지 연강이다. 10년 전 그때도 나는 연강을 했다. 직장에서 하루 휴가 내고 강의를 해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면 수업을 연강으로 진행하려니 오후 수업에는 목소리도 쇠 소리가 나고 음식을 먹을 틈도 없었다. 강의가 끝나면 완전 패잔병의 모습이 되어 있었던 나. 그런 나를 학생들이 안쓰럽게 생각했었다. 직장 일과 학교 일을 병행하려면 몸이 고생을 해야지 별 수없다. 함께 고생하는 몸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이를테면 나의 가족과 나의 직장 동료들...
연강을 하는 나에게 이 제자, '완전 균형 영양식 뉴*어'를 한 박스 보내며
"교수님!~ 지치시지 않도록 강의 중간에 꼭 드세요." 한다.
아이고, 제자님!~.
내 책상 한 켠에 올려두고 강의 중간에 마시고 있다. 그 사랑스러운 마음에 감동하면서...
그저 대학에서 한 학기 만난 인연일 뿐인데 우리는 이런 사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참 소중한 만남이 아닐 수 없다. "J야!~~ 이번 학기 끝나고 우리 만날 때, 맛난 점심으로 보답할게!~~우리 인연 하늘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