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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지나며

광야를 허락하시는 이유는 사랑, 은혜

by 사나래

나는 한때, 내가 말을 꽤 잘하는 줄 알며 살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나는 혀가 둔한 사람임이 증명되는 중이다. 말을 하면서도 다음 말을 잊어버려 무슨 말을 이어가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더러 있다.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수습이 불가능한 것이 바로 잘 못 튀어나온 말이다.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늘 성급하게 내뱉는다. 깊이 생각할 때도 있지만 혼자서 깊이 생각하면 기어코 사고 치러 신나게 나가고야 만다. 반드시 하나님 안에서의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


내가 잘하는 게 많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시절, 그렇게 말만 잘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때 나는 아마도 다른 많은 것도 잘하는 줄로 알고 살았더랬다. 그때, 내 혀가 말랑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말 대신 독한 말을 뿜어댈 때, 하나님을 뒷전으로 내몰고 때로 잊어버리기도 하던 그때(물론 지금도 그때와 별반 차이는 없다.) 변명의 말, 남을 깎아내리는 말,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우월하다는 말들을 허공 중에 수없이 날렸더랬다. 억울한 감정이 들던 많은 순간에 그랬다. 그걸 삭이기가 참 힘들었다. 어리석게도 나의 인내를 사람이 인정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는 동안, 미움은 쉼 없이 꿈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을 만난 후, 조금 개선이 된 거 같았지만 평안할 때는 결코 몰랐다. 누군가 나를 슬슬 긁을 때, 참고자 하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좀 성화되었나 싶은 바로 그때이다.

억울한 순간에 사람에게 말을 하면 불평이 되지만 하나님께 얘기하면 기도가 된다고 했다. 기도가 부족하고 말씀을 건성으로 읽을 때 그래서 내 안에 자아가 가득 차오를 때 함께 들어오는 것이 바로 이 억울함이다. 이걸 내가 풀려하면 원통함이 되지만 하나님이 풀어주시면 은혜가 된다고 한다. 말을 잘 못 하더라도 은혜로운 삶, 이제는 그걸 택하고 싶다. 날마다 행복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니까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는 삶, 그래서 조금은 불행하고 때로 억울한 삶, 편치 않는 광야와 같은 거친 삶이 축복이 아닐까 싶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 시간이 쌓여 그분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이야기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지 아니할 수 없는 간증만 남는 생애를 나는 로망(roman)한다.


모세는 왕궁을 떠난 뒤,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 가나안까지의 광야에서 또 40년을 살았다. 혀가 둔하여 말을 잘 못 하는 사람이라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위하여 말 잘하는 아론을 허락하셨다. 때로는 혀를 풀어주셔서 백성을 인도하는데 문제없게 하셨다. 광야의 80년 동안 모세의 삶은 불평 대신 사랑과 은혜로 점철된 삶이었음은 그가 모세오경을 기록했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광야에서 깨달은 사랑을 글로 간증한 모세는 유창한 말 대신 글 쓰는 축복을 받은 게 아닐까? 성경의 시작 부분을 기록하고 지금 이 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늘에 있으니 얼마나 은혜로운 삶인가.

은쟁반에 옥구슬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일 테지만 말을 잘 못 하는 것 그 또한 축복이다. 혀가 점점 굳어가고 있음이 느껴지고 스스로 할 수 없는 신체적인 제약들이 하나둘 생겨 자신의 무능함이 깨달아질 때, 드디어 혀를 풀어주시는 하나님을 간증할 때이다.


광야의 생활은 우리가 말을 잘하는 시기일 수 있다. 혀가 말랑한 시기, 성급하게 독한 말이 튀어나올 시기, 그래서 하나님께서 혀를 풀어주시기까지 혀를 둔하게 만들어야 하는 시기 말이다.

모세는 인생의 황금기에 40년을 광야에서 지냈다. 광야의 삶은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고통의 시기이다. 그러나 모세에게 그 기간은 준비의 시간이었다. 이어지는 진짜 광야의 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준 기간이었다. 광야의 세월로 인해 모세는 인정 넘치는 은혜로운 말로 조곤조곤 교양 있게 모세오경을 기록했다.

우리도 우리 인생을 모세처럼 교양 넘치는 말로 조곤조곤 기록할 수 있는 은혜로운 광야의 삶으로 들어갈 때이다. 혀가 말랑한 시절도 좋지만, 점점 둔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의 나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이 말씀을 오늘 내가 의지하고 싶다. 나를 시험하시는 시기를 분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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