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평생 사명은 십자가의 예수를 전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로운 시력을 주셨을 때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바라보기로 했다. 그는 “구유에서 올리브 산정까지” 살아가신 예수님의 일생과 죽음에서 살아나심을 전하는 것을 평생의 숙원으로 여기며 살아간 사람이다.
바울이 아덴(아테네)에서 그 타락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별을 전할 때이다. 그리스의 아테네는 학식 높은 사람들과 당대의 내로라하는 철학자들,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등 오늘날 우리가 학창 시절에 배웠을 만큼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지성과 교양이 넘치던 사람들, 장엄한 조각물과 예술품을 작업하던 예술가들, 이렇듯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였던 아테네에서 바울은 전도했다.
논리적인 이론과 웅변의 힘이 필요되었던 곳에서 바울은 논리에는 논리로, 철학에는 철학으로, 웅변에는 웅변으로 대처하였다고 한다(행적, 236).
아테네 사람들은 이방 신을 전하다 죽음을 선고받았다는 우리가 아는 그 소크라테스의 운명까지 들먹이며 전도 활동을 회유하고 겁박했지만 학문과 풍자가 뛰어난 바울은 결국 그들에게서 존경과 감탄을 받아냈다고 한다.
나는 여기까지 읽었을 때 너무나 멋짐 넘치는 바울에게서 감동하며 통쾌한 마음이 들었더랬다. 이방의 신들이 만연한 곳, 그토록 유식한 사람들의 틈새에서 바울은 굽힘 없이 평온하고 침착하게 전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박식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받아들이기까지 마음을 열지 않았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고린도로 전도 장소를 옮긴 후 아테네에서 했던 그 멋진 일을 바울은 낭비된 시간이라고 했다.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당연할 뿐 아니라 그렇게 했어야만 했을 일을 그는 시간 낭비라고 얘기했다. 멋지다고 찬사를 보냈던 내 생각이 무심해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차... 나는 그런 사람이었구나.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 인간의 방법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논리와 웅변과 지식을 더 인정하며 그것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기로”(고전 2:2,4) 결심한 바울이었다.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않고 다만 성령의 능력만을 의지했던 사람이 곧, 바울 선생이다.
그런 바울 선생인데 감히 그 길을 따라갈 수 있을 것도 같은 겁 없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를 향한 성령의 속삭임일까? 바울에게는 노력하지 않아도 충만히 넘쳤던 웅변의 능력이 있었다. 그는 이미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가득 찬 실력가였으며 그가 순간적으로 감동시키지 못할 대상이 없을 만큼 대단한 웅변가였다. 그토록 뛰어난 그가 “감각을 기쁘게 하고 상상력을 만족시켜 줄지는 모르나 매일의 생활에 감명을 줄 수 있는 시적 묘사와 공상적 표현에 몰두하는 대신 단순한 언어를 사용하여 중요한 진리를 마음에 확신시켜 주려고 노력하였다.”(행적, 252)고 한다.
정말 멋짐은, 사업의 성공을 위해 다른 방법 다 접어 두고 예수님의 방법을 선택하는 그것이 아닐까? 바울 선생에게서 나는 이 방법이 배우고 싶어졌다. 글 표현과 묘사가 좋다는 말 대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이라는, 은혜가 되었다는, 예수님을 좀 더 알게 되었다는 그런 말을 듣는 글을 쓰고 싶다.
내가 감히 바울 선생의 인생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바울이 전했던 복음의 콘텐츠 때문이다. 성령께서 내게도 단순한 언어를 허락하셔서 예수님을 만난 나의 경험과 “구유에서 올리브 산정까지”의 예수님의 생애를 전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간 몇 년에 걸쳐서 「시대의 소망」을 묵상해왔다. 이 책은 구유에서 올리브 산정까지의 예수님의 생애가 기록된 책이다. 가끔 어려운 문장들이 있어 이해가 더딘 부분들이 있었는데
「구유에서 올리브 산정까지」가 새로 출간되어 참 기쁘다. 이해를 돕기 위한 단순하고 쉬운 문장으로 바꿔 출간된 이 책을 다시 숙독하여 나도 바울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단순한 말과 글로 구유에서 올리브 산정까지의 예수님의 생애를 조곤조곤 전하고 싶다. 비록 위대한 전도자를 꿈꾸는 건 아니지만 예수님의 생애를 흠모하게 된다면 전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 나는 바울 선생에게서 내 인생에 중요한 것 하나를 또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