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가이다.
모네, 마네 누가 누군지는 몰라도 모네 하면 마네가 따라서 말해진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이다.
인상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상파의 창시자이면서 개척자라고 불린다.
1840년 프랑스 파리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859년 파리로 나가 샤를 글레르의 작업실에서 피사로, 시슬레, 르누아르, 바지유 등과 친분을 쌓게 되었다.
이들은 풍경을 비추는 빛을 보다 자세하게 그림에 담아내기 위해 야외로 도구를 들고 가서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렸다.
마네를 중심으로 르누아르 및 피사로, 드가 등과 함께 신예술 창조하느라 애를 썼다.
1871년, 보불 전쟁 중에는 런던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터너 등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더욱 밝은 색조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귀국 후 1874년 동료 화가들과 함께 제1회 인상파 전람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출품된 작품이 비난과 공격이 어마어마했다.
특히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가장 심한 비난을 받았다.
'인상파'라는 말은 이때 모네의 작품을 야유한 데서 나온 말이었다.
수련 그림 연작, 루앙 대성당 연작 등이 대표작이다.
아주 오래전 파리에 갔을 때 오르세 미술관에 갔었다.
많은 그림들이 있었지만,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을 보고 인상주의를 깨닫게 되었고,
음악에서의 인상주의까지 알게 된 내 인생의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때는 그림을 잘 모르면서 그저 미술관이 좋아서 다니던 시절이다.
그러던 나였어도 내 마음에 들어왔던 그림이 모네의 그림이었다.
그 뒤로 주목받으면서 지금까지 가장 사랑받는 화가이다.
이런 모네의 그림 중에서 <<양귀비꽃밭>>을 나는 선택했다.
그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아름다운 꽃밭.
1873년에 그린 그림이다.
양귀비 꽃
나의 단순한 지식에는 양귀비라 하면 마약의 일종으로만 생각난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잠이나 평화, 죽음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상징 꽃이 되었다.
그런데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에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함께했던 꽃이자 미술사에 획을 그은 명작이 되었다.
그래서인가 모네가 좋아한 꽃은 양귀비이다.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인상, 해돋이>와 <양귀비 들판> 출품하였다.
아내 카미유와 아들 장이 등장하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러나 출품한 전시회에서 미완성 그림이다, 습작이라며 온갖 모욕을 다 들었다.
지금은 나처럼 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모네의 양귀비꽃과 어울리는 음악은 무엇일까?
듣고 싶다, 그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