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 내어놓아야 하는 어떤 것을 찾아서
*사명 : 맡겨진 임무 ㅣ mission ㅣ sense of duty
아이들을 가르쳐서 예술대학에 보내는 일을 10여 년 하다가 '사명'이 아니라 여겨 그만뒀다.
퇴사 다섯 달째.
오지 탐험가처럼 고놈의 사명을 찾는 중이다.
봉착한 난제는 크게 두 갈래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
과연 그런 것이 실제 하는가 or 그저 선택의 문제인가
찾아내야 하는 건지, 선택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있다고 치고 찾는 중이다.
찾다가 선택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어제 황농문 교수의 '몰입'을 읽었다.
그는 젊은 시절 ‘인생을 바쳐 연구를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중, 논문을 쓰는 행위 자체에 매몰된 자신을 발견한다. '어떤' 논문을 쓸지 고민하지 않고현실적인 문제들에 집중하고 있는 자신의 태도가 문제였음을 깨닫고, 인생의 방향을 정하게 되었다는 일화.
정말 중요한 문제
꼭 해결해야 하는 주제를 선택해
최선을 다해 연구하면 후회가 없을 것이다
황농문 -몰입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할 일을 '선택' 해야 한다는 어떤 실존주의적 결론에 도달한 것 같았다. 그 결론에 인사이트를 얻어 나도 사고를 뻗어나가 보기로 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저자의 논문은, 나에겐 앨범이었다.
앨범을 내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숫자들이 늘 나를 괴롭혔다. 조회수, 저작권료, 작품의 수 등에 연연하느라 얼마 없는 에너지를 소진했다. 덕분에 '어떤' 작품을 만들지에 대해 종종 잊었고, 잊는 순간순간마다 좌절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해 몰입하고 있을 때만 행복했다.
내 목소리를 통해
세상에 '내어 놓아야만 하는' 작품은 무엇일까?
벌써 3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그때의 고민이 또렷이 떠올랐다. 내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과 그로 인해 발현되고야 마는 성격장애들을 '동화'라는 메타포를 통해 스토리텔링하는 음악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창작의 과정을 통해 묵은 상처들이 해소될 거라고 믿었고, '진짜 고통을 담아낸 작품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라고 여기는 나의 모토와 딱 들어맞는 계획이었다.
공부와 창작, 자료수집, 가능하다면 전문가의 검증까지 거치고자 한 복잡한 프로젝트였지만, 시작은 논문이라도 쓸 기세로 자신만만했다. 수십 권의 정신분석학과 동화, 민담 관련 책을 사들이고, 논문을 찾아 읽고, 최고로 바빴던 입시레슨을 모두 소화하는 와중에도 묵직한 5곡의 데모를 써냈다.
하지만 6개월 만에 작업은 중단되었다. 무의식을 해 집고 뒤적이는 대부분의 작업들은 자해에 가까운 행위였다. 애초에 심리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조심스럽게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야 했던 것 같다. 무식해서 용감한 나는 셀프로 내 마음속 깊은 곳을 신나게 난도질했고, 이유 모를 괴로움에 지쳐갔다. 그 상태가 지속되자 약간의 장애물에도 쉽게 좌절해 버리는 상태가 되어갔고, 어느 무더운 여름날 항복을 선언했다.
- 애초에 불가능한 계획을 세운 걸까?
- 욕심이 과했던 걸까?
실패의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그것을 생각하는 것조차 지쳐서 그냥 도망쳤다.
하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중단의 이유는 의심이었다.
나는 '왜' 해야 하는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가 그럴싸하고 쓸데없는 무책임한 일이라고 욕하기 시작했다. 내면의 심판관이 신랄하게 나와 나의 프로젝트를 비난했다.
그때 나는 초자아에 대한 곡을 쓰고 있었고, 겁도 없이 그것을 단칼에 해체하려 했다. 나의 영리한 초자아는 몸부림치지 않았고, 매우 비겁한 방식으로 되려 나를 해체했다. 제대로 역관광을 당했다. 창작의 고통을 무책임한 자의 죄책감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완벽하게 속아서 다음 논리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쓸데 있는' 일은 무엇인가? 더 늦기 전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됐다. 레슨을 늘려 레슨으로 도망쳤다. 부동산 주식 경제 유튜브를 들여다보고, 스마트 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아무 데로나 열심히도 도망쳤다. 이 쓸데없고 돈도 안 되는 음악작업만 아니면 됐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어야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던져서 그 일을 하게 되고 그래야 일이 재미가 있고 경쟁력도 생긴다.
황농문 -몰입
나에게 완벽하게 부재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 쓸모없다고 여기기 시작하자,
당연히 작업은 중단됐고,
나의 super ego는 벌크업을 했다.
2년이 흘렀다.
그놈의 음악은 다시 시작하지도, 버리지도 못한 채 레슨 하느라 너덜너덜해진 영혼을 심폐소생하기 위해 밥벌이는 몽땅 때려치우고 이제 사명을 찾겠다고 나선 백수인간 하나가 멋쩍게 남아있다. 마음 한켠에는 당장 앨범작업을 재개하고 싶은 욕망이 드릉드릉한 걸 알지만 흐린 눈으로 못 본 척.
잠깐만... 잠깐만... 그...
나의 사명이라는 게... 음악이 아닐 수도 있잖아...?
이제 음악은 좀... 지긋지긋하다고...
음악을 그만두면 새로운 삶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나는 물음 2로 돌아온다
음악은 내게 실제로 중요한 것인가 (운명적)
중요하다고 스스로 결정한 것인가 (실존적)
음악 외의 선택지가 있는지 확인조차 해 본 적이 없으므로 의심의 한가운데에서 벗어날 방법은 오직 '체험'이다.
'연금술사'처럼 우리 집 앞마당에 보물이 있어도 (이런 제길)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만신창이 빈털터리로 돌아오더라도 무식하고 용감하게 오지로 떠날 타이밍. 비효율을 극혐 하는 INTJ로서 용납할 수 없는 모험의 서막.
진부하지만 내가 뭘 좋아하는가? 로 시작해서
다섯 달째 맨땅에 헤딩을 하고 있다.
그거 하려고 백수 된 거 아니신지.
일단은 하나만 고민하는 거다.
내가 평생에 걸쳐,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서,
세상에 ‘내어 놓아야만 하는’ 것은
지금 당장 '음악이야'라고 답 할 수 없다면
확인해 보는 데에 시간을 쓰는 수밖에 없다
저번 대결에서의 벌크업으로 한층 어깨깡패가 된 초자아가 다시 어슬렁 거리는 낌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선택’했다면 즐기며 ‘몰입’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데,
‘지금 쓸데없는 일로 시간낭비 중인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또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이번엔 알아차렸다. 두 번 당할 내가 아냐. 이번엔 근손실을 선물해 주마 이노무자식.
잘 봐, 초자아랑 언니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