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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Jun 26. 2023

게으름이라는 전략

불행제조 기능을 탑재한 프로 강박러


불안

제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7년 만의 여행이었다.


남편과 비행기를 타본 것도 처음,

6박 7일이라는 긴 여행도 처음이었다.

설레고 불안했다.



여행 직전 나는 퇴사 두 달 차로 접어들며 새로운 삶을 개척해 보겠노라 불타오르던 차였다. 그래서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불안감이 있었다.



이제 막 일상루틴이 자리 잡아 가는데

다녀와서 리셋되는 거 아니겠지?




제주의 5월은 어마무시했다.

나를 ’쉼‘ 의 구덩이로 몰아넣고 가둬버렸다.

7년 만에 허락된 7일의 시간 동안 나는 하늘과 바다와 숲에 둘러싸여 어린애처럼 깔깔거렸다.


내 삶에 쉼이 부재했음을 또렷이 증명하는 시간들.

당장 눈앞의 목적지와 음식메뉴만을 고민하며 씩씩하고 단호하게 척척 나아가는 사이 미래에 대한 정체불명의 불안과 욕심들은 내 뇌 속에서 쫓겨났다.



그 커다란 섬에서 고작 7일간의 숙박료를 결제해 버린 것뿐인데 ‘진짜 쉼’이 시작된 것이다.




08시에 벌떡 일어나고 00시에 기절했다.

하루종일 걷고, 수영하고, 웃었다.



머릿속은 마치 이삿짐 빠진 빈방 같았다.

천장에서 깜빡거리던 형광등조차 마침내 꺼졌다.

아무래도 이 방의 스위치는 7년간 단 한 번도 꺼지지 않았던 것 같다. 제주에 와서야 그 스위치가 꺼진 것이다.



일주일동안 몸은 쉼 없이 움직였는데도 피곤하지 않았다. 꽉 차 있던 뭔가가 해소되고 숨길이 트여 오히려 정신이 맑아진 기분. 이런거구나. 이게 좋은 ’쉼‘ 이다.



행복이 무어냐 물으면 제주라고 답할 기세로 집에 돌아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감옥

나의 초딩적 흑백논리에 의하면 ‘행복=제주, 그 외의 장소=불행’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슬프게도 여행 전부터 드릉드릉하던 내 불안은 현실이 됐고 일상에 끌려온 나는 짜게 식어 껍데기만 남았다.



기상시간, 운동습관, 독서습관 등 애써 만든 모든 리듬이 깨졌다. 그냥 마냥 저냥 저 푸른 초원 위에서 뛰놀고만 싶다.



내 영혼 제주도에 떨궜나?

나란 인간은 애초에 놀면 안 되는 걸까?

잘 놀았으면 더 열심히 살아야지 양심이 없나?



온갖 질책과 비난을 자신에게 퍼부으며 죄책감에 짓눌려 거실에 누워있다.(꿋꿋이 누워있다) 인스타에 제주도 여행사진을 올리며 추억팔이를 한다. 사진을 보며 빙구처럼 실실 웃는다. 잠시 행복하다. 아 이래선 안돼... 일어나라 백수여... 엉금엉금 일어나 청소, 빨래 정도를 겨우 해내고 다시 소파와 합체.



나는 왜 이러는 걸까?



소파와 합체한 평일의 오후-

추억팔이도 어느새 지치고 서글퍼져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의 꼬리물기를 이어가던 중, 나는 내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달았다.



퇴사와 동시에 자기 계발이란 명분으로 나 자신을 쥐 잡듯 몰아붙였다. 오랜 번아웃과 직업적 우울감으로 비쩍 말라가던 스스로를 ‘퇴사’란 이름으로 용감하게 구출해 내는 척하더니,



악랄하게도 단 두 달 만에

남은 영혼까지 탈탈 털어버린 것이다

셀프로.



진짜 나를 찾고 행복을 찾겠노라 뛰쳐나와놓고,

내 손으로 만든 신상 감옥에 '자기 계발'이니, '갓생'이니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나를 가뒀다.



제주 바닷바람과 숲내음 가슴 가득 흡입하고 모처럼 제정신이 된 휴먼이 그 감옥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하다.




불행 제조기능

나는 원체 심신이 항복할 때까지 짜내는 타입이다.

너무 지쳐서 병이 나면 그제야 어거지로 쉰다. 이미 충분히 불행했던 나는 쉼 또한 받아들이지 못해 또 계속 불행해하는 지옥의 루프.



그런 강박의 이데아 같은 내게 일주일의 제주여행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아마도 수년만에 처음, 내 마음이 온전히 쉬어 본 것이리라.



그리고 영원히 쉬고 싶은 상태가 돼버렸다.

참…극단적이야…



더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시치미 뚝 떼고 놀고 있는 게 전혀 홀가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정말 치명적인 못남이다. 쉬지도 못하고 나아가지도 못하면서 그저 괴로운 상태. 아, 너무 익숙해서 반가울 지경인 바로 그 상태!



죄책감, 불안, 자책 등의 (이제는 베프같은) 꾸러미들을 잔뜩 불러 모아 언제나처럼 조금 불행해진 상태를 유지한다. 마치 그 정도의 불행이 게으름의 면죄부라도 되는 듯. 나는 성실하게 불행을 생성해 낸다.



이 불건강한 상태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나의 생각과 감정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음을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 중독적이고 비겁한 상태를

제발 벗어나라 휴먼




문제는 느림과 비움 에 대한 관점이다.

나는 빠름과 채움의 세계에서 허우적 대고있다.

‘느림과 비움’을 패배로 인식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오히려 평온함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그저 느린 상태가 된 것 뿐이다.

방지턱 같은 것을 넘는 중이고

지금 속도를 줄여야 안전하다.




이 상태가 내게 필연적이고 필수적이라는
 진실을 이제 받아들이려고 한다.



수용

느린상태? 휴지기? 이 상태를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상태에 돌입해도 당당하게 행복감을 유지하는 법을 이제 터득해보려고 한다.



인생에서 나를 다그쳐 얻은 것들은 물론 이것저것 있다. 남들보다 더 지독했다는 우월감과 성취에 대한 만족감, 표면적-기술적 성장 그리고 많이 병든 몸과 깨지기 쉬운 정신. 강화되는 강박강박강박.




적자다.

이제 나이가 들고 있다. 몸도 맘도 건강이 우선되어야 하고자 하는 바를 지속할 수 있고, 그게 남는 장사라는 걸 (제발) 알 때도 됐다. 나는 그런 속도와 효율의 사람인 것이다.




적절한 ‘느림’을,

일종의 휴지기를 중간중간 넣어주는 것이 이 비효율적이고 예민한 생명체를 최대효율로 사용할 수 있는 전략임을 깨달을 때가 됐다. 느린 것이 빠른 것이다.




그래서 일단 '게으름'을 예뻐하기로 타협해본다.

어쩌면 지금 최고의 전략은 게으름일지도 모른다.





(초자아 눈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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