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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Jun 11. 2023

갓생이라는 사치

미라클 모닝의 유혹


검색창에 '갓생 사는 법'을 검색하면

몇 가지 항목들이 있다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기

하루 5분 명상하기

출근전 자기계발하기 (학생은 공부)

산책하기

간단한 요리하기

음악, 영화, 간식 등으로 지친 마음 돌보기

퇴근 후 GYM에서 운동하기



음... 이렇게 살면 갓(God) 생(Life)이라고?


막연히 이 신조어에 끌렸지만 내용은 썩 마음에 와닿지가 않는다. 그래서 '갓생의 정의'를 찾아보기로 했고,국립국어원 같은 곳에서 공식적으로 내린 정의는 아니지만 가장 납득이 가는 설명을 찾아냈다.




스스로를 컨트롤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갓생 사는 법입니다. (중략)

갓생 살기의 목표는 뚜렷합니다.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100% 완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일상에 대한 만족감, 성취감을 느끼면 충분합니다.




지금껏 막연히 '갓생'이라고 하면 5:30에 일어나서 요거트 먹고 열공하다가 출근해서 열일하고 퇴근해서 헬스장 가고 저녁으로 두부면 파스타 먹는 건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다. 5:30에 죽어도 못 일어날 나는 이번 생에는 하지 못하는 그런 것인 줄 알았는데.



- 스스로를 컨트롤하며 살아가는 것

-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



이건 나도 할 만하겠는데?

백수가 됐고, 갓생 살아 볼 최적의 상황이 이루어졌지만 그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던 나는 드디어 구미가 당겼다. 기상시간을 당기고 독서와 운동을 시작해 보자!





기상시간

오랜 기간 방과 후 수업을 한 탓에 직장인들과는 사이클이 전혀 다르다. 수업은 4시부터 10시 사이에 이루어지고 저녁식사는 거르는 게 일반적이라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떠들다가 집에 돌아오면 뱃가죽이 등에 붙은 자정이었다. 뭔가를 (살기 위해) 와구와구 먹고 조금이라도 소화시키고 자려면 2-3시에 취침하는 수밖에 없었다. 7-8시간 수면을 채워야 일상생활이 가능한 나로서는 9시 기상도 새벽 같았다.


 그래서 처음엔 9시 기상을 할까 했다. 하지만 '이왕이면 병'이 왜 여기서 도졌는지 욕심이 났다. 7시 기상에 도전한 것이다. 좋아 7시에 일어나서 2시간 정도 모닝루틴 하고 (나에게는) 꿈의 근무시간인 9 to 6를 경험해 보자! 하고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예상과 다르게 시작은 굉장히 수월했다. 난 지금껏 잘못된 직업 때문에 잘못된 삶을 살아왔구나! 싶었을 정도로 7시 기상 후 아침 컨디션은 상쾌했다. 아침식사는 꿀맛이었고, 아침독서는 황홀했다. 무대책 백수임에도 불구하고 아, 나 좀 멋진 듯! 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정한 싸이클로 살 수 있는
행복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그 덕에 도파민 아드레날린 같은 게 쑥쑥 나오는지 달고 살던 만성적인 우울감도 사라졌다. 실컷 돈 벌 때는 나 자신이 그렇게 하찮았는데, 돈을 못 버는데도 나 자신이 귀한 느낌이 드는 대단한 아이러니였다. 그동안의 나는 잘못된 직업선택으로 인생에 수맥이라도 흘렀나 봐. 쥐콩만큼도 없던 에너지조차 상승한 게 느껴졌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열정이 과해 자꾸 2시까지 책을 읽고 7시에 일어나다 보니 피로감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뇌에 뿌연 안개가 끼기 시작한 3주 차, 나는 과유불급을 인정하고 기상시간을 8시로, 취침시간을 1시로 조정했다.




갓생은 사치품

퇴사 한 달 차, 이제 나는 조금씩 루틴을 조정하기도 하고, 공부계획, 운동계획 등을 세워 추가하며 나의 하루하루를 디자인해가고 있다. 말 그대로 스스로를 [컨트롤]하며 살아가고 있고, 나의 계획들을 [실행] 하고 있다는 면에서 의심의 여지없이 갓생을 사는 중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전혀 생산적이지 못하다. 얕은 통장잔고만 바닥 내고 있는 상황에 미래는 불투명을 넘어서 존재여부조차 의심스럽다. 이것이 오랫동안 퇴사를 망설인 이유고, 예측한 상황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덕분에 갓생이란 걸 살아보고 있다.


 사실 매우 사치스럽다고 느낀다. 나의 비대한 초자아는 매일 이 무책임한 여자야! 하며 나를 닦달한다. 에어컨을 오래 켜고 있으면 남편에게 죄짓는 기분도 든다. 월급이 300인데 300만 원짜리 가방을 일시불로 산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도 죄책감도 여전하고, 초자아새키의 속삭임이 스테레오 서라운드로 깔려도, 마음 한구석에 씨익 웃고 있는 한가로운 마음의 나 자신을 본다. 나의 가치를 스스로 존중하고픈 행복한 마음이 이제서야 든다. 아주 본격적으로 사치스러워버릴까 보다. 이러다 5:30에 일어나겠어? 껄껄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뭔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은,

뭔가 분명하고 확실하게 행복해질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퇴사한, 퇴사할, 다시 새롭게 도전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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