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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May 28. 2023

당분간 백수

고독한 킬러의 삶


막연하게 영화 속 킬러들의 삶을 동경해 왔다.


 그들은 한결같이 전문적이고 냉철하다. 잘 훈련되어 있고 절제되어 있으며 행동에 군더더기가 없다. 행동만큼이나 사고도 민첩해서 선택장애도 없고 좀처럼 감정의 동요도 없다. 늘 자신의 몸과 장비를 잘 관리하고 핏자국을 지우거나 폭탄을 만드는 등의 고급기술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시각 청각 후각이 발달해 있고 기억력도 비상하다.


(다 영화에서 본 것이다)


은퇴 후에도 그들은 단조롭고 절제된 생활을 이어간다. 가족이나 연인을 사랑하는 마음도 대부분 아주 1등이다. 전형적인 겉바속촉의 이데아 같은 그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다가 자신의 능력이 필요해진 어느 순간(딸이 납치되었다거나) 폭발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



킬러라고 표현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은퇴한 CIA정도를 상상한 것 같다. 아무튼 간 나는 그런 삶을 너무나 동경해 왔다. 강하고 냉철한 존재, 삶은 단조롭고 고독하지만 자신의 실력을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존재. 정확한 타깃이 있고 그 일을 처리하고, 필요할 땐 여러 개의 아이덴티티를 활용할 수 있는 존재.


사실 타인의 육체를 순식간에 제압하고 무력화할 수 있는 능력을 동경하는 게 아니다. 그 능력을 지닌 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동경하는 것이다.


‘강함’에 근거한 심신의 안녕이랄까.
 그것이 내가 그리는 이상향이다.


그래서 그런 삶을 흉내정도라도 내어 보려고 한다.

백수가 된 김에 말이다.


운동하고 밥 먹고

청소하고 밥 먹고

공부하고 밥 먹고


 몸에 밴 루틴을 따르고, 쓸데없는 생각일랑, 불필요한 불안일랑 접어두고, 엉켜있는 머릿속은 싹 비우고, 텅 비었던 마음속은 꽉 채우고 싶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내가 주장하는 '고독한 킬러의 삶'을 MZ들은 '갓생'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적어도 유사한 점이 있어 보인다. 나무위키에 의하면 갓생 사는 법은 다음과 같다.



1. 일단 6-7시에 일어나 간단하게 준비하고 산책한다.
2.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아침 먹고 9시까지 산책한다.
3. 돌아와서 샤워한 다음에 한 시간 정도 공부한다.
4. 점심 먹고 또 2시간 공부한다.
5. 전자기기 사용하지 않고 20분 휴식한다.

6. 또 3시간 공부한다.
7. 욕조에 물 받고 목욕 후

8. 꼭 과일로 저녁을 먹으며 영화 한 편 본다.
9. 이후 2-3시간 공부하고 잔다.



주 업무가 훈련이 아닌 공부라는 점 외엔 유사하다.

다시 말하면 거기에 뭐라도 대입할 수 있다.

가령 음악가라면 작곡을,

미술가라면 드로잉을.

사진가라면 촬영을.

작가라면 글을.



물론 은퇴한 CIA는 연금이 나온다.

나는 얕고 얕은 잔고가 전부라 기간제한이 있지만, 가능한 기간만큼은 고독하고 절제된 삶을 (그것이 갓생이든 고독한 킬러의 삶이든) 살아보고 싶다.


 단조로운 루틴에서 나오는 차분한 행복의 상태를, 심플하고 밍밍한 무자극의 일상을, 세상에서 한발 떨어져 내공을 쌓아가는 시간을, 감각을 다듬고, 불필요한 불안을 가지 치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고 싶다.


나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재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를 경험해보고 싶다.


그러면 조금씩 예전의 열정이 돌아오지 않을까, 2년간 지속된 지독한 번아웃을 끝내 줄 ‘해내고 싶은 마음’이 그릉그릉 올라오지 않을까, 하고 킬러가 되고 싶은 백수는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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