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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Mar 03. 2024

창백한 푸른 점 위에서

on the Pale Blue Dot

4년 만에 음악을 발표했다.



‘꿈이 없는 게 행복의 지름길 일지도 모른다’는 회의적 확신으로 가득한 곡이다. 몹시 강박적이고 회피적인 이유로 정식발매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미발매곡인 것이다. 1년 만에 12곡을 써서 발매 때리던 불도저 여자는 사라지고 4년간 아무것도 발표하지 않았다. 곡을 쓰기는 했지만 다음단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곡을 쓰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세상’



곡을 완성하면 믹스마스터를 맡기고, 유통을 의뢰해야 한다. 타인과 소통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야 나의 곡이 세상과 만날 수 있다. 내 새끼가 세상을 만나려면 내가 먼저 세상을 만나 처리해야 할 일들이 기어코 있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장애물이다. 이대로는 다음 곡이 다음 생에 나오지 싶어, 이번에는 ‘공개’에 방점을 찍기로 했다. 퀄리티는 아쉽겠지만 믹스마스터를 직접 하고, 음반사를 통한 유통은 건너뛰었다.



하지만 두 번째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다. 발표 후 세상의 반응을 (혹은 무반응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늘 괴롭다. 발표 전부터 반응을 (혹은 무반응을) 예측하면서 반드시 비관에 빠지고야 마는 가련한 자는 극도로 예민해진다.


앨범이 나오기 몇 주 전부터 시작되는 이 병은 발매 후에도 몇 주간 지속되고 거의 한 달간 입맛이 뚝 떨어진다. 창작의 고통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과의 관계를 나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아, 그래서 그만뒀었구나?



지난밤 ’shortcut‘ 을 발표하고 그제야 그 분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도망가고 싶다. 반응과 무반응이 나에게 몰려온다. 나의 노래에 점수를 매기는 듯한 조회수와 좋아요 수 등의 숫자들이 나에게 몰려온다. 모른 척하고 싶다. 매운 닭발을 시켜서 뜨겁게 먹었다. 눈물과 엔도르핀이 솟는다. 이걸로 극복이 될까?



예민한 와중에 나름 소중하게 여기는 가까운 타인들의 무관심은 나의 슬픔에 기름을 부었다. 4년이 아니라 44년만의 발표라도 그들은 관심 없을 것이다. 세상은 나의 하찮은 노래엔 아랑곳없이 돌아가고, 나의 노래는 헛되이 울려 퍼졌다. 아니 울려 퍼지지도 않는다. 풀타임은 2분 55초지만 평균 재생시간은 1분 35초니까. 숫자들아 제발 꺼져. 님아 제발 그 인사이트에 들어가지 마오.



‘이걸 해서 뭐 하나 병’이 암처럼 번지는 실망의 한가운데에서 듄을 봤다.



비탄에 잠긴 나를 듄이 구원했다.

벌레를 타고 사막을 횡단하는 무앗딥이 나의 가슴을 웅장하게 한다. 현실도피와 철학적 깨달음의 사이에서 나의 마음은 불안하게 자리 잡는다. 프랭크 허버트, 드니 빌뇌브 그리고 돌비 애트모스에게 나의 물을 드립니다. 퉤.



엄청난 세계관과 대서사의 여정에서 가장 나의 가슴을 울린 것은 ‘사막의 샘’ 챠니의 삶이었다. 종일 마음이 상해 반추적 사고를 쌩쌩 돌리며 나의 분노는 무한증식 중이었다. 하지만 사막 한가운데 선 한 여자의 삶에, 여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워리어로서의 챠니의 삶의 경이로움에 나의 분노는 차게 식었다.



내 마음 속에 잠들어 있던 전사가 오늘 깨어나는 걸까?

하지만 무엇을 위해 누구와 싸워야 하는 건가.

나의 적은 나인 것을.  



창백한 푸른 점 위에서,

한알의 모래 알갱이 같은 나는

뭘 그리 끙끙 마음 쓰고 있는 걸까.




FANXY - Shortcut

https://youtu.be/wDH6G4X2RPU?si=-bxU8Jd5KaoamT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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