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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Jun 29. 2024

초조한 날들에 부치는 편지

<상처 없는 계절>, 신유진, 마음산책

담아. 요즘 나는 기도인지 다짐인지 모를 메모들을, 조각 일기들을 자꾸 써. 무언가 기록하고 글로 남길 때에야 마음을 다독일 수 있어. 나는 불안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잖아. 이 순간들이 휘발되고 사라져 무엇도 남지 않을 거라는 불안, 나라는 존재도 희미하고 텅 비어있다는 불안을.

 

오랜만에 좀 많이 울었어. 울고 나니 그나마 개운해졌어. 주기적으로 우는 날을 만들어야 할까 봐. 슬픈 영화를 틀어 놓고 우는 날 같은 거. 그렇게라도 눈물을 빼내면 몸 안에 고여있던 울적함의 수위도 낮아지지 않을까? 이 편지를 쓰는 것도 슬픈 영화를 보고 우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 혼잣말을 밖으로 꺼내어 몸속 불안의 압력을 빼는 일.


돌이켜보면 누군가를 향해 썼던 모든 글이 내게로 되돌아왔던 것 같다. 기쁜 이야기는 내 마음의 기쁨의 자국으로, 슬프고 아픈 이야기는 작은 성장으로. 그러니 글쓰기란 결국 보내는 말이 아니라 맞이하는 말이 아닐는지.


담, 너를 만났을 때에 나는 연극을 준비하고 있었어. 일주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르바이트 전에는 글을 쓰고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에는 연습실에 가던 생활. 그때에 나는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들뜬 기분과 이 공연이 끝나면 직장을 다녀야 한다는 착잡함,  동시에 이젠 이 불안정한 생활을 끝낼 수 있다는 홀가분함을 오갔어. 그 공연은 미련을 털어내기 위한 작별 의식이었거든. 네겐 그 얘기를 하지 않았어. 너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사람이었고 창작자하고만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할 만큼 친구들에게도 너만큼의 안간힘을 요구했으니까. 나는 부러 내가 준비하는 연극, 좋아하는 작가와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쏟아내곤 했어. 그렇게 나 역시 무언가 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으로 네 옆에 있고 싶었으니까.


연극을 마친 뒤 나는 곧장 취업 센터에 등록했고 디자인을 배워 일을 시작했어. 너와는 다른 이유로 멀어졌지만 그런 내 모습 역시 우리가 멀어지는 데에 일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란 단어를 아주 미워하게 되었어. 꿈을 가졌을 때에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 한없이 초조해 했고, 꿈을 포기한 후로는 무엇도 이루지 못한 나의 지금이 보잘 것 없어 보여 내가 너무 초라했지. 무언가를 열망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나누던 친구들, 우리가 함께 한 낮과 밤을 모두 잃어버린 듯했어. 


내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는데, 왜 아무도 우리에게 꿈 바깥의 삶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나는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에도 무엇이 되지 않았을 때의 삶을 사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무엇을 하든 나로서 사는 일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꿈에서 걸어나와 그 바깥을 사는 내게 중요한 것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루는 방법이 아니라, 간절히 원하지는 않았지만 내 앞에 나타난 이 현실을 유쾌하게 끌어안는 법이다. 현실에 꿈이라는 환상 한 방울을 섞는 법 말이다.


그후로 오랫동안 내가 꿈을 포기했다는 사실에 패배감을 느꼈어. 무언가를 아주 아했던 마음이 열패감이 된다는 게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아서 나는 되물었어.


이루지 못한 꿈은 실패가 되는 걸까?

좋아하는 마음이 무언가를 이뤄야 하나?

부족한 애정이란 게 존재하나?


내 주변에도 꿈을 이루지 못한 친구들이 대부분이야. 우리는 소설가가, 미술 작가가, 배우가, 영화 감독이, 가수가 되길 꿈꿨지만 원했던 이름을 갖지 못한 채 그 언저리를 서성이고 있지. 하지만 언저리에 있다고 해서 우리가 품었던 마음이 진심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 꿈을 미워해서 버리고 멀리 달아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멀리 가도 나는 여전히 꿈의 영토 안에 있더라. 그게 비록 변방이더라도. 나는 우리 안에 우뚝 서 있는 그 깃발 같은 애정을 알아. 


담, 너는 무언가 되기 위해 여전히 안간힘 쓰고 있어? 그렇게 무언가 되지 못한 지금을 버티고 있을까? 우리가 함께 했던 날들에 그랬듯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신 뒤 그제서야 슬픔과 불행을 털어 놓으며 웃고 울고 있어?


사는 일의 버거움과 두려움, 비루함 같은 것들. 내가 말을 꺼낼 때마다 침묵 속에서 나의 말이 대답처럼 들렸고, 그때 나는 비로소 내가 나를 얼마나 아프게 찌르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내게 침을 뱉고 가는 사람처럼 나는 나를 모욕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날 고독이 내게 가르친 것은 ‘나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누구도, 그것이 설사 나일지라도 내게 모욕을 던지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더는 내가 도달한 지금을 미워하지 않아. 안간힘을 써야 한다면, 나를 모욕하지 않는 데에 쓸래. 내가 지키고 싶은 건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야. '내가 이걸 아주 좋아하는구나.'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그 순전한 애정으로 충분해져.


우울과 불안은 어지간히도 끈질기게 돌아오는데 날씨는 얄궂을 만큼 부드럽고 잔잔하다. 푸르른 나무들이 나긋하게 흔들리는 날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 아주 잠시일 날씨야. 눈물이 나기도 하고, 애정을 매만지면서도 괜히 초라해지기도 하지만 나는 이 계절 속에 있어.


 편지가 당도할 곳에 내가 전하고 싶은 것은 내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것, 바로 지금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이 드는 날은 겨우 찾아오지만 이렇게 썼으니 또다시 내가 미워지는 날, 나에 멸시해 버리고 싶은 날, 이 편지를 다시 읽을 수 있겠지. 담아, 무엇이 되었거나 혹은 무엇이 되지 못한 너의 서늘한 날들에 이 계절의 사근한 바람을 보내. 무엇이 되기 위해 애썼던 우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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