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완주는 오롯하다. 열렬한 기세로 자라나는 잡목과 짙어지는 녹음. 국지성 폭우로 수위가 높아진 강은 짙은 흙색이 되어 꿈틀거리며 흐른다. 강가의 수풀은 주기적으로 잘라내도 금세 무릎 위로 올라온다.
거대한 힘으로 요동치는 한여름의 생명력. 나를 해치고 싶은 마음, 비관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무성한 초록색 앞에서 뭉개진다. 살고 싶다. 살아내고 싶다.
고산과 서울에서 일상은 비슷한데도 고산에서는 우울감이나 무기력이 찾아오는 빈도가 현저히 낮다. 찾아온대도 오래 이어지지는 않는다. 몸을 움직여야만 배를 채울 수 있으니까. 서울에서라면 누운 채로도 집 앞까지 음식이나 식료품을 받아볼 수 있지만 고산은 아니다. 요리하는 게 영 귀찮아 컵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싶어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아이스크림 하나가 간절해도, 따뜻한 라떼가 땡겨도 시동을 켜고 달려 나가야 한다. 때로는 도통 마음이 잡히지 않아 안 먹고 버티기도 한다. 근데 그거도 나름대로 재미있다. 훈련하는 기분이 드니까. 보통의 경우는 팔을 높이 뻗어 스트레칭하고 나를 북돋는다. 자, 움직이자!
고산 숙소 주위는 온통 논밭이다. 식료품을, 커피를, 아이스크림을 사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의 풍경은 이렇다. 양옆으로 펼쳐진 푸른 논밭, 그 뒤로 마을을 감싸고 있는 나즈막한 안수산. 초록색과 푸른색으로 가득한 이 풍경은 서울 토박이에게 몹시 생경하고 아름답다. 안수산의 인상은 날씨에 따라 변한다. 비가 온 직후에는 안개가 연기처럼 곳곳에서 피어올라 몇백 년 된 산신령의 산처럼 신비롭다. 날씨가 쨍한 날에는 나란히 솟아 오른 빼죽한 두 개의 봉오리가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아 보인다. 자연은 날씨에 따라 무척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부슬비가 내리는 날, 선명한 구름이 떠 있는 화창한 날, 뿌옇고 흐린 하늘에 일조량이 별로 없는 날.
차를 타고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기분이 환기되어 있다. 논밭을 가로지르며 도로를 달리는 동안 무기력이 걷힌다. 이 순간을 좋아한다. 도로에는 차가 없고 신호등 수도 적어서 마음 가는 대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속도를 늦춰 느긋하게 지나치거나, 음악을 빵빵 틀어놓고 시원스럽게 속도를 내기도 한다. 왠지 소리 내어 나를 칭찬하고 싶어진다. 나는 다시 움직이고 있다! 나는 이렇게 힘을 냈다! 잘했어!
노동을 외주화하며 원하는 것을 그 자리에서 받아보는 편리함 대신 나의 근력을 써서 직접 움직이고 조달해야 하는 불편함. 불편함이 오히려 움직일 힘을 길러주고 생활의 기초 체력을 다지게 해준다. 절대 움직이고 싶지 않은 무기력이 찾아와도 기지개를 켜야만 한다. 어쩌겠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걸.
햇빛이 약해진 후덥지근한 날에는 걸어 보기도 한다. 이동 속도가 달라지고 시야가 달라지는 만큼 더 가깝고 구체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 한 달이 안 되었는데 아기 모들이 한 뼘 넘게 자랐다. 못 본 새 훌쩍훌쩍 자라나는 벼. 성장기인가 봐. 나는 잎만 보고 작물의 종류를 알아차리지 못해서 벼와 옥수수를 만나면 반가워한다. 어슬렁어슬렁 걷다 보면 만경강에 이른다. 한강에 익숙한 나는 만경강의 아기자기한 맛이 좋다. 친구는 자신의 동네에는 개천밖에 없다며 이 정도 너비의 강이 동네에 있다는 게 좋다고 말했다. 내게 만경강은 ‘강’의 문턱을 겨우 넘은 느낌인데 그래서인지 더 정감 간다. 동네 슈퍼처럼 들락날락하고 싶은 강.
강가를 걸으며 살아있는 것들이 발산하는 여름의 기세를 듬뿍 흡수한다. 살아있는 것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나무는 한 자리에서 계절에 맞춰 움직이고,강은 하루하루의 날씨에 맞춰 움직인다. 나도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 자연의 속도를 바라보며 내가 움직이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완주에서 보낸 올여름은 ‘힘을 낸다’의 ‘힘’을 체감하는 날들이었다. 완주여서 나는 더 끈질기게 힘을 내는 쪽으로 걸었다. 불편함과 불쾌함마저 미덥게 만드는 완주. 이 여름의 움직임을 타고 나는 어디에 도착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