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 셰어하우스

전사와 쫄보 사이

by 은도

완주 셰어하우스 면접을 보고 왔다. 완주로의 이주를 결정할 수 있었던 데에는 셰어하우스가 큰 역할을 해주었다. 군청에서 운영하는 셰어하우스는 보증금 없이, 월 5만원으로 투룸 혹은 쓰리룸을 두 명, 세 명의 청년이 나눠 쓸 수 있다. 1년 계약 후 최대 3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면접을 보러 가는 날에는 아빠가 함께 했다. 사업상 출장이 잦았던 아빠지만 완주는 처음이라고 했다. 고속도로를 나와 완주 군청에 가까워졌을 때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낮잠 자고 싶은 동네네." 낮은 건물들이 드문드문 자리 잡은 한적한 풍경이었다. 아빠는 이어 말했다. "우리 딸이 이런 곳에서 살 거라니 난 좀 슬프다." 내가 느꼈던 완주의 소박함, 고즈넉함, 평온함은 아빠에게 촌스러움으로 비춰진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귀촌에 대한 아빠의 시선이 어떤 건지 알고 있었기에 그럴듯한 언어로 완주로의 이주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내게 어떤 시도인지 포장하여 설득해야 할 것만 같았다.


언젠가 청년 마을에서 만난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귀촌을 한다고 하면 그 지역 청년의 대표가 되어서 야심만만한 비전을 내세우고 보여줘야 할 것만 같아요. 저는 그런 야망이 전혀 없는데." 귀촌을 결심한 후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을 때, 내가 느낀 기분도 꼭 그랬다.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남다른 삶을 줏대 있게 선택한 것처럼. 친구들은 대체로 멋있다거나 대단하다는 반응이었다. 그중에는 이미 스무 살 때 서울로 올라와 혼자 살기 시작한 이들도 있었다. "너는 스무 살 때 이 대단한 걸 이미 했어."하고 말해도 "나한테는 서울로 오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을 뿐이야."라고 대답했다. 많은 이들에게 귀촌은 보편이지 않은 선택이었다.


전 애인은 내가 귀촌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와 이 자본주의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는 파트너를 원해. 너는 그냥 못 견디고 피하는 거잖아." 아빠도 꼭 그랬다. 아빠는 완주에서 살겠다는 나를 만류하며 이렇게 말했다. 너 좀 "멋지게" 살고 싶지 않니. 여유롭게,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좋은 차도 끌면서. 그런 욕심은 없니? 때때로 고급스러운 와인도 마시고 뮤지컬도 보러 다니고. 아빠는 네가 더 나이 먹기 전에 일에 전념함며 커리어를 쌓았으면 좋겠어. 아빠는 다른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외국에 나가는 건 어때? 차라리 더 큰 세상으로 나가 보는 건 어때? 서울이 싫은 거면 호주는 어때?


나는 더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지 않다. 나는 더 촘촘하게 연결된 세상으로 가고 싶다. 내 생활 영역 안에 있는 사물과 존재들에 정성을 다할 수 있는 소규모의 생활을 꾸리고 싶다. 돈으로 취득할 수 있는 문화 여가 생활이 아니라, 직접 일구고 만들어내는 창작 활동을 하며 살고 싶다. 일에 전념하여 커리어를 쌓고 성장하기 보다 성장과 확장에의 강요 없이 함께 나누고 즐거울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만나고 싶다. 거창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완주행은 자본주의, 성장주의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져 공동체 속에서 긴밀하게 연결되는 생활의 시도다. 서울에서는 소비와 소유에의 욕망이 먼지처럼 꾸준히 쌓이니까. 일단은 돈을 벌고 돈을 쓰는, 돈의 무한 쳇바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셰어하우스 면접을 보며 고봉밥 캠프와 한 달살이를 했다는 사실을 밝히자, 담장자는 내가 이미 네트워킹이 충분히 되어 있는 상태라고 판단했다. 그 말에 비로소 귀촌에의 현실감이 들었다. 아니요! 저는 이제부터 연고 없는 지역에서 지금껏 이어온 관계들과 멀어진 채 혈혈단신으로 살아가야 한다구요! 0부터 새로 일상과 관계를 시작해야 하는 생활의 과제를 맞닥뜨리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텅 빈 셰어하우스를 둘러보며 새 시작의 울렁거림을 느꼈다. '정말 멀리 왔구나.' 나는 해가 조금 더 잘 드는 방을 내 방으로 선택했다. 작은 베란다에서는 작물들을 키울 것이다.


새 터전, 새 일상, 새 사람. 기백 넘치는 다짐을 해보다가도 쫄보처럼 쭈그러드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tempImagenw8GOL.heic 새 집을 지키는 명태(이름은 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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