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는 사랑으로 시작해 우정으로 끝나

<우리 세계의 모든 말>, 김이슬, 하현, 카멜북스

by 은도

담아.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어. 어제는 한낮 기온이 28도까지 올라가서 여름이 서둘러 왔구나 싶었는데 오늘은 서늘한 바람에 몸이 움츠러들어. 일교차만큼이나 마음의 낙차도 크다. 애인과 다투며 우리 사이가 영영 좁혀지지 않을 거란 걸 예감했거든.


다정아. 네가 나의 증거가 되어 줘. 거의 모든 시간에 대한. 빛을 등지고 빛 속으로 걸어가자. 내가 아는 우리의 미래는 바로 그런 거야.


그동안 나는 연인이라는 관계에 큰 지위를 주어왔어. 담아, 아마 그때의 너는 이런 날 몰랐을 거야. 너와 만났을 때 나는 연극에 몰두하던 시기였으니까.


나는 늘 '사랑받는' 상태에 놓여 있길 원했거든. '사랑받을' 때 나는 비로소 주인공이 되는 것 같았다. 나조차 좀처럼 실감하지 못하는 나의 존재감이 상대의 시선과 애정을 통해 분명하게 형체를 갖게 되는 느낌이었어. 연애는 서로의 열렬한 독자가 되어주는 일. 나는 애인이 내가 가진 고유함의 '증거'가 되어주고 '목격자'가 되어주길 원했던 것 같아. 그런데 나는 왜 그걸 애인만이 가능하다고 여겼던 걸까?


<우리 세계의 모든 말>은 우정에서 시작되어 사랑에 도착하는 편지들이야. 우정에서 사랑으로 넓어지는 세계. 담, 너는 언젠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어. 사랑과 우정을 구분할 수 있느냐고. 그때 나는 그 차이로 희생을 꼽았어. 사랑으로 희생할 수 있지만 우정으로는 희생할 수 없다고. 돌이켜 보면 내가 얼마나 우정을 폄하했는지 보여서 속이 화끈거려. 이제는 희생하는 사랑 앞에선 아리송해지고 사랑과 우정 사이의 경계를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우정도 사랑에 이르고 사랑도 우정에 이르지 않나. 연인이나 친구, 동료라고 이름 붙이기는 하지만 그 단어만로는 부족한,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우정과 사랑 사이를 오가며 내 세계를 넓혀 가는 것 같아. 요즘은 사랑과 우정을 구분하고 싶지 않아서 애정이란 말을 대신 쓰곤 해.


교제와 침범은 필연적으로 함께일 수밖에 없어. 얼마간의 침범을 시도하고 허용하면서 사람들은 서로 가까워지니까. 아무도 아무것도 침범하지 않는다면 두 세계의 교집합 역시 생길 수 없을 거야.


사랑받을 때의 만족감은 자극적이고 강렬했기에 연애관이랄게 딱히 없이 그 강렬한 열정으로 연애를 시작하곤 했어. 하지만 연애가 시작되고서 나는 쉽게 초조해졌어. 받을 자격 없는 멋진 선물을 어쩌다 우연히 갖게 된 것처럼 행여 잘못해 그 사랑을 빼앗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했거든. 그 선물이 내 것이 아니라고 여기면서 그 선물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나를 포장하고 다듬어냈어. 나는 사랑 앞에서 서둘러 무해한 사람이 되었고, 그러다 보면 사랑은 양보나 침묵과 비슷해졌지. 사랑에 도착했을 때에도 나는 힘을 얻기보다 힘을 잃는 것 같았다.


지금껏 나는 연애를 하면서 한 번도 화내 본 적이 없어. 화를 내는 대신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거나 차분히 장문의 카톡을 보내는 정도였어.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부탁하지 못했어. 나의 요구가 이기적인 나를 증명하게 될까 봐. 넌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구나. 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떠나버릴 것 같았어. 날 향한 애정이 상대의 자선인 양 굴었어.


불행했던 그 시기에 내 마음의 한 부분은 성장을 멈췄던 것 같다. 친구를 만드는 일에만 집착한 나머지 내가 어떤 친구를 바라는지, 나는 어떤 친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바람에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시행착오가 많았다.
-P67,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너를 만나고 나는 우정을 다시 배웠어. 나를 숨기거나 버리지 않고도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 싫은 걸 싫다고 말해도, 다른 걸 다르다고 말해도 그게 우리 관계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이제 내게는 있어.


사랑과 우정의 위치를 재조정한 후로 나는 부쩍 우정에 서투른 나를 발견하게 돼. 나는 끊임없이 친구들에게 연락하고, 만날 약속을 잡지만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는 단단한 우정을 쌓아가기엔 부족하다고 느껴. 왠지 우정으로 진입하지도 못한 채 그저 그 사람의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기분이 들곤 하더라. 그런데 혹시... 그들도 내게 그런 기분을 느낄까? 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조차 궁리해본 적 없는 사람이더라고. 어떤 빈도로 연락을 할지, 만날 약속을 잡기 위한 연락이 아니라 시덥잖은 이야기로 연락을 해도 될지, 일상의 어떤 이야기들을 묻고 나누어야 할지... 영 아리송해. 실은 너무나 궁금해. 친구들이 도착하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지금은 어디쯤 와 있다고 느끼는지, 매일매일 어떤 기쁨과 슬픔의 순간들을 마주하며 시간을 넘어가고 있는지, 외로운 순간에 떠올리는 게 무엇인지...


때로는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아서 가끔 놀라곤 하는데.
그런 네가 나를 모른다고 말할 때, 나는 그게 너무 고맙고 안심이 돼. 모른다는 말은 더 알고 싶다는 고백처럼 들려서. 앞으로도 계속 내가 궁금할 거라는 약속 같아서. 내가 아는 그 어떤 능숙보다 유창한 너의 미숙에, 네가 연기하는 무능과 무지에 자꾸만 속고 싶어져. … 우리는 앞으로도 아주 오래 서로를 모를 거야. 몰라서 계속 서로를 배울 거야. 오늘도 내일도 처음인 것처럼 서로의 미숙함에 기뻐하며 너를 오래 배우고 싶어.


담. 너 역시 아주 오래 전에 나와 연락이 끊겼어. 나는 그 후로도 종종 너를 떠올렸고, 여전히 너의 안부를 궁금해 해. 사랑과 우정의 차이를 아냐고 물었던 너는 지금 어떤 사랑과 어떤 우정을 하고 있을까. 그때 나는 너에게 “너는 상처 안 받을 거 같아”라고 말했어. 너는 “나도 상처 받아” 하고 담백하게 대답했는데 그때 나의 무심함이 부끄러워 지금도 자주 그 대화들을 떠올려. 외로운 길을 꿋꿋이 직진해왔던 너의 당당함에 감탄했을 뿐 그 뒤에 숱하게 받아온 상처들을 보려고 하지 않았어.


“내가 아는 사람들은 두 부류야. 직시해서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 아니면 외면하고 잘 지내는 사람들. 그런데 나는 그 두 부류 다 싫어. 우울증에 빠져서 죽거나 외면하고 잘 살거나. 나는 둘 다 아닌 사람이 좋은데 그 중간 어디쯤이 뭔지 모르겠어.”


이제 너는 그 중간을 찾았을까?


나는 아무래도 외면하고 잘 살아 여기에 다다른 듯해. 그때에도 난 네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널 멋대로 오해했지. 너와 연락이 끊긴 지 5년이 지났고, 난 아마 널 제대로 알게 될 기회가 없겠지만 지금 내 곁에 있는 친구들에게만큼은 그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우정을 쌓아가는 일에 미숙해서 닿지 못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지만 이렇게 편지와 일기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언젠가 말이 되어 닿을 수 있지 않을까?


난 언젠가 너를 다시 만날 날을 낙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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