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준비
“고산은 기운이 참 좋은데, 그래서인지 기운 좋은 사람들이 고산에 모이는 것 같아. 고산은 아직 우리를 받아들이길 망설이고 있나 봐.”
고산에는 셰어하우스가 없어 부득이하게 봉동에서 지내고 있지만 노랑집을 갈 때면 언젠가 꼭 고산으로 이사 오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고산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오성교 옆 너른 공터. 거대한 고목 몇 그루가 공터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고, 풀은 멋대로 자라난다. 여름에는 수풀이 무성해서 사람이 들어가기조차 어렵지만 날이 좋을 땐 사람들이 캠핑 의자와 돗자리를 갖고 모여든다. 강가를 따라 줄지어 선 몇백 년 된 보호수들에는 나무의 수령과 얽힌 이야기가 적힌 팻말이 달려 있다. 오래된 나무들로 둘러싸인 강가는 고요하고 아담하다. 나는 이 공터에서 책을 읽고 강을 바라보고 햇빛을 쬐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애틋한 마음으로 고산에 인사를 했다. 나를 받아 달라고.
완주에 와서는 부쩍 산책을 자주 한다. 산책을 좋아하게 된 건 친구와 함께했던 몇 번의 산책 덕분이다. 식물과 새를 유독 좋아하는 친구 자연은 쌍안경을 들고 다니며 새들을 관찰하고, 울음 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낌없이 감탄하고 귀여워한다. 식물을 발견하면 멈추어 서서 사진을 찍고 이름을 알아 보고, 아는 식물들의 이름들을 꼭 알려준다. 그 산책 덕분에 박새와 딱새를 알게 되었고, 갈대와 억새의 차이를 알게 되었고, 꾀꼬리와 백조를 보았다. 친구 자연과 산책을 할 때면 세상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를 둘러싼 자연은 인간을 위한 풍경이 아니라 활기로 가득한 생명 그 자체였다.
친구 자연은 눈을 반짝이며 우리 곁의 세상을 꼼꼼하게 알아차리고 놀라워한다. 친구의 그 태도를 닮고 싶어서 혼자서도 산책하러 나가곤 한다. 천천히 걷고 풍경을 보는 것이 전부인 활동. 무엇을 얻지 않아도 되고, 어딘가에 도착하지 않아도 된다. 걷는 만큼 걷다가 돌아오면 된다. 지극히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나는 점점 산책이 좋아졌다.
노랑집에 들렀다 고산 산책을 하고 돌아온 저녁에는 같은 층에 사는 친구 깔롱과 함께 밤을 깠다. 맨질맨질한 밤의 겉껍질은 딱딱한 듯 보이지만 칼집만 내도 쉽게 벗겨진다. 오히려 속껍질을 깔 때가 어렵다. 힘이나 방향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쪼개져 버리거나 알맹이가 뭉텅 깎여 나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두를 필요는 없다. 깐 밤은 지금 먹어도, 내일 먹어도 상관 없으니까. 그저 한 알 한 알 주의를 집중해서 까 나가면 된다. 손을 움직이는 만큼 깐 밤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정직한 속도다.
며칠 전에도 밤을 깠다. 밤 까는 데에 맛들린 것 같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영향 때문에 보늬밤 만들기가 귀촌의 신고식처럼 여겨져서 날 잡고 보늬밤을 만들었다. 보늬밤을 만들기 위해선 밤의 겉껍질만 깐 뒤 밤을 몇 차례 끓이고, 남은 껍질들을 여러 번에 걸쳐 벗겨내야 한다. 장장 8시간쯤 걸리는 노동이었는데도 그 시간이 지루하거나 수고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매 순간이 조심스러워야 했고, 조심스러운 만큼 정성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끓는 물에 부드러워진 밤은 냄비에서 건져낼 때부터 조심해야 한다. 뭉개지거나 다치지 않도록. 껍질을 깔 때에도 손에 힘을 빼고 살살 벗겨내야 한다. 끓이고 벗겨내는 과정을 반복하자 밤은 점점 더 보드랍고 반질반질해졌다. 설탕에 졸인 윤기 나는 밤은 더없이 달콤하고 파근했다. 들인 노동에 비하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정성스러운 과정이 좋아서 보늬밤을 또 만들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산책과 밤을 까는 수고처럼 정직하고 단순한 속도가 좋다. 손과 발에 맞춘 속도는 내가 마주한 것에 정성을 다할 수 있게 해준다. 밤을 다 까고 보일러를 튼 방바닥에 누워 캐럴을 들었다. 오도독 오도독 밤을 깨물어 먹으면서. 완주 거리에서는 서울과 다르게 캐럴이 쏟아져 나오지 않는다. 어리둥절한 채로 들뜨는 연말의 분위기가 없어도 겨울이 다가오는 나날들을 알아차린다. 단풍을 보고, 산책을 하고, 밤을 까먹으면서. 올겨울은 어느 때보다 차근히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