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과 감각

내가 사는 곳에 정 붙이는 방법

by 은도

내가 사는 곳에 정을 붙일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손 쉬운 방법은 산책이다. 오늘은 집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우석대학교 캠퍼스를 산책했다. 가려고 해서 간 것은 아니고 어슬렁어슬렁 이쪽으로 가볼까 저쪽으로 가볼까 하면서 걸어 다니다 우석대학교 캠퍼스를 만났다. 겨울 방학의 텅 빈 캠퍼스는 홀로 남은 순한 유령 같았고. 가로로 폭이 긴 낮은 건물들이 모여 있는 캠퍼스는 정갈하고 단정했다. 돌출창과 외부 계단, 녹색 게시판과 파란색 팻말, 나무 아래 곳곳에 놓인 벤치들.


우석대학교는 캠퍼스보다는 교정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곳이다. 전면 유리가 별로 없기 때문에 건물 사이로 햇빛이 들어도 빛이 쨍하니 반사되어 눈을 부시게 하지 않았다. 빛이 건물로 스며든 은은한 밝기.그곳은 세련된 활기보다 소박하고 순진한 활기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에 공통된 특징이 있었음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분명히 사람이 만든 공간이지만 사람들은 떠나가고 홀로 남은 듯한 풍경. 얼핏 방치된 듯 쓸쓸함을 촉발시키는 풍경. 모두가 떠나고 혼자 남겨져 기다리고 있는 듯한 풍경. 부재를 통해 존재를 선명히 드러내는 풍경. 특히 오래된 커다란 건물들. 건물이 갖는 견고한 물성은 사람들이 사라져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어느 순간이 지나가도 분명한 흔적이 남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해주니까.


여름 바닷가보다 겨울 바닷가를 좋아한다. 여름 바닷가에 간대도 휴가철, 바캉스 같은 단어가 떠오르는 뜨거운 열기보단 그 모든 축제의 열기가 저무는 밤 바닷가가 좋았다. 강릉보다는 속초를 좋아하는 쪽. 활기가 왕성하게 들끓는 곳보다 자작한 편을 좋아했다. 그쪽이 더 맨얼굴처럼 느껴져서.


그래서 완주가 좋은 걸까. 이 고요함, 정지되어 있거나 고여 있는 고요함이 아니라 아래에서 거대한 힘이 유유히 흐르는 고요함. 삼례에 오기 전 고산에서 지낼 때에는 어딜 가도 시야에 산이 보인다는 게 참 좋았다. 능선을 바라보고, 날씨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알아차리는 일이 좋았다. 와글거리는 사람들 없이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고 자연이 피어나고 지는 모습을 보는 게. 인간보다 자연이, 지구가 먼저 존재하고 그에 인간이 발맞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도 여태껏 사람들의 욕망과 인위에 압도당하였으므로 인간보다 훨씬 더 거대한 에너지를 보는 것이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야망과 욕망으로 주변을, 혹은 나 자신을 해치는 일에 나도 모르게 많이 앓았바 보다.


완주에 오길 잘 했다 싶은 순간들을 쉬이 느낀다. 특별한 순간은 아니고, 삼례에서 고산으로 운전할 때 트인 논밭 뒤로 산이 보이고 푸른 하늘이 선명할 때.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을 때 거대한 나무에 새들이 모여 푸드덕거리고 온몸으로 우는 모습을 볼 때. 근래에는 눈이 많이 내려 설산을 볼 수 있었는데 설산을 볼 때면 늘 감탄했고. 눈이 녹으면 가지에 쌓인 눈이 떨어지며 푸르르 소리가 날 때. 다른 소음 없이 오직 그 소리가 풍경을 가득 채울 때. 푸르르 푸르르 하는 소리가 수풀 안에 고양이나 새가 움직이며 내는 소리일 거라고 생각하며 곰곰이 바라다 보았는데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눈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 눈이 움직이고 나무가 흔들리며 내는 소리. 그렇게 풍경과 소리를 감각할 때 낯선 감격과 놀라움을 느꼈다.


무언가를 보고 듣고 맡고 느끼는 일이 살아가는 순간을 더 풍성하게, 생생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 왔다. 귀촌 생활에 바랐던 것 중 하나도 '감각을 충실히 사용하면서 지내기'. 사람 없는 교정을, 강가를, 숲길을 산책하면서 감각을 연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면서. 산책은 내가 사는 곳을 낱낱이 알아차리게 해주는 통로이자 그곳에 정을 붙이는 찬찬하고 손 쉬운 방식이다. 우석대 교정 산책이 좋다. 세상에 내 자리라곤 없지만 그 순간만큼 교정이 날 위해 남아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학생들 없는 방학에만 가능한 감각. 오늘도 천천히 교정을 누빈다.






좋아하는 교정 풍경1
외부 계단과 게시판, 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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