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을 기념하는 도시형 쾌락
유난히 손님 없던 붕어빵 장사가 끝나고 기대가 오늘은 술을 마셔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깔롱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술 마실래? 물었고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 깔롱도 웬일인지 흔쾌히 마시겠다고 했다. 기대가 사는 아파트에 차를 대고 15분 가량 걸어 호프집에 도착했다. 삼봉은 아파트 단지가 모여있는 신도시 지구라서 근처에 카페와 술집들이 있다. 완주에 내려와 술집에서 술 마시는 일이 처음이었다. 늘 집에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으므로 누군가는 술을 마시지 못했고, 술을 마시고 싶은 날에는 집에서 함께 술을 홀짝였다. 잔잔하게 술을 마시는 일이 매번 아쉬웠는데 오늘만큼은 절제 없이 모두가 술을 마실 수 있었다. 게다가 생맥주를 300cc, 500cc 단위로 팔고 매장 안에 2000년대 초반 노래들이 나오는 호프집이라니!
매장에 들어가자 마자 생맥주부터 시켰다. 평소에는 페스코로 살지만 오늘만큼은 제대로 길티하게 가보겠다며 불닭발도 시켰다. 귀가 얼얼해질 만큼 매운 맛은 왈칵 울어 버리고 싶을 만큼 화끈하고 시원했다. 습, 습 혀를 식히며 맥주를 꿀꺽꿀꺽 넘겼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 모두 울적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언제 울었냐는 물음에 저마다 어제, 그저께 하고 답했다. 약을 복용하지 않기 위해 우울감을 꾸역꾸역 참아냈으나 이제 정말 진료를 받으러 가야 할까 고민하던 참이라고 했다. 다같이 나란히 정신과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며 웃고 떠들었다. 술이 끊임없이 들어갔다.
배가 불러 더는 못 먹겠다 싶자 코인 노래방이 갔다. 거리는 높은 상가 건물과 휘황한 간판들이 무색하게 고요했다. 삼봉에는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상가들이 많고 아직 임대 문의라고 쓰여진 종이가 붙어있는 빈 점포들이 많다. 언뜻 신시가지 같아도 밤이 되자 어김없이 조용했다. 빈 거리에는 우리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에코처럼 울렸다. 코인 노래방은 아직 흠집도 나지 않은 기기들로 번쩍였다. 완주에서 이렇게 삐까뻔쩍한 코인 노래방에 오게 될 줄 몰랐다. 옆 방 사람이 이승기의 삭제를 열창하고 있었다. 그 노래를 듣자마자 흥이 훅 올랐다. 예약 곡이 끊이지 않고 채워졌고 빅뱅과 소녀시대부터 이정현, 김현정, 소찬휘까지 학창 시절에 불렀던 노래들을 부르며 땀나도록 뛰어 놀았다. 그렇게 한 시간 반 동안 의자에 앉지도 않고 방방 뛰며 소리를 지르니 고여 있던 것들이 조금 흘러갔다. 다음날 깔롱은 지친 얼굴로도 어제 생각하면 자꾸 웃음이 난다고, 마치 경칩 기념 술 파티였던 것 같다며 그렇게 걱정 없이 놀고 나니 무언가를 깨뜨리고 나온 기분이 든다고 했다.
완주에 내려와서는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다그쳤다. 귀촌했으니 응당 <리틀 포레스트> 같은 삶으로 넘어가 그 속에서 즐거움을 얻어야 한다고. 도시에서 누리던 즐거움들을 결연히 끊어내야 하는 악질적 쾌락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술집-코노-편의점이라는 도시 버전 쾌락을 누리며 웃고 놀고 떠들고 나서야 조금 개운해진 마음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동안 매 끼니를 과자로 때우며 기력 없이 우울감에 잠식된 나를 미워하며 울었는데 그런 나를 일으킨 게 고삐 풀린 음주가무라면 당당히 인정해도 되지 않을까. 완주에서도 나는 여전히 술집에 가고 코노에 가서 스트레스와 불안을 해소한다. 쉽사리 울적해하고 두려움 많은 나도 여전하다. 여전한 것은 거대하고 변화는 알갱이만하지만 그래도 완주에 와서 붕어빵을 팔아 보기도 하고 지원사업과 지역 축제에 도전하면서 어떻게든 나의 방식을 찾아보려 애쓰는 와중에 경칩이 왔다.
긴 겨울이었다. 겨울 완주는 칙칙한 황토색과 고동색의 흙과 앙상한 나무 일색이다. 겨울의 핵심이 그 황량함, 생명력 없음에 있겠지만 나는 동면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매일 새 아침을 맞아 힘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 꽤 고되었다. 도시에서는 빽빽한 건물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활기로 이 계절의 황량함을 온전히 감각하지 못했는데 완주에서는 눈 닿는 온 풍경의 생기 없음에 다짜고짜 감화되어 버려 난처했다. 어디 멋진 곳에 가서 활기를 충전하고 싶어도 맞닥뜨리게 되는 풍경은 여지없는 황량함. 퇴로가 막힌 느낌이었다.
그랬던 겨울이 갔다. 들판에 작물들이 심긴 모습을 본 날엔 반짝 숨이 트였다. 땅에 돋아나는 푸릇한 생명력을 보자마자 깔롱이 말했다. “사람은 초록색을 봐야 해. 경칩이 맞긴 맞네.” 우리도 어떻게든 겨울을 버텨내 경칩을 맞았고 음주가무로 봄의 깨어남을 기념했다. 이렇게 다가올 봄은 어떤 모습일까? 봄을 기다리는 일이 이토록 설레다니 이것도 변화의 작은 알갱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