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고 싶게 만드는 완주의 순간들
“무엇이 (지역에서) 계속해서 살고 싶게 하나요?” 책방 카프카에서 진행한 <복닥맨션> 북토크에서 오래 남았던 질문이다. 소피에게 마이크를 넘기고 잠시간 고민을 하며 노트에 끄적였다. 완주는 소란스럽지 않아서 저를 들여다보고 확장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게 해줘요. 그런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마음의 넉넉함이 생겨나요. 삶의 지향과 맞는 순간을 완주에서 자주 만나요. 그렇게 거창한 말로 완주를 선택한 삶을 이해 가능한 언어로 명확히 전달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순간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려 하자 대답이 궁색하게 느껴졌다. 자연, 사람들, 환대… 이거 너무 뻔하고 사소하지 않나? 소피가 먼저 그 질문에 씩씩하게 대답했다. 전주이기 때문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떤 것이 내게 행복인지 찾아냈기 때문에 전주에서 더 살고 싶어지는 거라고. 소피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여러분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가요?”
2년 전 나는 인간을 죄다 저주하고 싶어 하는 악령 같았다. 객차에 꽉 찬 사람들 사이로 몸을 낑겨 넣고 퀭한 낯으로 비척대며 양재역을 통과했다.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건 알았다. 그러나 행복이 무엇인지 떠올릴 수 없었고, 적어도 이건 아니라는 마음만 선명했다. 그러다 완주에 와서 행복이다 싶은 순간을 만난다. 오늘처럼.
불을 끄고 이불을 끌어 올리며 생각했다. ‘오늘 좀 행복했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살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잠들 수 있다는 게 놀라워 오늘을 기념하고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누운 채 메모장을 켰다. 이하는 메모장에 적었던 일기.
“전주 요가 문화공간 온전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온전의 지기, 나씽이 야매 글방에 초대해 주었기 때문. 야매 글방을 이끄는 엘리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을 사랑하지만 그만큼 인연이 끊기는 일이 두렵다고 했다. 인사를 하지 못하는 이별보다 인사하며 보낼 수 있는 작별을 하고 싶어 ‘작별 일기’라는 주제로 이번 야매 글방을 기획했다고 했다. 그 말에 덥석 손을 잡고 싶었다. 나 역시 정을 쉬이 주고, 사람들 곁을 서성이는 개냥이형 인간이기 때문에. 엘리의 말에 내적 친밀감이 급상승했다. 여기 혹시, 모두들 정 많은 사람들?
오늘 글방에서는 잡지를 보며 자신이 이끌리는 이미지와 문장들을 찾아 콜라주를 하고 그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 자신의 욕구와 상태를 알아차리는 시간이었다.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스케치북을 채웠다. 가위질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만 가득했다. 종이를 오리고 남은 자투리를 안타까워하며 스케치북에 붙인 사람도, 직사각형의 스케치북이 너무 작다며 이미지를 접어 붙인 사람도 있었다.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엘리는 알아차리지 못한 부분을 짚어내 질문을 던졌다. 글방 동료 서리는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찻잔이 비지 않게 계속해서 차를 우리고 따라주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성을 들여 이 시간에 참여하고 있었다. 글방이 끝나고 나씽이 환한 얼굴로 포옹하며 인사했다. “은도 책방 열면 거기에서도 글방 같이 해요. 오프닝 프로그램으로 우리 같이 춤추고 글 쓸까?”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아요. 좋아요. 너무 좋아요.” 초대와 제안이 익숙한 사람들. 활짝 열린 문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환대받고 있음을 모를 수 없었다.
저녁에는 병원에 다녀온 깔롱에게 요리를 해주었다. 순한 음식을 해주고 싶어서 클램차우더와 브로콜리 두부무침을 준비했다. 미리 담아둔 피클도 함께 내었다. 서울에서는 친구들에게 요리를 해준 적이 별로 없다. 요리를 대접할 만큼 실력이 특출나지 않았고, 배달 앱을 켜면 온갖 나라의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완주에서는 배달 음식도, 외식을 할 만한 식당도 별로 없어 서로에게 요리를 해주거나 함께 요리하는 일이 익숙한 일상이다. 요리 실력은 여전히 특출나지 않지만 요리에 대한 깡은 생겼다. 엉성한 맛이어도 중요한 것은 밥을 해주겠다는 태도라고 뻔뻔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네가 귀찮고 지칠 때 내가 대신 음식을 해 먹일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식사를 나누며 함께하는 시간이 귀한 거니까.
식사를 마친 뒤에는 아이스크림을 물고 동네를 산책했다. 산들거리는 바람에 기분이 들떠 몸을 꿀렁꿀렁 들썩였다. 혼자였으면 무서워서 못 갔을 어두운 논길을 걷고, 물 댄 논에 비친 건물들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중학교 교정을 어슬렁거렸다. 엄마 몰래 비밀스러운 탐방을 나온 아이들처럼. 교정엔 우리 외에 아무도 없었다. 탄성 좋은 빈 농구 코트에서는 공 던지는 시늉을 하며 웃어대고, 흔들리는 금빛 털북숭이 식물들을 만지고 놀았다. 산책하는 내내 겅중겅중 뛰어다니고 싶었다. 이 가뿐한 발로 어디로든.”
계속 완주에서 살고 싶게 만드는 순간은 대체로 이렇게 수수한 기쁨과 천진한 활기로 이루어진다. 지역을 이주하는 일은 나를 새로운 땅에 심는 일이라고, 나를 식물에 빗대어 생각하곤 한다. 시들시들했던 나는 새로운 땅에서 내게 필요한 생육 조건을 알아내는 중이다. 느슨한 돌봄과 환대를 흡수하며 조심스럽게 뿌리를 내린다. 이제는 놓치고 싶지 않은 행복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알게 되었으니,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