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새 여름

귀촌살이의 이별

by 은도

완주로의 이주를 결심한 건 완주에서 만난 친구들 덕분이고, 그래서 친구들이 떠날까 봐 겁난다고 자주 말해왔는데 이별은 생각보다 이르게 왔다. 깔롱이 완주를 떠났다.

“울 것 같아…”

마지막 인사를 하며 깔롱을 안자, 왈칵 눈물이 고였다.

“아이구, 정말 정도 많아. 곧 또 볼 거야. 끝 아니야.”

깔롱은 잠시 여행을 가는 사람처럼 인사하고 떠났다. 주차장을 빠져 나가는 차를 배웅하고 돌아오며 완주 생활이 또다른 국면에 접어들었구나 생각했다. 곁에 있던 한 사람이 사라지자 완주 생활은 아귀가 맞지 않는 문처럼 덜거덕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근 거리에 함께 하는 친구가 없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모두 완주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함께 모여 요리를 하고 밥을 해주고 캠프파이어를 하고 함께 전주로 놀러 나가던 일상이 귀촌 생활의 가장 큰 믿을 구석이었는데. 이제 어쩌지?


깔롱은 나와 가장 가까이 사는 친구였다. 쉐어하우스에서 지내던 이주 직후부터 청년 주택으로 이사 온 지금까지, 깔롱과 일상의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친구들 대부분이 커플이었던 터라, 싱글인 우리는 서로를 더 살뜰히 챙겼다. 함께 장을 보러 가고 식사를 나누고 산책을 나갔다. 술을 마시면 깔롱에게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하고 서로를 데려다 주고, 어디를 가든 일단 깔롱에게 물었다. “뭐해? 오늘 일정 있어?”

친구들과의 공동 주거는 내가 오랫동안 품어 온 꿈이다. 언젠가는 아끼는 친구들과 함께 살아야지. 같은 집에서 살지 못한다면 적어도 근처에 살아야지. 깔롱과의 생활은 그 꿈을 잠시나마 맛보는 경험이었고, 이게 내가 바라는 관계라는 걸 확신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공동 주거에의 꿈은 갑작스럽게 현실이 되는 듯했다. 소양 면의 주택이 월세로 나왔고 그 주택을 보고 홀딱 반한 친구들과 그곳에서 함께 살 계획을 세웠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낚아챈 사람들처럼 우리는 열렬히 준비에 몰두했다. 그러나 계약은 막바지에 이르러 무산되었다. 한철 벚꽃처럼 화려하게 피었다 순식간에 져 버린 호사골 베짱이집. (심지어 이름도 지어 놨는데!) 계획이 어그러진 뒤, 희망과 포부는 희미해지고 마음은 한없이 헛헛해졌다. 그때 엄마가 위로를 건넸다. 의도와 다르게 한없이 흉흉한 위로였다.

“지금이 전부인 것 같지? 그렇지만 안 그래.”

거기까지면 괜찮았을 텐데 이어 덧붙인 말은 더 불길했다.

“남는 건 가족 밖에 없어.”

이 말을 들을 때면 몹시 심통 난다. 결혼과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가족 외의 친밀한 관계, 애정과 돌봄을 기반으로 한 관계를 수용하려 들지 않는 그 말. 마치 국가적인 가스라이팅 같다. ‘그러니 가족을 꾸리세요. 결혼을 하세요. 법적인 관계가 가장 안전하답니다.’ 툴툴거리며 지나쳤던 그 말은 무산된 계획과 이어진 작별에 휘청이던 내게 효과적인 일격이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 내가 가졌던 좋은 순간들, 친구들을 향한 애정과 신뢰, 꾸리고 있는 관계들이 언제든 변할 수 있고 사라질 수 있다. 덜컥 겁에 질렸다.


“내가 느끼는 모든 게 일시적인 거라면. 언제든 날 배반할 수 있는 순간인 거라면... 나는 무얼 믿어야 해? 무얼 믿고 결정을 내려야 해?”

불안감에 힘이 부쳐 친구에게 두려움을 털어놓자 친구는 힘주어 말했다.

“나는 나를 믿어.”

“너의 무엇을?”

“연결되고자 하는 내 열망을. 사랑하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을. 네게도 있을 거야. 그런 힘이.”


그 말이 주문처럼 내 안에 남았다. 정든 사람들이 하나둘 떠난 후를 상상하면 여전히 몸서리쳐지고 눈물이 찔끔찔끔 난다. 그럼에도 사람들을 만나 정을 주고 관계 맺는 일을 기대하는 걸 멈출 수 없다. 다들 어떤 마음과 고민을 품고 살아내는지, 우리가 관계를 맺었을 때 서로를 어떻게 확장시킬지 너무나 궁금한 걸. 그 호기심과 설렘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그제야 이게 믿을 수 있는 나의 핵심임을 실감했다. 애정을 쏟게 만드는 관계가 이곳에 뿌리내리는 동력이란 걸.


깔롱이 떠난 후 더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이다. 떠난 자리가 영영 비어 있지만은 않을 것임을 믿으며. 한 친구가 떠났고, 친구들은 멀리 있고, 나는 여기에 있다. 떠나지 않은 사람들마저 그리워지는 초여름. 이제 곧 본격적인 여름을 알리는 장마가 시작된다. 나는 또 새로운 여름을 기대한다. 기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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