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사랑 그저 넙죽넙죽 받아먹어라

책방을 준비하며 받은 마음들

by 은도

여느 때보다 나를 돕는 사람들의 호의를 실감하며 무른 마음으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책방 오픈일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한낮 기온이 36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위 속에서 벽지를 뜯고 페인트칠을 하고 걸레질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목과 허리가 뻣뻣하게 굳어 있었고, 얼굴과 손에는 먼지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에어컨 없는 집은 이불마저 눅눅했지만 상관없었다. 눈을 감자마자 잠들었으니까. 무리한 일정을 해내는 스스로가 대견했으나 의연해지기 위해선 더 냉혹해져야 했다. ‘이것이 일인 분의 삶을 해내는 몫이야. 해내야 해.’ 그러다 해내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잠들지 못하는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다.


일주일 중 최고 기온이 예고되었던 날엔 엄마와 아빠가 서울에서 내려왔다. 엄마는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손수건을 나누어 주었다. 세 사람 모두 이마 위로 손수건을 동여맨 채 쪼그려 앉아 본드 칠을 시작했다. 손수건은 금세 축축해져 얼굴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괜찮아?” “물 사 올까?” “이제 그만하자.” 고생하는 모습에 안절부절 못하며 눈치를 보는 나와 달리 엄마와 아빠는 “우리가 도우러 왔지, 놀러 왔어?” 하며 일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오기로 한 전날까지도 도움을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했다. 엄마 아빠까지 고생시키는 건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나 혼자 고생하는 게 낫지…’ 실은 나이 먹은 딸을 도우러 오는 부모를 향한 부채감이 컸다. 더는 미안해하고 싶지 않았다. 알아서 잘하는 딸이 되어 부모의 걱정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이 더위에 연로하신 분들 일 시키려니 마음이 무겁네.” 하고 말하자 엄마는 딸의 속내를 간파하곤 툴툴거렸다. “넌 자존심이 너무 세. 이럴 땐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 좀.” 엄마가 내 엄마로 살아온 만큼, 나도 엄마의 딸로 살아왔다. 이제는 부루퉁한 말 속에 실린 감정을 읽는다. 그것은 서운함이다. 사랑받으라는 거다. 아빠가 작업 도중 손을 크게 베였을 때도 엄마는 오히려 아빠에게 면박을 줬다. “애 걱정하게 뭐 하는 거야!” 나를 돕는 동안 엄마는 자주 물었다. “가족이 최고지?” 본래 같았으면 심술부렸을 물음에 냅다 애교를 부렸다. “맞지. 그치. 사랑해, 엄마. 역시 엄마 최고.” 나를 돕는 일이 당신이 여전히 엄마임을 표현하는 일이구나. 엄마는 내게 엄마가 되어주고 싶구나. 이번만큼은 엄마의 어린 딸이 되기로 했다.


실은 “가족이 최고지?” 하는 말에 내심 ‘친구도 최고인데.’ 하고 생각했다. 엄마아빠가 내려온 그날, 친구 날아도 파주에서 찾아왔다. 부채감 때문에 마음 놓고 도움받기 어렵다던 고백에 날아가 물었다. “부모님과 함께 있는 거 힘들면 내가 같이 있어 줄까? 그날 맞춰서 내려갈게.” 거침없는 다정함에 우물쭈물하는 사이, 날아는 넌지시 말했다. “은도야, 주는 사랑 그저 넙죽넙죽 받아먹어라.”


도움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어렵다. 배려조차 쌓이다 보면 때로 얄미움이 되고 돕다가 상대를 향한 서운함이 생기기도 한다. 허용 가능한 염치의 범위가 각자 다르기에 호의는 엇나갈 수 있다. 나는 그게 두려웠다. 책방 수리는 내가 생각했던 염치의 범위를 벗어난 수고로움이었다. 도움을 요청했을 때 거부할 친구들이 아님을 알기에 더더욱 머뭇거렸다. 다정함이 몸에 익은 친구들이 제 범위 밖의 무리를 하다 이내 부담이 되어버릴까 봐. 후회가 될까 봐. 그게 관계를 엇나가게 할 씨앗이 될까 봐.


다정하고 명민한 친구들은 꾀를 내어 걱정을 구슬렸다. 예상보다 훨씬 고생스러울 거라고 위협 같은 염려를 보이는 내게 “별별 일 다해봐서 괜찮아요, 그쯤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해주던 친구 검모, “생각보다 별거 아냐. 나 해봤어.” 하고 곧장 달려와 주던 친구 감자, “생색내게 해줘!”라며 통 크게 테이블을 사주었던 야매 글방 언니들, “이런 거라도 도와야지.”라며 작업하는 날 늦게까지 숙소를 쓰게 해주었던 친구 어야아, 매일 노동하는 내 모습을 보곤 택배로 선물을 보내준 친구 강원, 맛난 거 시켜 먹으라며 용돈을 보내준 친구 모아, 간식을 한아름 들고 온 동료 책방지기 책보. 품에 함박 안긴 애정에 울상이 되어 중얼거렸다. ‘나… 사랑받나 봐…’


노동이 끝난 후 엄마, 아빠, 날아와 둘러앉아 완주의 명물, 어탕을 먹었다. 앓는 소리 하면서, 농담을 나누면서 다들 밥그릇을 싹싹 비우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았다. 엄마가 날아에게 어떻게 이 먼 데까지 도우러 왔냐고 하자 날아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저 아플 때도 은도가 달려와서 돌봐준걸요. 은도가 거절할까 봐 오히려 마음 졸였어요. 도와주게 해서 고맙죠.” 그 말은 허리디스크가 터진 날아를 돌보던 날들에 내가 했던 말이기도 했다. 널 돌볼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마워. 도움을 주고받은 전적 덕분에 우리는 도움 앞에서 조금씩 대범해진다. 우리의 일인 분에는 어리광이 포함되어 있다. 혼자 해내지 않아도 일인 분을 채워줄 이들이 있다는 실감에 마음이 물러진다.


오늘도 받은 사랑 잘 먹고 책방이 한 뼘 더 자랐습니다. 냠, 잘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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