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되기

어른 동료들과 만나며

by 은도

“돌아갈 수 있다면 젊었을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영화 <서브스턴스>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자리에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이 좋아요. 어렸을 때 원했던 안정과 평화에 이른 것 같아.” 40대, 50대, 60대 모두가 어리고 젊었던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다는 데에 동의했다. 한 동료가 이어 말했다. “저는 젊음이 아름다움으로 상징되는 게 불편해요. 늙음의 부정적인 지점들만 부각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은데.” 그 말에 조금 안도했다. 세상은 나이 듦을 무시무시한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아니라고, 앞으로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서울에서는 또래 아닌 사람들과 만날 일이 드물다. 다른 세대는 좀처럼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엄마에게 함께 취미 모임을 가자고 제안하거나, 하다못해 망원의 예쁜 카페를 데리고 가려고 했을 때도 손사래를 쳤다. “젊은이들 사이에 껴서 뭐 하게.” 나도 연장자들 사이에 들어가는 일을 꺼렸다. 이질적인 존재가 되는 것과 더불어, 연장자는 공경해야 하는 어른이라는 배움이 깊숙이 배어 있었다. 예의 바른 청자의 역할을 고수하다 서둘러 자리를 떴다. 유교걸의 탈을 쓰고 웃고 있었으나 속으론 되바라진 말들을 하며 삐딱해지기 일쑤였다. 연장자라는 위치가 당연한 권위가 되어 버리는 상황이 싫었다. 또래보다 연장자들이 더 많은 완주에서는 어른들과의 교류가 필연적이고, 동료가 되는 일도 잦다. 연장자가 아닌 동료로 어른들을 만나면서 ‘어른’에 부여했던 권위를 조금씩 벗겨내게 되었다.


림은 내가 만난 첫 어른 동료다. 그는 배우이자 작가이며, (구) 비건 요리사이자 (현) 펜션 지기이다. 우리는 글방에서 만나 서울, 포천, 완주를 오가며 애정을 주고 받았다. 림이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울상으로 춤을 추던 모습, 글을 읽다 우는 날 보며 함께 울던 모습, 능청스러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푸는 모습이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점점 림의 매력에 푹 빠졌다. 어른에게 먼저 묻는 법 없던 나이지만 림에겐 먼저 질문하곤 한다. “이런 글을 부모님이 읽어도 될까요? 이런 나를 읽게 해도 될까요? 어떨 것 같아요, 림은?” 혹은 “림은 결혼과 출산을 딸에게 권하고 싶어요?” 림이 아내이자 엄마라는 사실은 우리를 가르는 차이가 아니라 더 듣고 싶은 서로의 입장이었다. 차이가 질문이 될 수 있다니 놀라웠다.


림을 만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입장의 동료를 원하게 된 것 같다. 딸이자 엄마인 림의 짓무른 마음 한구석을, 중년 여성으로 겪는 모멸감을, 여전히 치열한 자아 싸움을 읽고 들으면 깡이 생겼다. 덜 겁내도 된다. 저 앞에 먼저 걸어가는 동료가 있으니까. ‘다 덤벼. 나도 이겨내 주마.’ 나도 림처럼 환한 열기를 품은 어른 동료가 되고 싶어졌다.


이제 또 다른 어른 동료들이 생겼다. 야매 글방에는 30대부터 60대까지, 여러 세대가 골고루 함께 하는 글방으로, 강사가 갖는 권위가 싫었던 앨리와 나씽이 만들었다. 전문 강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서로 가진 것들을 주고받으면서 배울 수 있잖아. 서로에게 야매로 배우고, 야매로 쓰는 글방을 열자. 더 편안하게, 더 자유롭게. 우리는 ‘인정’을 주제로 나를 떠난 이들을 향해 작별 일기를 쓰고, ‘나 사용 설명서’를 쓰고, 안전하고 다정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궁리한다. 글방이지만 글을 쓰기가 너무 어려워 대화를 더 많이 나누는 야매 글방. 그 헐렁함과 느슨함이 야매 글방만의 강점이다. 권위 없이 위계 없이 평등함을 전제하며 한 사람의 의견도 놓치지 않고 꼭꼭 입장을 물어보는 분위기 속에서 안전한 대화의 힘을 믿게 되었다. 그동안 안전한 소통을 누려본 적 없기에 글만이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통로라고 느꼈던 건 아닐지 돌아보면서.


과거의 어느 때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던 이들에게 야매 글방 동료 앨리는 “우리 치열하게 살아왔나 봐요. 지금까지 살아내어 이 모습으로 와주어서 고마워요.”라는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들으며 알게 되었다. 존중받는다는 감각은 각자의 치열함을 인정해 주는 데에서 오는구나. 그렇게 좋은 어른, 되고 싶은 어른의 첫 번째 항목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각자 자리의 치열함을 인정하는 어른.” 완주에서 어른들을 만나며 실감한 것은 내가 이들과 동등한 어른이라는 사실이다. 아. 좋은 어른은 나이를 잊게 만드나 봐.





tempImageO4JE7B.heic 여러 세대가 함께 하는 야매글방 모임


keyword
작가의 이전글주는 사랑 그저 넙죽넙죽 받아먹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