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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설악산 대청봉 일출산행

24.11.03

by eunebin

요새 간 건 아니고 작년 초겨울쯤에 잠깐 갔다왔다. 반년이 넘은 기억이라 이미 가물가물하지만 더 까먹기 전에 기록해두려고 한다.


처음으로 안내산악회를 이용해봤는데 가능한 코스가 일출산행 밖에 없었다. 한 번도 밤을 새서 운동해본 적이 없거늘 나의 첫 밤샘운동은 이렇게 우연히 시작되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집결지인 사당역이 집에서 버스로 15분 밖에 안 걸린다는 것과 버스가 우등이라 다리가 편안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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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은 남설악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해서 대청봉 찍고 소공원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설악산은 처음이었지만 나중에 또 가기 귀찮으므로 공룡능선도 맛보고 내려오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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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중교통에서 잠을 못 잔다.

미국가는 13시간짜리 비행기에서도 밤을 샐 정도였는데 이번 역시 제대로 못 잤다.

어거지로 눈만 감고 있다가 아무것도 없는데 내려줘서 사기당한 거 아닌가 했는데 뒤 돌아보니까 입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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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시각이 오전 3시 50분이다. 이 새벽에 어떤 사람이 등산을 하나 싶었는데 웬걸 사람이 오질나게 많았다.

기억하기로는 이 때가 등산로 닫히기 몇 주 전이었는데 그 덕도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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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에 등산로 열리고 기차놀이가 시작되었다.

주말엔 등산로에 교통체증이 있대서 거짓말인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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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니 행렬이 은하수 같다.

설악산 등산로는 따로 조명이 없어서 랜턴을 챙겨야 한다.

지금까지 야간조명이 정상까지 풀로 되어 있는 등산로는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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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이 달 없는 날(삭)이라 별 보기 제일 좋은 밤이라고 했는데 진짜 별이 말그대로 쏟아졌다.

사진이 흐린데 창피해서 사진 빨리 찍으려고 야간모드를 꺼놨더니 사진들이 다 핀트가 조금씩 나갔다.

나같은 찐따는 원래 이상한 것에 괜히 창피해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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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만 보면서 가다 보니까 어느새 반 좀 넘게 왔다.

야간등산의 장점 중 하난데 길이 멀리 안 보이니 미리 기죽을 일이 없다.

퍼질 사람은 벌써 퍼졌기 때문에 이쯤 되면 교통체증도 없어진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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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넘어가는 오르막길 몇 개 오르고 나니 슬슬 동이 튼다.

뒤에서 영남회장st 아저씨가 일출 보려면 페이스 올려야 된다고 재촉하는 통에 일행이 아닌 나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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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하면서 제일 기분 좋을 때 = 정상 1km 이내로 남았을 때.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정상 가까이서는 미터수가 확확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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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닝 급으로 뛰어서 올라왔더니 해 뜨기 전에 정상에 도착했다.

게거품 물면서 엎어져있는데 뒤에서 오 뜬다!뜬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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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바닷가와 지평선 너머로 뜬 해. 조금 뿌옇긴 했는데 가시거리 너무 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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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찍는 사람들을 찍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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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석도 한 번 찍어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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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일은 다 봤으니 이제 내려가자.

오색에서 시작하는 설악산은 정상찍고부터가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하산까지 13키로 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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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가 예쁘게 끼었다. 마치 바다 위를 떠다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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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은 사진같은 짱돌이 길의 80%다.

와 기암괴석 멋있네~ 저런데 올라갈 수는 있나? 싶으면 사람가는 길이다.

하필 어제 비가 와서 돌들이 다 젖어 있었는데 소청 내려가는 길에선 어떤 아주머니가 못 내려가겠다고 울고 계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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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국립공원 제일경이자 진정한 사나이의 코스인 공룡능선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젖은 돌 밟고 저세상 갈 것 같아서 완만한 코스인 천불동계곡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공룡능선은 산양이 갈 길을 사람이 뺏은 느낌이라는데 담에 접지 좋은 등산화를 신고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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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공룡능선 1275봉 고개넘는 길. 사람이 가는 길이 맞나 싶다.

인생은 길고 산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무리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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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동계곡을 따라서 등산로를 내 놓았는데 그늘이라 시원한데다 급경사 적고 물소리 들리고 풍경 장엄하고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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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사람이 도저히 못 가는 길을 철제 데크로 개척한 코스다.

글의 70%가 사진과 같은 철제 데크인데 그 밑이 뚫려있다 보니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은 좀 힘들 수도 있지 싶다.

물론 공룡능선에 비하면 키즈카페 수준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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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개멋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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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무릎을 달래며 내려오다 보니 급한 내리막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하산의 막바지라고 할 수 있는 비선대에 오면 조상님들이 불굴의 의지로 바위에 새긴 ‘000 왔다감’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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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 내려왔다. 위쪽 단풍은 다 떨어졌는데 아래쪽은 많이 남아있어서 딱 보기 좋았다.

케이블카 탈 수 있는 소공원서부터 비선대까지는 급경사도 없고 길도 포장되어 있으니 편한 마음으로 가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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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멀리 대청봉에서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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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울산바위가는 갈림길에서 17km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버스시간 7시간 남아서 시내 피시방 간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담부턴 귀가 시간도 확인하고 끊어야 할 듯...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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