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6
둘째 날 아침은 오사카에서 맞았다. 그냥 호텔인 줄 알고 캡슐 호텔을 예약해 버렸는데 층간소음이 몸으로 느껴졌다. 이럴 때는 에어팟 프로2의 노캔 기능이 큰 도움이 된다.
여행에서 제일 설레면서도 곤혹스러운 것이 끼니 때우는 일이다.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시간이 이르다 보니 딱히 연 가게가 없어서 편의점 빵에 커피나 한 잔 하려고 카페를 검색했다. 그러다 어제 가려다 빡세 보여서 못 간 카페가 기억났는데.
아오키라는 카페다. 모닝 세트도 있고 가격도 320엔이라 부담이 없다. 이때만 해도 일본은 밥상 물가가 참 싸구나 하면서 감탄했는데 더 돌아다녀 보니까 걍 여기가 싼 거였다.
식당은 단골 + 출근 전에 간단하게 한 끼 때우려는 직장인들이 메인이었다. 그 와중에 관광객은 하나도 없어서 자부심 느낌ㅋ
나는 A세트 시켜서 먹었는데 양이 좀 적다. 커피는 대만족이었는데 커피 맛 자체도 잘 내린 콜드브루 같은 느낌이었고 같이 주는 밀크(크림)를 타먹으니까 우유로 만드는 라떼랑은 다른 고소함이 느껴졌다 일본 커피는 에스프레소 보단 브루잉이 주류인데 맥도날드 모닝커피처럼 맛대가리 가출한 것만 먹다가 이런 거 먹으니까 맛의 지평이 넓어진 느낌이었다.
나오는 길에 간판에 일본어만 써 있는 드럭스토어를 발견해서 한 번 들어가 봤다. 사실 드럭스토어 인지 아닌지도 몰라서 분위기만 보고 때려 맞췄는데 보니까 술도 있고 머 별의별 걸 다 판다. 어젯밤에 하도 퍼먹다 체한 이후로 소화제를 하나 사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덕분에 계획에 없던 쇼핑을 시작한다.
어찌저찌 약 칸은 찾았는데 문제는 뭐가 소화제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숨은 그림 찾기를 시작했는데 어디를 봐도 소화제 같은 그림이 보이질 않는다.
계속 보다간 두통약도 사야 될 것 같아서 포기하고 점원한테 물어봤더니 이거를 알려줬다. 역시 진짜는 그림으로 장난치지 않는다. 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두고두고 잘 먹고 있다. 특히 술병 나서 속 울렁거릴 때 진가를 발휘한다.
이제 체크아웃하고 다음 목적지인 가이유칸으로 출발...하기 전에 어제 산 엑스포 마스코트를 가방에 달아서 관광객 티를 팍팍 내준다. 아 가이유칸은 왜 가냐면 내가 종 불문 동물을 오지게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후지산 다음으로 중요한 목적지였다.
숙소 프론트에 있는 귀여운 일기예보. 오늘은 어제보다 2도 정도 덥다.
가이유칸에 가려면 츄오선 혼마치역에서 출발, 같은 노선인 오사카코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잠깐 멍 때리니까 도착할 정도로 가까웠다. 이때 처음으로 파스모(아이폰으로 교통카드 쓸 수 있게 해주는 앱)를 충전해서 마침내 종이티켓과 동전지옥에서 해방되었다.
에버랜드 역에 내리면 에버랜드에 들어갈 때까지 이정표가 있는 것처럼 이 동네는 가이유칸 가는 길을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팻말만 보고 따라가니 얼마 전 뉴스에서 본 대관람차가 언뜻 보인다. 그땐 태풍땜에 넘어가니 마니 하고 있었는데 정상 영업 하는 거 보니 안전점검을 후닥닥 끝낸 것 같다. 뒤로 배 모양 빌딩도 하나 있어서 저긴 뭐 하는 덴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진짜 배였다;
왼쪽으로 돌면 이제 가이유칸의 낯익은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와 인접해 있는데 아무래도 수족관이다 보니 동물 공수 편하게 하려고 그렇게 지은 것 같기도.
'우리 가게는 면세점이다'. 알겠다.
입장객을 30~60분 텀으로 나눠서 받는데 운나쁘게 나는 한 시간 뒤로 순서가 잡혔다. 땡볕에 기다릴 자신은 없어서 밥이나 먹기로 하고 매표소 건너편에 있는 복합 쇼핑몰인 템포잔몰에 들어갔는데 두어 바퀴 돌아도 딱히 끌리는 게 없어서 무계획 관광객답게 몰 입구에 있는 Coco's라는 데로 들어갔다.
일본 가정식 세트를 시켰는데 사진처럼 함바그랑 참치덮밥 + 반찬 몇 개 이렇게 나온다. 함바그를 별로 안 좋아해서 기대는 안 했는데 육즙도 많고 생각보다 괜찮았다. 곁들여 나오는 참치 덮밥에는 커민 맛이 나는 풀떼기가 들어 있는데 이게 자칫 심심할 수 있는 참덮에 긴장감을 확 줘서 개맛도리였다. 뭐지 이거. (시소라고 함)
가격은 음료 무제한 포함 1,700엔 언저리인데 가성비가 구데기라 다시 가진 않을 듯하다.
밥 먹고 나오니 11시 50인데 12시 30분부터 입장이 가능하다 해서 주변을 마저 돌아보기로 했다. 삼복더위를 우습게 만드는 오사카의 오븐더위에 나도 함박스테이크가 되어버릴까 싶어 피난처를 물색하다 쇼핑몰과 정박한 크루즈 사이에 있는 비밀공간을 찾아냈다.
그늘에서 바닷바람 맞으면서 Boss 커피도 자판기에서 하나 뽑아 먹어봤다. 강남에서 카카오프렌즈 마주치듯 일본에선 어딜 가든 저 아저씨를 볼 수 있는데 맛은 걍 TOP 맛이다.
얏따! 드디어 입장
아쿠아리움이라 해서 생선만 있을 줄 알았는데 수달이나 오리같이 물에 사는 컨셉인 애들도 많았다.
아마존관에 있는 물고기들은 무지막지하게 크다. 사진으로 볼 땐 잘 안 느껴지는데 다 사람 머리 최소 3개 이상이다. 가끔 노량진에서 보이는 특대방어정도 되는 것 같다.
옆으로 더 가면 관종 뗑컨이 있다. 유리창 앞에 딱 붙어서 사람이 박수치면 같이 박수 친다. 영상이 없네;
다음 섹션에는 관종 돌고래가 있다. 자꾸 사람들 앞에서 저 장난감 입질하는 거 보여주길래 감탄하면서 10분 동안 보고 있었는데 아니 냅다 똥을 싸버리는 것이 아닌가. 어쩐지 다급해 보이더라.
조금 더 내려가면 가이유칸 마스코트 고래상어관이 나온다. 고래상어 개큰데 너무 기대하고 봐서 그런지 오히려 감흥은 없었다.
고래상어가 있는 수조를 태평양 수조라고 하는데 고래상어 말고도 여러 물고기들이 섞여있다. 다른 애들은 뽈뽈거리면서 죽어라 헤엄치는데 빨판상어인가 얘는 벽에 머리 딱 붙이고 개꿀 빨더라. 얘처럼 살고 싶다.
특별전시 - 노동자
실물로는 처음 본 개복치. 물고기가 어떻게 이렇게 생겼지 싶은데 지느러미도 쓸데없이 위아래로 붙어있어서 헤엄치는 거 보면 정말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 의문이다.
해파리관인데 멋있었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집 벽 하나 이렇게 해놓고 싶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마지막으로 상온에 사는 뗑컨들이 보인다. 가이유칸 들어서면 묘하게 수산시장 냄새가 나는데 근원지가 여기였다. 비린내와 별개로 뗑컨들은 매우 귀엽다. 개방공간이라 지근거리에서 볼 수도 있다.
이제 진짜 끝~ 입장료는 2,700엔인데 충분히 뽕 뽑은 것 같다. 무더운 일본의 여름 가족과 함께 시원한 곳에서 추억을 쌓고 싶다면 괜찮은 선택이 될 듯하다.
가이유칸을 마지막으로 오사카에 볼 일은 끝났다. 이제 교토로 이동하는데 전철을 꽤 오래 타고 가야 한다. 어떻게든 오사카역으로 가면 되는데 오사카역까진 일본의 명물 마리오와 함께했다.
(중간생략) 교토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급행 위에 '초'급행이 있는 걸 몰라서 조금 손해 봤다.
처음 느낀 교토의 인상은 은근히 시골이라는 것이다. 숙소가 교토역 남쪽에서 꽤 떨어진 곳인데 북쪽은 몰라도 남쪽으로는 완연한 시골 분위기를 풍긴다. 도시도시한 오사카에 있다 와서 더 대비되어 보이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다.
드디어 숙소 도착. 예약을 내일 날짜로 해버린 심각한 찐빠를 저질러 버려서 오늘 1박 요금을 추가로 결제했다. 결론적으로 쌩돈 5,000엔이 나갔는데 쨌든 문전박대는 안 당해서 다행.
이제 밥 먹으러 갑시다. 구글맵에서 오코노미야키가 맛있다는 음식점을 찾아서 가봤는데 사장님이 철판 앞에서 담배 피우고 계시길래 바로 유턴했다. 일단 먹을 거 많은 교토역으로 가던 중 먼가 모던한 음식점 하나를 발견해서 보니 사슴고기를 파는 곳이었다. 무려 사냥꾼이 직접 사냥해 온 사슴으로 요리한다는데 이건 못 참지.
사슴고기는 당연히 처음이었는데 우선 굉장히 부드러워서 놀랐고 레어로 익혀 나왔는데도 고기가 전혀 비리지 않아서 두 번 놀랐다. 스테이크 1,800엔, 매시드 포테이토 500엔, 맥주 600엔 해서 종 2,900엔 결제하고 나왔다. 다른 특이사항으로는 여자 알바 분이 굉장히 예뻤다. 그만두기 전에 빨리 가볼 것.
밥 먹고 정서적 휴식을 위해 교토역전의 Tully’s(타리즈라고 읽음) 커피에 자리를 잡았다. 역에서 숙소 가는 길에 봤었는데 노트북 하는 사람이 많길래 외워뒀다. 일본은 식사 위주인 카페들도 많아서 가려는 데가 내가 생각하는 그 카페인지는 미리 알아봐야 한다.
9시 마감시간까지 꽉 채우고 카페를 나왔는데 그냥 들어가긴 아쉬워서 주변에 갈만한 유적지 없나 찾아보다가 후시미이나리라는 사찰이 24시간 개방하니 밤에 가서 야경을 보라는 글을 발견했다. 퇴근하는 현지인들이 많아서 일본인인 척(=조용히 있기)을 시전하며 이나리역 도착
이나리역에 내리면 나가자마자 후시미이나리의 입구가 보인다. 낮에 그리고 특히 봄에 오면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지금은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좀 무섭다...
이 문은 유명한 포토스팟이라 낮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고 들었는데 밤이라 그런지 한산하다.
이름은 여우신사인데 고냥이가 많다. 운이 좋다면 원숭이와 멧돼지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말도 한 마리 있다. 왼쪽에 있는 조랑말이 기괴하게 생겨서 쫄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탐방을 시작하려는데 나는 과연 밤 산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인가.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