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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Apr 17. 2023

김치가 생각나는 우리나라 수제맥주





몇 년 전만 해도 수제 맥주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술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워낙 많은 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데다 가성비도 좋아져서인지 많은 사람이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부산에는 수제 맥주 양조장이 몇 군데나 되고 다른 지역 역시 편의점에만 가도 사 마실 수 있는 걸 보면 수제 맥주의 입지가 내가 처음 접했던 몇 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양조장에서 일하는 남편이 만든 맥주 외에도 여러 양조장의 맥주를 마시다 보면 어쩐지 수제 맥주는 김장김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집마다 맛이 다르고 집마다 더 잘 만드는 종류도 다르며 같은 사람이 만든 것 임에도 만들 때마다 맛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보관하는 곳에 따라 맛이 다르기도 하고 숙성기간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걸 보면 ‘정말 김치랑 닮은 구석이 많네’ 하고 생각하게 된다.

겉절이와 달리 숙성을 전제로 하는 김장김치는 처음에는 맛이 좀 없는 듯 하다가도 익어가면서 맛이 좋아지거나 혹은 처음에는 맛이 좋았는데 익을수록 맛이 덜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 집 김치는 짜게 만드는게 특징이라면 저 집 김치는 달게 만드는 게 특징이기도 하고, 같은 김장김치라도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김치와 엄마 냉장고에 있는 김치, 그리고 일반 냉장고에 보관된 것과 김치냉장고에 보관된 김치는 다 맛이 다르다.

수제 맥주도 비슷해서 어느 양조장은 향을 강하게 넣고 어느 양조장은 기본맛을 강조하며 또 어떤 곳은 실험적인 술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같은 술인데도 점포에 따라 맛이 미세하게 다르고 몇 달 전 먹은 것과 오늘 먹는 것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웬만하면 크게 달라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 달라지는 맛이 수제 맥주의 매력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남편이 일하는 양조장의 경우 종류는 다양하지 않지만, 기본에 충실한 맛이라 쉽게 질리지 않는데 그래도 가끔 독특한 맛의 맥주나 새로운 맥주를 맛보고 싶을 땐 주저하지 않고 다른 양조장의 수제 맥주를 찾는다. 안주에 맞춰서 술집을 찾는 것이 아닌 오로지 그 가게의 술을 맛보기 위해 찾는 것이라 그런지 위치가 어디에 있든 크게 상관이 안 될 때도 있다. 같은 술이지만 내가 더 선호하게 되는 지점이 생기고 마시고 싶은 종류에 따라 찾고 싶은 양조장도 달라지는 건 수제 맥주를 즐기는 재미기도 하다.

부산에는 기쁘게도 수제 맥주 양조장이 많아 선택의 폭이 넓은데, 마시고 싶은 술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장소를 옮겨 다니다 보면 마치 수제 맥주 탐방을 하는 기분도 든다. 와인 양조장은 외국을 나가야 하고 막걸리 양조장은 전국을 돌아다녀야 하지만 수제 맥주는 부산 안에서도 여러 곳을 다닐 수 있어 수제 맥주를 좋아하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부산 여행을 꼭 추천하고 싶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술은 막걸리나 전통주, 소주가 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수제 맥주도 점점 우리나라만의 맛과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하니 우리나라 술의 폭이 넓어진 거 같아 좋다. 그래도 이왕이면 수제 맥주가 보다 더 활성화되어 우리나라에서 대중화가 되고, 또 훗날에는 대중문화나 음식처럼 외국에서도 우리나라의 수제맥주 입지를 더 넓혀가게 되었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한국 맥주는 맛이 없다는 의견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런 오명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도 이렇게 맛있고 다양한 맥주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걸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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