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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자 엄마는 기관지가 약한 딸을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빠졌다. 모과청을 담그고, 생강청을 담근 것도 모자라 주말에는 아빠와 배 농장에 가서 배를 사오고 시장에서 도라지와 생강까지 더 사와, 배즙 만들 준비에 들어갔다.
올해는 장마가 길어 과일도 채소도 성한 것이 적고 맛도 덜하다. 게다가 그런 과일이나 채소라도 구하기가 힘드니 가격까지 비싸져 장을 볼 때면 한숨이 나올 때가 많다. 올해는 과수원에서도 즙을 만들 과일이 부족해 즙을 따로 판매하지 않는 곳이 많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엄마는 비싼 돈을 주고 과일과 채소로 청을 만들고 즙을 만들었다.
체온이 낮고 기관지가 약해서 집에 있을 때도 목도리를 하고 있을 때가 많은 나를 위해 매년 체온과 기관지에 좋은 것들을 만들어서 보내주는 엄마를 보면서 몸도 힘들고 돈도 많이 드는데 왜 저러는 걸까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나도 아이가 생겨보니 어느새 아이를 위한 배도라지즙을 주문하게 된다. 잘 먹어줬으면 좋겠다, 먹고 안 아팠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먹든 안 먹든 일단 구매를 하게 된다.
엄마는 한동안 만들지 않았던 모과청을 작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어릴적 가래를 끓을 때면 모과청을 한 스푼씩 떠먹여 낫게 했다며 나와 손녀를 위해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 나를 위한 거라면 ‘배즙도 있는데 아휴 됐어요’하고 말았을텐데 딸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얼른 ‘엄마 고마워요’라는 말부터 내뱉는 걸 보며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구나 하고 생각했다.
엄마가 정성으로 만든 청과 즙을 마음은 알면서도 잘 안 챙겨먹게 되는 것처럼 내 아이도 내 마음과는 달리 사놓은 배도라지즙을 잘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 먹어주는 모습에 ‘역시 사길 잘했네.’ 하고 좋아할 때면 엄마 마음이 내 마음과 같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예전에는 엄마가 챙겨주는 걸 잘 먹지 않고 버리는 날도 많았다. 아직도 못 먹고 버리는 반찬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챙겨주는 음식들을 툴툴 거리면서도 계속 받아먹게 될 날이 그리 길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버릴 때마다 마음이 저릿해진다.
엄마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면 누가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주고 내 몸에 좋은 것을 만들어줄까. 엄마는 자신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주고 자신을 보살펴줄 엄마가 없었다. 그 때문에 외롭고 서러워했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엄마는 나를 더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나도 한때는 엄마에게 엄마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자식이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은, 엄마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엄마에게 직접 보답하기 보다는 엄마를 따라 내 아이에게 사랑을 쏟는 것으로 대신하게 된다. 내가 받은 사랑을 내 아이에게 고스란히 베풀고, 엄마가 날 아끼듯 내 아이를 아끼고 살피려 노력한다. ‘엄마처럼 좋은 엄마가 될게’라고 말하듯 엄마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으로 엄마에게 고마움을 보답한다. 엄마가 날 사랑한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하듯 올해도 엄마를 따라 내 아이를 위한 배도라지즙을 준비하고 배도라지즙을 먹는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그렇지만 오늘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이 글이 끝나는 대로 엄마가 보내준 배도라지즙도 마셔볼 생각이다. 아이가 배도라지즙을 마셔줄 때마다 느끼는 기쁨을 엄마도 느낄 수 있도록, 내일 전화통화에서 ‘배즙은 먹었니?’하는 물음에 ‘응, 잘 마셨어.’라는 대답으로 엄마를 미소짓게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