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남은 마지막 여주 한 알을 손질한다. 물에 씻어 양 끝을 자르고, 속을 파낸 후 6,7미리 두께로 썰어준다. 다 썬 여주는 한동안 물에 담궈 놓으면 특유의 쓴맛이 줄어든다.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잘 즐기지 않는 식재료지만 최근 당뇨에 좋다는 정보가 매체에 흘러나오기시작하면서 여주즙이나 여주환 같은 것들이 어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건강보다는 여주의 맛과 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주로 여주 열매를 일본식으로 볶아서 먹는다.
쓴맛이 줄어든 여주는 베이컨이나 돼지고기가 없어서 이번 추석 때 받은 선물세트 속 햄과 함께 볶아서 먹을 생각이다. 어쩌다 보니 이번에 생긴 여주는 매번 다른 종류의 가공육을 더해 볶아 먹고 있다. 짭쪼름한 가공육은 평소에는 즐기지 않지만 쌉싸름한 여주를 먹을 때만큼은 돼지고기보다 더 선호하게 된다.
생각해보니 이게 대체 몇 년 만에 먹는 여주인지 모르겠다. 결혼하고 딱 한 번 집에서 만들어먹은 적이 있는데 남편도 별로 안 좋아하고 나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여주를 굳이 찾아서 먹을 만큼 좋아하진 않아서 한동안은 먹지 않고 몇 번의 여름을 보냈다.
이번 여주는 서울 사는 친구가 보내준 것이다. 본인도 인터넷에서 찾아서 주문한 거라고 하는데 고맙게도 여주 몇 알과 오쿠라, 그리고 맛집에서 구매했다는 떡을 함께 맛보라며 보내주었다. 어릴 때부터 친구라 어릴 땐 서로의 부모님이 차려주는 음식을 먹을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어른이 되어 부모님이 차려준 음식 대신 서로가 차려주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이렇게 식재료를 공유할 일도 생긴다.
지난 번에 글로 썼던 동죽조개도 친구와 함께 먹었다. 이번처럼 나눠먹진 않았지만, 내 것을 주문하는 김에 친구 것도 주문해서 각자 받은 조개로 레시피와 맛을 공유해가며 먹었다. 친구는 우리집에 놀러온 김에 냉장고 속 베이컨을 가져가기도 하고 여행에 갈 때면 언제나 특산품을 사서 보내주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대부분이 받은 것이지 내가 준 건 별로 없다.
친구는 부양할 가족도 없는데 손이 크고 정이 많아서 다른 친구와 함께 살 때도 항상 잘 차린 밥상으로 그 친구를 먹여살피곤 했다. 혼자가는 여행에선 본인 부모님 선물 챙기기도 바쁠텐데 언제나 우리 부모님과 다른 친구의 부모님 선물까지 사서 짐이 잔뜩 늘어난 채 돌아오곤 했다.
말투는 쌀쌀맞은데 하는 행동만 보면 푸근한 이모가 따로 없다. 생긴 것도 완전 도시 사람인데 속은 옛 시골 인심 같다. 친구가 보내준 여주를 오늘까지 다 먹고 나면 다음에는 내가 가을 식재료를 친구에게 보내볼까 한다. 어떤 게 될 진 모르지만 어떤 것이든 싱싱하고 맛좋은 식재료가 되리라.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으로 좋은 재료를 골라 보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