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작은 냄비에서 보글보글 소리가 난다. 어제 만든 누룽지로 누룽지밥을 끓이는 참이다. 누룽지와 물이 담긴 냄비를 센 불에 팔팔 끓였다가, 불을 낮춰 딱딱한 누룽지가 부드럽게 푹 퍼질 때까지 살살 저으며 기다려주면 걸쭉한 숭늉과 함께 누룽지밥이 완성된다.
엄마는 묵은 밥이 생길 때마다 누룽지를 만들었다. 식고 마른 밥도 곧잘 먹는 엄마와 식구가 남긴 밥이라면 군말 없이 먹어치우는 아빠 덕에 부모님 집에는 묵은 밥이 잘 생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쩌다 묵은 밥이 생기면 엄마는 프라이팬에 밥을 넓게 펴서 누룽지를 만들었다.
결혼해 집을 나오기 전, 누룽지밥을 만드는 날이면 엄마는 물 대신 숭늉을 주고, 입맛이 없다 하면 밥 대신 누룽지밥을 내어주었다. 그렇지만 나는 남은 밥으로 만든 누룽지와 누룽지밥이 싫었다. 남은 반찬을 마구 섞어 비벼 먹는 것도, 남은 채소를 다 때려 넣어 볶아 먹는 것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누룽지밥은 정말 남은 걸 처리하는 기분이라 먹기가 싫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자 우리 집에는 걸핏하면 묵은 밥이 생겨났다. 남겨둬 봤자 먹을 사람도 없고 쌀도 넉넉한데 싶어 매번 누룽지를 만들라는 엄마의 말을 외면한 채 남은 밥을 전부 음식 쓰레기통에 넣어 폐기시켜버렸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만들던 누룽지밥이 생각났다. 밥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 누룽지밥이 먹고 싶어서 생각이 났다.
죽과 누룽지밥은 비슷해 보이지만 죽은 영양도 많고 손도 많이 가서 아침에 먹기는 좋으나 만들기가 성가시다. 그런데 누룽지밥은 누룽지를 꺼내 물을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니 죽보다 훨씬 간편하다. 아이가 집에 있을 땐 누룽지밥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아 죽을 배달시켜 먹곤 했는데 혼자가 된 후로는 죽을 시키는 일도 번거로워 누룽지밥을 자주 떠올렸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남은 밥을 가지고 누룽지를 만들어 보았다. 기름기를 닦은 프라이팬에 밥을 얇게 펴 올리고 밥알이 수분 없이 딱딱해질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구워주었다.
‘따닥 따닥’
밥이 구워질 때마다 소리를 내며 부엌 안을 고소한 냄새로 가득 채우자, 엄마가 누룽지를 만들 때면 나던그 고소한 향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날 완성된 누룽지는 며칠 후 입맛 없는 날 아침 식사 재료로 사용했다. 먹은 후 금방 소화가 되는 건 아쉬웠지만 속이 불편한 날 아침에 먹는 누룽지밥은 평소 먹던 밥이나 빵보다 먹기가 훨씬 편했다.
그 후로 나는 묵은 밥이 생길 때마다 누룽지를 만들었다. 남편도 아이도 안 주고 나 혼자 집에 있을 때마다 그걸로 누룽지밥을 끓여먹었다. 비록 남은 밥으로 만든 누룽지밥이지만 청승맞고 구질해 보이기 싫어 매번 좋아하는 그릇에 소복하게 담고 맛깔스러운 젓갈을 귀여운 종지에 담아 곁들여 먹었다.
아마 오늘도 그럴 것이다. 엄마를 보고 자란 나는 엄마를 닮아 누룽지밥을 먹지만 그래도 보다 나은 모습으로 누룽지밥을 대하고 싶다. 남은 밥을 처리하는 식사가 아니라 나의 속을 편안히 만들어주는 따뜻한 누룽지밥을 잘 차려서 먹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