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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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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May 26. 2023

혼란 속 한치 파티


낚시에서 돌아와 피곤할 남편이 싱크대 앞에 서있다. 잡아온 한치를 한 번에 다섯 마리씩 소분을 해서 냉동실에 넣고, 바로 먹을 것은 내장과 껍질을 제거하는 등 손질을 하기 위해서다. 평소에는 일로 바쁜 탓에 부엌에서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잘 없는 남편이지만 낚시에서 돌아왔을 때만큼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장만이 끝날 때까지 머물고 서있다. 이럴 때마다 사용하기 위해 본인용 도마와, 칼, 장갑도 일찍이 따로 구입을 해두었다.  


겨울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열기 낚시를 이어왔다면 이제는 두족류의 철이 시작되는 모양인지 대뜸 한치 낚시에 다녀왔다. 오징어는 아직 금어기라 한치만 잡을 수 있다는데 아이스박스 안에 정말 한치만 잔뜩 들어있다. 오징어와 한치는 생김새도 다르지만 먹었을 때의 식감도 다르다. 한치가 오징어에 비해 지느러미가 크고 다리가 짧고 통통한 편이며 먹었을 때는 부드럽게 쫀득한 식감을 가지고 있다.


두족류는 말린 것만 먹을 줄 아는 아이는 아빠가 잡아온 한치를 무서워하면서도 지켜본다. 먹을 줄은 몰라도 한치, 주꾸미, 문어를 일찍부터 구분하고 두족류의 피부가 얼마나 독특한 무늬를 가지고 색이 다양하게 변화하는지도 알고 있다. 남편이 잡아온 바다 생물을 보는 동안 부디 아이가 조리가 다 된 요리를 보고도 살아있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살아있는 생명을 보고 ‘맛있겠다’고 장난으로라도 말하지 않는 아이가 되길 바라며 바다생물뿐 아니라 다양한 생물에 대해서 늘 교육하려고 한다.


생선이나 두족류를 손질할 때도 그렇지만 직접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하다 보면 외식을 할 때보다 재료 본연의 모습을 더 자주 떠올리게 된다. 살아있을 때의 모습, 본래의 장소에 있던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더 맛있게 조리하여 허투루 버리는 일 없이 다 먹는 것으로 감사함을 표하고 싶어 진다. 신기하게도 같은 재료라도 한 입 크기로 잘라져 냉동 처리된 것은 생명이라기보다 식품에 더 가깝게 여겨진다. 육류나 해산물뿐만이 아니라 채소나 과일 역시 밭에서 막 뜯어온 것에서는 생명력에서 오는 싱싱함을 더 잘 느끼고 그래서 더 아껴 먹고 싶고 더 맛있게 조리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여러 다큐 영상을 통해 두족류의 지능에 대해 알게 된 부분이 있는데, 그 똑똑한 두족류를 잡기 위해 인간이 매년 얼마나 머리를 쓰며 노력을 하는지 두족류도 알지 의문이다. 한 번 유행처럼 번진 미끼는 다음번에 물지 않는 두족류를 잡기 위해 해가 바뀔 때마다 미끼의 색깔을 바꾸고 모양을 바꾸는 낚시꾼들을 보면서 낚시꾼도, 두족류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새로운 미끼와 낚시법이 넷상에서 퍼지는 동안 바닷속에서는 새로운 미끼를 조심하라는 정보가 두족류 사이에서도 퍼져나가는 것이 굉장히 놀랍고 신기하다.


남편이 자리를 떠나자 싱크대 위에는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바다에서 살아 헤엄치고 있었을 한치가 버터구이용, 숙회용, 라면용, 파스타용으로 나뉘어 손질되어 있다. 남편이 쓴 미끼나 낚시 방법은 잡힌 한치들에게는 아직 낯선 것이었을까, 위험하다는 정보를 어디선가 전해 들었다면 지금쯤 우리 집 싱크대가 아닌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살아있는, 게다가 지능이 높은 생물을 먹는 일은 어찌 보면 조금 꺼림칙하고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버섯도 소통이 가능하다 하고 다른 식물 역시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같은 종끼리 소통이 가능하다는 글을 책에서 읽은 후로는 그냥 뭐든 먹고 감사히 생각하며 그렇게 먹으며 살아남은 인생이니까 조금 더 유익한 일에 시간과 힘을 쓰며 사는 인간이 되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순환, 내가 죽으면 나의 육신 역시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될 것이므로 장난으로, 혹은 무의미하게 생명을 죽이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겠지만 내가 살기 위해 무언가를 잡아 먹는 거라면 희생을 인지하며 감사히 먹고 살아가며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을 하기로 했다.


한치의 손질이 끝나면 그 다음의 내가 싱크대에 설 차례. 한치의 몸은 숙회를, 다리는 라면에 넣었고 몸의 일부는 파스타 재료로 사용하여 아이에게 먹였다. 아이는 아직 한치를 먹지 못하지만 한치 맛이 베인 파스타면은 맛있게 먹었다. 저녁에는 남은 숙회와 마늘, 마늘종을 넣고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는데 이미 한 번 삶은 것을 파스타에 넣었더니 아이의 파스타처럼 면에 깊은 맛이 베어 들진 않아 조금 맛이 아쉬웠다. 다음날 저녁에는 버터구이를 먹었는데 얇게 썬 마늘을 함께 구웠더니 살짝 뿌린 레몬향과 어우러져 맛도, 향도 풍부해졌다. 낮에는 오징어 장조림에도 도전을 해보았는데 마늘종을 넣었더니 잡내가 나지 않고 질리지 않는 맛으로 완성되었다. 그렇게 만들어 먹고도 남은 한치는 냉동실에 얼려두었는데 언젠가 주꾸미로 만들어 먹었던 무침, 참기름과 소금, 다진 파와 마늘을 넣고 무친 요리도 만들어 먹어 볼 셈이다.


먹을 수 있는 부위는 되도록 다 활용해서 조리하기, 남편이 낚시로 잡아오는 것 말고는 따로 생선이나 두족류를 구매하지 않기, 만든 요리는 남기지 않고 끝까지 먹기. 하나도 허투루 조리하지 않고 전부 다 정성 들여 만들어 맛있게 먹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세상의 일원로서 또 누군가에게는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살기. 남편이 잡아온 한치를 조리해 먹으며 또 한 번 포식자는 변명과 다짐을 길게 늘어놓는다. 그래봤자 이미 잡아 먹힌 한치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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