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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카레를 만들기로 했다. 당근과 고구마를 넣어 아이도 먹기 좋은 달달한 카레.
어릴 적 카레를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엄마가 만들어주는 노란 카레의 당근과 감자가 참 싫었다. 닭볶음탕에 들어간 당근이나 감자는 곧잘 먹었기 때문에 당근과 감자의 문제는 아니었던 거 같고 아마도 거기에 스며든 카레의 맛을 안 좋아했던 거 같다. 호박죽처럼 샛노란색도 아니고 어째보면 약간은 푸른 빛을 띄는 거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노란 카레는 가뜩이나 입이 짧았던 나의 식욕을 언제나 한층 더 감소시켰다.
그러다 일본에서 갈색 카레를 처음 먹어보았을 때, 달짝지근한 것이 입맛에도 잘 맞아 얼마나 놀랐던지. 게다가 카레 위에 올라가는 온갖 고명들은 또 어떻고! 그때 먹었던, 갈색 카레 위에 기름기를 품은 반숙 달걀 구이가 올라가 있는 새로운 카레의 모습은 언뜻 일본 드라마 <런치의 여왕> 속 오므라이스를 연상 시키기도 했다.
분명 같은 재료, 같은 요리지만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재료와 요리의 맛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건 성인이 되어 일본에 건너가면서부터 알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흔치 않았던 굴 튀김을(한국에서는 굴튀김보다는 굴전이 더 익숙했다) 일본에서 먹고 난 후 굴을 먹을 수 있게 됐고, 채소반찬이 발달된 교토에서 지내면서 그 전에는 좋아하지 않았던 흔히 가지, 죽순, 토란과 같은 채소류도 좋아하게 됐다. 일본요리를 시작으로 유럽과 다른 아시아 나라의 요리문화를 알아가면서 내가 먹을 수 있는, 그리고 즐길 수 있는 재료와 요리의 폭도 훨씬 커지게 됐다.
한국에서 먹어봤던 카레는 주로 엄마나 이웃집 아줌마가 만들어주는 것, 아니면 학교 급식에서 나오는 노란 카레였고 어쩌다 인도요리 전문점에 가게 되면 조금 색다른 카레를 먹을 수 있긴 했지만 가격도 비싸고 맛도 독특하여 쉽게 손이 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일본에 가니 노란 카레, 갈색 카레, 게다가 연두색의 그린 카레까지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들어가는 재료도 다양하고 재료의 크기도 제각각이라 카레를 이렇게나 다양하게 만들고 또 즐길 수 있다는 것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카레의 종류가 다양해져서 우리나라에서도 단순히 갈색의 숙성카레나 그린 카레를 넘어서 인도식 카레, 태국식 카레, 일본식 카레를 골라가며 즐길 수 있지만 15년 전의 우리나라에서 카레는 주로 노란 카레가 대부분이었다.
일본에서 다양한 카레를 접하면서 나의 취향에 맞는 카레도 점점 찾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그린 카레였고, 그린 카레가 아닌 카레라면 건더기가 느껴지지 않는 카레를 선호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그린 카레는 집에서 만들어 먹지 않지만(시도는 해보았으나 실패했다) 일반 카레라면 예전보다 훨씬 자주 만들어 먹게 되었다.
이쯤에서 밝혀보는 나의 카레 레시피.
딱히 특별한 건 없지만 이번 카레는 아이와 함께 먹을 것이었기 때문에 단맛이 나는 재료를 많이 넣어 달달한 카레를 만들었다. 당근 세 개, 고구마 한 개, 바나나 한 개, 그리고 양파 한 알을 작게 썰어 물을 부은 웍에 넣고 열 시간 동안 끓이면서 중간중간 물을 보충해주었다. 카레 가루는 먹기 직전에 넣어 풀어주었는데 그러면 눌러붙을 걱정 없이 오래 끓일 수 있다. 재료를 오래 끓였기 때문에 식감은 적지만 아이가 평소 잘 먹지 않는 채소를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고 채소에서 나오는 감칠맛들이 올라와 카레 가루를 많이 넣지 않아도 깊은 맛이 난다.
식감을 즐기고 싶은 날에는 재료를 조금 더 크게 썰어주고 토마토나 통마늘을 넣어 조금 더 건강식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다양한 재료를 넣어 영양가를 골고루 섭취하고 싶을 때 카레만 한 요리가 없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로는 꼭 가끔씩 집에 있는 이런저런 재료를 넣어 카레를 만들어 먹는다. 편식을 하는 아이라도 카레라면 조금은 골고루 영양을 섭취할 수 있으니 이쯤되면 우리집에서 카레는 보양식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