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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Jun 21. 2023

그 중에 제일은 설탕물에 삶은 포슬포슬 감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싱크대 앞에 서서 감자 껍질을 벗긴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감자를 삶아 먹을 생각이다. 아이의 등원 준비를 하는 동안 삶다 보면 아이를 보내고, 집안일이 끝나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처음 감자를 받았을 때는 감자채 전, 감자조림, 감잣국 등 여러 방식으로 조리해 먹었는데 결국 가장 자주 해 먹게 되는 건 삶은 감자다. 껍질을 벗긴 감자를 설탕 뿌린 물에 넣고 수분이 다 없어질 때까지 삶는 것. 달짝지근한 맛에, 포근한 식감을 가진 삶은 감자를 밥 삼아 간식 삼아 먹다 보면 대여섯 알도 금세 뚝딱이다.


감자를 좋아한 적이 없고 지금도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매년 이맘때쯤이면 여기저기서 감자를 받을 일이 생긴다. 올해만 해도 받은 감자가 십오 킬로, 부모님 집에 조금 보냈으니 남아있는 십 킬로 조금 넘는 감자는 세 사람이 먹어야 한다. 남편이나 아이는 집에서 밥을 먹을 일이 많지 않으니 결국에는 내가 혼자 저 감자를 다 먹어 치워야 하는데 이맘때 나온 감자는 맛이 좋아서 일 년 치 먹을 감자를 지금 몰아 먹는다는 셈 치고 부지런히 먹는다.


어릴 땐 엄마가 해주는 감자조림을 좋아했다. 찌개에 들어간 감자도, 감자볶음도 안 좋아했는데 빨갛게 조림을 만들어주면 잘 먹었다. 포슬포슬 부스러진 감자에 빨간 양념이 베여든 것을 따뜻한 밥 위에 얹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양념은 빨간 색깔에 비해 많이 맵지도 않고 적당히 단맛도 있어서 이왕이면 제 모양을 하고 있는 조각보다는 양념 맛이 많이 나는 부스러기를 모아 먹는 걸 좋아했다. 시간이 지나 쫀득쫀득한 식감의 감자가 유행을 하면서 엄마의 감자조림도 조금씩 변할 수밖에 없었는데 식탁에 올라오는 감자의 종이 달라지면서 감자조림도 점점 찾지 않게 됐다.


쫀득쫀득한 식감의 감자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설탕을 넣어 삶아도 쉽게 부스러지지 않으니 삶아 먹기보다는 쪄서 먹거나 채를 썰어 볶음을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조림 역시 포슬포슬 감자처럼 고추장을 넣고 만든 것이 아닌 간장을 넣고 조려 설탕이 코팅되도록 만든 조림 쪽을 더 좋아한다. 어느 감자든 상관없이 먹을 수 있는 건 감잣국 정도로 육수를 낸 것에 감자와 달걀, 양파와 소금, 후추만 넣고 만든 간단한 감잣국은 감자 종과 계절에 상관없이 잘 먹는다.


감자는 위에 좋다고 하던데 확실히 고구마에 비해 빈 속에 먹어도 부담이 적다. 설탕보다는 소금이 궁합이 잘 맞다는데 어릴 때부터 뜨거운 감자에 설탕을 뿌려 비벼먹거나 설탕물에 졸여 먹던 습관이 베여서 그런지 아직은 소금보다 설탕 맛이 더 익숙하다. 설탕을 넣으면 위에 또 부담이 될 거라 이럴 거면 아침부터 감자를 먹는 의미가 없을 텐데 싶어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매번 물이 끓는 냄비 안으로 설탕을 탈탈 털어 넣고야 만다.


아침에는 삶은 감자를 먹지만 낮이나 저녁에는 감자를 채 썰어 기름에 튀기듯 전을 구워 먹는 게 좋다. 맥주를 마신다면 맥주 안주로도 좋지만 그냥 전만으로도 좋은 간식이 된다. 감자만 먹기 심심하면 베이컨을 채 썰어서 같이 섞어주기도 하고, 가끔은 베이컨 대신 관찰레를 채 썰어 섞어주는 것으로 독특한 향과 기름맛을 더하기도 한다. 감자를 갈아서 만든 감자전은 손이 많이 가지만 채전은 갈아 만드는 것에 비해 간편하고 바삭하여 감자과자를 먹는 듯한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어릴 적 삶은 감자를 먹는 방식이 설탕파와 소금파뿐 아니라 마요네즈파로도 갈린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마요네즈라니, 느끼해서 무슨 맛으로 먹나 싶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감자 샐러드를 먹는 느낌으로 마요네즈를 넣어 먹었던 게 아닐까 싶다. 어릴 때는 엄마가 삶아준 감자를 먹는 방식이 고작 설탕, 소금, 마요네즈 세 가지뿐이었지만 지금은 직접 굽고, 삶고, 찌고, 튀기고, 끓일 수 있다. 얇게 썰어서 튀겨먹는 것도 좋고, 메시드 포테이토를 만들어 먹거나 뇨끼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국이나 찌개 말고도 수프로 만들어 먹는 건 또 어떤지, 삶거나 찌는 것에 비해 손이 더 가긴 하지만 조금만 더 부지런을 떨면 다양한 방식으로 감자의 맛을 즐길 수 있다.


감자는 조리 방법에 따라 다양한 식감과 맛을 느낄 수 있고 위에도 부담을 주지 않아 좋지만 다만 채소치고 살이 잘 찐다는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한 때 살이 찌지 않는 것이 고민이었던 적이 있는데 설탕물에 삶은 감자를 일주일 내내 먹었더니 살이 쪄버려 놀란 적이 있다. 찐 살에 비해 체력은 좋아지지 않았던 것도 흠이라면 흠이겠다. 매일 같이 감자를 챙겨먹느라 여름동안 몸선이 드러나는 옷을 입게 되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해도 역시, 이 시기의 감자는 포기하기가 어렵다.


글을 쓰는 중에 출출함을 느끼고 삶은 감자를 가져와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포슬포슬 감자인 줄 알고 삶았는데 알고 보니 쫀득한 감자일 때는 낭패가 따로 없지만 키보드 앞에서 먹기에는 부스러기가 덜 떨어져서 편하긴 하다. 글을 다 쓰고 나면 먹고 남은 쫀득 감자를 가지고 수프를 끓일 것이다. 감자의 종을 미리 알지 못해 조리에 실패를 한다고 해도 이대로 수프에 넣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실패가 아닌 한 과정처럼 느껴진다. 버터와 치즈를 넣고 만든 감자 수프는 또 얼마나 고소할지, 출출함에 엉덩이가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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