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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Jun 13. 2023

삼촌이 아껴둔 백도

복숭아 계절의 시작

올해의 첫 복숭아가 도착했다. 작년에 딱 한 번 구입해서 먹어보고 그 후로는 시기를 놓쳐 구할 수 없었던 신비복숭아다. 신비복숭아의 겉면은 딸기처럼 빨갛지만 익지 않은 부분은 노란빛을 내기도 해서 얼핏 보면 홍옥 빛깔을 닮았다. 껍질은 *맨들맨들하여 천도복숭아와 비슷한데  크기는 더 작고 맛은 새콤달콤하기보다는 은은하고 향긋한 맛이다. 다른 건 몰라도 맛은 정확하진 않을 수도 있는데 작년에 먹은 신비복숭아는 익히 아는 복숭아맛에 사과처럼 상큼한 맛이 더해졌다면 이번에 받은 복숭아는 전반적으로 맛이 옅어서 부지런히 숙성을 시키는 중이다.


복숭아 단맛, 포도 단맛, 사과 단맛 이런 건 잘 아는 맛이다. 그런데 신비복숭아의 맛, 샤인머스켓의 맛, 시나노골드의 맛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매번 먹을 때마다 지난 번의 감동을 재현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처음 먹었을 때는 새로운 맛, 그것도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맛있는 새로운 맛에 감탄을 하지만 또다시 구매를 해서 먹었을 때는 이전과 같지 않는 맛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일이 적지 않다.


‘첫’이라는 단어가 주는 마법 같은 효과가 있었나 싶다가도 판매 농가나 구매처를 바꿔가다 보면 다시 처음에 느꼈던 그 감동의 맛을 만나게 되는 날이 있다. 생각해 보면 평소에도 *매 사과나 귤이 맛있을 거라고 기대를 하며 사지는 않는다. 별생각 없이 산 과일이 먹어보니 맛있어서 이 기쁨을 나누고픈 마음에 가족의 입에도 한 입 넣게 되는 것처럼 같은 종이라고 해서, 같은 구입처라고 해서 꼭 한결같이 맛있을 거란 기대를 하는 건 욕심이다.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재배를 한다고 해도 조금은 달라지고야 마는 것은 생명의 증거다.


복숭아 하면 처음 떠오르는 말이 ‘딱복물복’이다. 처음에는 그 말이 뭔지 몰랐는데 이제는 그 말이 ‘딱딱한 복숭아와 물렁한 복숭아’를 뜻한다는 것과 사람들 사이에서 복숭아를 선호하는 취향이 꽤 갈린다는 것을 안다. 나는 굳이 고르자면 ‘물복’ 쪽인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백도를 좋아한다. 달콤하고 부드러우며 과즙이 뚝뚝 떨어질 만큼 넘쳐나는 백도를 모든 과일 중 제일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신비복숭아도 물복에 속한다.


백도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스무 살 때 돌아가신 삼촌이다. 어느 날 부모님과 함께 삼촌 집을 방문했는데 내가 오면 주려고 아껴놨다며 검은 *봉다리에서 복숭아 한 알을 꺼내 놓았다. 커다랗고 옅은 노란색 혹은 연두색에 하얀 털이 가득하여 약간은 거칠거칠한 촉감의 복숭아를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기는데 칼도 필요 없이 손으로 슥슥 벗기면 그 결대로 슥슥 벗겨지는 게 신기했다. 볕에 까맣게 타고 살도 없어 투박하고 메마른 손으로 삼촌이 복숭아를 *숭텅숭텅 썰어주는데 한 조각을 집어 입으로 쏙 집어넣자 어찌나 부드럽고 달던지, 복숭아가 달아서인지, 삼촌의 마음이 달아서인지 그날 후로 과일 중에서 복숭아를, 백도를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미혼이던 삼촌이 누군가에게서 받은 백도를 날 주겠다고 남겨두었다는 것이 그땐 마냥 기쁘고 고마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청승맞은 느낌이 있어 눈물이 난다. 길을 걷다 나 주려고 샀다던 손모아장갑은 왜 또 떠오르는지, 삼촌을 생각하며 글을 쓰다 보니 그리운 마음에 오랜만에 삼촌 얼굴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인다. 엄마가 나 기분 좋아라고 한 말인지 아니면 진짜인지 몰라도 오랫동안 삼촌은 조카 중에서도 나를 가장 좋아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적어도 조카 중에 삼촌의 죽음을 가장 슬퍼한 조카는 나였다.


상하거나 멍이 들지 않은 채로 잘 익고 숙성된 커다란 백도를 찾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건 어른이 되고 직접 살림을 살면서부터였다. 가끔은 먼 곳에서부터 백도 한 박스를 주문해서 먹기도 하는데 아무리 달고 맛있다 해도 삼촌이 준 백도만큼 맛있는 건 없어서 아쉽다. 농가와 구입처를 바꾸고 아무리 비싼 돈을 주고 구해봐도 그때 먹었던 삼촌의 백도 맛을 느낄 수 없는 건 '첫맛'의 마법보다 강력한 '추억의 맛'이라 그럴 것이다.



*맨들맨들 : 매끈매끈

*매 : 매번

*봉다리 : 봉지

*숭텅숭텅 : 숭덩숭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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