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스테이크를 만들려면 빵가루가 필요하다. 꼭 필요할까. 아니 생략도 가능하다. 그런데 *레시피만 봤을 때는 꼭 넣어야 하는 줄 알았기 때문에 한 봉지를 구입했다. 함박스테이크 네 덩어리를 만드는데 필요한 빵가루는 어른 밥 숟가락 기준 두 숟갈. 함박 스테이크를 세 번, 총 열두 조각을 만들어 먹고도 빵가루는 거의 새것처럼 잔뜩 남았다.
빵가루 하면 떠오르는 음식을 떠올려본다. 새우튀김, 크로켓, 그리고 돈가스가 떠오른다. 나도, 아이도 새우튀김을 만들어 먹을 만큼 좋아하진 않아서 새우튀김은 제외하고 크로켓과 돈가스를 고민하다 결국 돈가스를 먼저 만들어보기로 한다. 돈가스는 내게도, 남편에게도 추억의 음식이라 평소 돈가스를 잘 먹지 않는 아이가 맛이 없다고 남긴다고 해도 우리 둘이 먹어치우면 그만이다.
어릴 때는 엄마가 곧잘 돈가스를 만들어줬다. 고기를 두드려 얇게 펴고, 밀가루, 달걀, 빵가루를 차례로 입혀서 튀겨주면, 시판용 돈가스 소스나, 케첩에 찍어먹었다. 어머님도 불과 몇 년 전까지는 왕창 만들어 남편 동생 식구들에게 보내줬다고 한다. 주변에 물어보니 요즘에는 대체로 냉동 돈가스나 마트나 정육점에서 만든 돈가스를 사 와서 집에서 튀기기만 하거나 이미 튀겨서 파는 제품을 집에서 한 번 데워 먹는다고 한다. 나도 남은 빵가루만 아니었다면 아마 돈가스를 직접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다.
엄마표 돈가스의 특징은 얇은 고기였다. 집 밖에서 먹는 돈가스보다 더 맛이 있었나, 없었나를 떠올려보자면 잘 모르겠다. 돈가스는 소스 맛으로 먹었던 터라 튀긴 고기의 특징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래도 한 에피소드를 떠올려보자면, 어릴 때 잠시 사촌동생이 우리 집에서 지낸 적이 있다. 엄마는 동생과 내게 돈가스와 함께 밥을 차려주고 잠시 앞집에 건너갔는데 그때 내가 돈가스의 고기와 튀김을 전부 분리해서 고기는 내가 먹고 튀김은 전부 동생에게 줘버렸다. 동생은 아직 어려서 주는 대로 다 잘 받아먹었는데 혼자 통쾌해하며 좋아했다. 고기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괜히 심술부리려고 튀김옷만 벗겨서 동생에게 먹인 일은 치졸해서 인지, 미안해서 인지 좀처럼 잊지 못한다. 언젠가 독립출판물을 만들 때 이 일을 이야기 안에 담은 적이 있는데 책을 훑어보던 한 손님이 그 에피소드가 나오는 장면에서 ‘이거 쓰레기네.’라고 말하는 걸 눈앞에서 들었다. 바로 앞에 선 내가 실제로 벌인 짓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뱉은 말이었겠지만 ‘네, 그 쓰레기가 바로 접니다.’하고 속으로 말하며 충격받은 속내를 애써 감추었다.
지금은 흔해빠진 돈가스지만 옛날에는 그래도 돈가스가 받는 대우가 조금 달랐다. 오랜만의 외식에 시끌벅적, 왁자지껄한 삼겹살 집이 아닌 조명이 어두운 경양식 레스토랑으로 갈 때면 기분도 조금 우쭐해지고 목소리도 작아지며 행동도 약간은 조심스러워졌다. 눈앞에 돈가스가 마카로니 샐러드와 통조림 과일, 수프와 함께 마련되면, 젓가락과 숟가락이 아닌 포크와 나이프 그리고 ‘스푼’으로 먹어야 했던 돈가스가 그때는 나름 특식으로 여겨졌다. 요즘에는 전문점이 아닌 분식집에서도 주문할 수 있고 어떤 식당이든 어린이 메뉴로 가장 만만하게 들어가 있는 게 돈가스지만 그때는 레스토랑이라고 가본 곳이라고는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가 있는 경양식 레스토랑뿐이었다. 피자도, 햄버거도 먹어본 적 없었던 그때, 돈가스와 수프는 유치원생이던 내가 먹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서양식 음식이었다.
내 아이에게 돈가스는 흔한 반찬 중 하나겠지만 그래도 얼마 전 돈가스를 먹으며 엄마인 내가 만든 게 가장 맛있다며 혼자서 두 장의 돈가스를 다 먹어 치웠다. 나와 아이가 돈가스를 두고 갖는 추억이 같을 리 없고, 같은 필요도 없지만 아이도 아이 나름의 돈가스 추억이라는 걸 가질 수는 있을 거다. 오늘은 오랜만에 돈가스를 만드는 날.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돈가스는 ‘엄마가 만든 게 제일 맛있다’고 기억할 수 있도록 괜히 욕심을 내어 맛있게 만들어 볼 생각이다.
*<해 먹을 수 있을까?> 후카자와 나오코 거북이북스
함박 스테이크는 책 속 레시피를 참고하여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