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남아있던 올봄 마지막 생미역(물미역이라고도 한다)을 두고 잠시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다. 미역국을 끓일까, 초무침을 만들까. 그러다 문득 SNS에서 본 *미역밥 레시피를 떠올린다. 시험 삼아 일 인분만 만들어봐야지. 저장해 둔 레시피를 급하게 찾아본다.
깨끗이 씻은 쌀에 미역 조금, 미림, 식용유, 소금을 넣고 밥을 짓는다.
완성된 밥에는 참깨를 넣어 주걱으로 저어준다.
원래 레시피에는 마른미역이 들어가지만 생미역을 넣기로 한다. 완성된 밥을 한 술 떠보니 약간 싱거워서 소금을 조금 더 넣고 저어준다. 낫토를 넣은 삼각김밥도 만들고, 밥에 간을 조금 더 한 것은 그냥 주먹밥으로 만든다. 같이 먹을 반찬이 필요할 거 같아 급하게 *오이도 무치는데 오이는 엄마가 만들어준 맛간장, 소금, 연두, 다진 마늘, 참기름, 설탕, 참깨 마지막으로 가쓰오부시를 일회용 봉지에 넣고 조물조물 버무린 다음 잠깐 방치해 뒀다가 먹는다.
미역과 다시마가 유명한 고장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초무침으로 만들어 놓은 게 아닌 이상 생미역이 마냥 익숙하지는 않다. 부모님은 주로 초고추장에 찍어서 먹곤 했지만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반려견을 떠나보낸 후 마음을 달래기 위해 미역공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엄마가 아니었으면 생미역은 여전히 낯선 재료였을 것이다.
미역뿐 아니라 다양한 건어물을 취급하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된 엄마는 가끔 생미역을 공장에서 받아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게도 조금씩 나눠주는데 처음에는 이걸로 무슨 요리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유일하게 먹는 미역 요리가 초무침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대부분 채 썬 양파와 미역이 함께 들어간 믹싱볼에 식초와 설탕을 넣어 새콤달콤한 초무침을 만들어 먹었다. 매번 엄마가 만들어준 것만 먹다가 직접 만들어먹으니 기분도 새롭고 단맛이 강해져서인지 입맛에도 잘 맞았다.
올해의 생일 무렵에는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주는 대신 싱싱한 생미역을 가져다주었는데 생일날에 맞춰 소고기와 다진 마늘을 듬뿍 넣고 끓인 미역국이 제법 맛이 좋아서 며칠 동안 열심히 챙겨 먹었다. 얼마 전에는 백합조개와 황태를 넣고 미역국을 끓였는데 소고기 미역국과는 다르게 시원하고 달큼한 맛이 나서 또 새로웠다.
4월의 끝무렵이 다가오면서 이제 한동안은 생미역을 먹기 힘들 거라는 엄마의 말이 그리 서운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집에 남은 마지막 생미역을 생각하니 어떻게 먹으면 좋을지 고민이 됐다. 엄마가 내년에도 그만두지 않고 일을 하고 있다면 내년 봄에도 미역을 받아먹을 수 있으려나. 처음에는 그리 달갑지 않았던 재료였지만 초무침이나 미역국, 그리고 오늘의 미역밥까지 맛있게 먹고 나니 다음 미역도 은근 기대가 된다. 다음에는 생미역을 받고 어떤 요리를 하면 좋을지 오래 고민하지 않도록 한동안 많은 레시피를 찾아놓을 생각이다.
*미역밥 레시피 출처 인스타그램 @setsuyacook
https://www.instagram.com/p/CrafRgVvP1N/?igshid=YmMyMTA2M2Y=
*오이무침 레시피 출처 인스타그램 @jitan_tsukuoki (레시피 속 폰즈 대신 맛간장과 소금, 연두를 더했다)
https://www.instagram.com/p/CqIILooySmG/?igshid=YmMyMTA2M2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