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를 위해 냉장고에서 데친 머위 잎과 쌈장을 꺼낸다. 흙과 벌레가 묻은 잎을 손질하여 데치는 일은 조금 귀찮지만 한 번 할 때 많이 해 놓으면 며칠을 두고 먹을 수 있다. 내가 먹기 위해 직접 잎을 뜯고, 씻고, 껍질을 벗기고 데치고, 줄기로는 쌈장까지 만드는 건 올해가 처음이다. 엄마가 일일이 손질하여 먹기 좋게 데쳐주거나 장아찌로 만들어 줄 땐 입에도 대지 않다가 친구집 앞마당에 난 머위를 가져와 요리를 해 먹었다.
집에서 머위를 처음 마주 했던 날. 내 기억으로는 직접 뜯은 게 얼마 안 되는데 봉투에 제법 많은 양이 들어있는 걸 보니 친구가 더 뜯어서 넣은 모양이다. 말은 친구라고 하지만 사실 그는 언니다. 건축 일을 하는 언니는 남해에 있는 촌집을 두 손으로 멋지게 뜯어고친 후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이사 간 지는 오래됐지만 직접 방문한 건 집이 완성되고 삼 년이 지나서였다. 그동안 방송을 탈 일도 몇 번 있어 언니 집은 영상으로 진작에 봤다. 화면으로만 보던 연둣빛 마당은 직접 가서 보니 막 피어난 꽃으로 가득했다. 머지않아 딸기가 열리고, 포도도 열릴 마당의 한 구석에는 한창 머위 잎이 자라고 있어 집으로 돌아가기 전 그중 몇 장을 뜯어왔다. 언니는 작년에 이걸로 장아찌를 담았다는데 나는 데쳐서 쌈을 싸 먹을 생각으로 조금만 가져왔다.
고구마 줄기 껍질은 엄마를 도와 몇 번 벗긴 적이 있는데 머위 잎은 만져본 적이 없다. 벗기는 느낌도, 손에 물드는 것도 비슷하다고 해서 직접 해보니 거의 똑같다. 다만 잎이 붙은 채로 벗기면 잎까지 덩달아 찢어질 수 있어 그건 머위 줄기를 벗길 때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잎은 데쳐서 쌈으로 먹고 줄기는 쌈장 재료로 쓸 거라 다음에는 미리 자르고 벗기기로 한다. 참치, 양파, 애호박, 머위 줄기를 볶다가 물을 자작하게 넣고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나는 집된장을 넣어 빠글빠글 끓이며 졸이는데 쌈장이기 때문에 국물은 거의 없이, 된장찌개보다는 짜게 만들었다.
남해 여행에서 돌아와 먹는 첫 끼니는 막 데친 머위 잎에 싸 먹는 쌈밥이었다. 어차피 남편과 아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을 맛이라 혼자서 맛있게 먹고 남은 것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나 역시 깻잎, 방아, 당귀는 좋아해도 머위나 참나물은 좋아하지 않았다. 향이 강하거나 쓴맛이 나는 잎채소라고 해서 다 잘 먹거나 싫어하는 게 아니다. 잎채소를 좋아하지만 마니아까지는 아니라서 그중에서도 나름 대중적인 것을 좋아한다. 쓴맛을 없애기 위해 찬물에 한동안 담가두었지만 야무지게 싼 쌈밥에서는 여전히 쌉싸름한 맛이 난다. 그래서 별로 인가하면 또 그건 아니다. 오히려 평소에 잘 맛보지 못하는 쓴맛에 혀 감각이 깨어나는 기분이다. 이게 바로 머위구나. 봄의 맛이구나.
친구 마당에서 뜯어온 머위는 두 끼니 만에 바닥났다. 쓴맛이 자꾸 혀끝에 맴도는데 장터나 마트에서는 머위 잎을 보기 어렵거나 새순만 볼 수 있다. 새순은 무쳐먹으면 맛있다고 하는데 당장 먹고 싶은 건 쌈밥이라 성에 차지 않는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던 때에 본가에서 머위 한 봉지를 얻어왔다.
마트에서 살 수 없는 식재료를 엄마에게서 구할 수 있을 때가 있다. 간수가 빠져 짠맛은 덜하고 단맛은 올라오는 굵은소금이나 향이 진한 산초가루 그리고 이번에는 쌈 싸 먹기 좋은 크기의 머위 잎이다. 마침 본가에는 밭에서 뜯는 머위 이파리가 두 봉지나 있어 한 봉지를 받아왔는데 엄마도 지인 두 분에게 받은 거라고 한다. 남해에서 가져온 건 마당에서 난 거라 흙이 적고 깨끗했던 것에 반해 엄마에게 받은 건 흙도 더 많고 구멍이 뚫린 이파리도 많다. 어른들은 주로 밭에서 뜯어오고 많은 사람에게 푸짐하게 나눠주기 위해 먹을 수 있는 크기라면 다 뜯고 보기 때문에 그 차이가 뜯어놓은 머위 이파리에서도 보여 재미있다.
‘으아악’
비닐봉지에서 꺼낸 머위 잎 사이로 거미와 이름 모를 벌레가 기어 나온다. 벌레는 몰라도 거미는 남해에서도 머위 잎 주변에서 봤던 거다. 이 종은 머위 잎을 좋아하는 걸까. 우연일 수도 있지만 책에서 벌레라고 해서 아무 풀이나 다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했던 것이 떠오른다. 벌레와 흙을 제거한 머위 잎은 한 번 씻어 줄기를 자른 채 끓는 물에 넣고 줄기는 굵은 것만 골라 껍질을 벗긴다. 이파리가 붙어있을 때보다 훨씬 편하게 쓱쓱 벗겨내고 녹색을 너머 시커멓게 변한 손끝은 어차피 며칠이 지나야 사라질 테니 박박 문지르며 지우기를 포기한다. 머위 줄기는 잘게 다지고, 양파도 다진다. 애호박도 작은 크기로 썬 다음 저번처럼 참치를 넣고 자작하게 졸여 쌈장을 만든다.
저번에 만들자마자 한 번 먹고 오늘이 바로 두 번째로 먹는 날이다. 차가운 물에 오래 담가서인지 자란 땅 차이인지 몰라도 지난번보다 덜 쓰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쑥도 못 먹었고 두릅도 먹지 못했다. 엄마와 같이 살 때는 봄이면 쌉싸름하고 향이 진하게 나는 봄 채소를 잔뜩 먹을 수 있었는데 결혼하고 스스로 살림을 한 후로는 계절 맛을 온전히 느끼기가 어렵다. 찾아보면 마트에서도 쑥이나 두릅 정도는 구할 수 있지만 엄마가 지인으로부터 받아오는 재료와 비교할 수 있을까. 아쉬운 마음에 작년에 받은 두릅 장아찌를 꺼내 먹는다. 입맛에 맞지 않다고 엄마가 챙겨주는 계절 재료나 반찬을 거절하기에는 그게 귀한 걸 아는 나이가 됐다. 동시에 이제는 나도 봄이라고 머위 잎을 나눠주는 친구가 생겼으니 나이를 먹는 게 마냥 나쁘지 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