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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네가 가는데 내가 왜 일찍 자

by 으네제인장


우리 가족은 대체로 열 시 전에 잠이 든다. 이르면 아홉 시반, 늦으면 열 시. 유난히 몸이 안 좋거나 피곤하면 여덟 시 반에도 잔다. 열한 시나 열두 시에 자는 건 가끔 있는 모임이 있을 때만. 예전에는 우리도 평범하게 늦게 잠이 들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로도 흔히 하는 수면 교육도 없이 다 같이 늦게 잤다. 그러고 보면 그때는 그것이 안 평범한 쪽이었다. 착한 어린이는 대체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법이니.



밥만 먹으면 잠이 들던 아이는 돌이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깨어있는 시간을 늘려갔다. 더 자란 후로는 한참 놀다가 잠이 오면 스스로 애착 이불을 들고 방에 들어가 두, 세 시간 잠을 청했고, 밤이면 마치 체력을 다 회복한 듯 쉽게 잠들지 못했다. 한창 자라는 아이라면 일찍 자야 마땅하겠지만 매일 퇴근이 늦은 남편은 늘 아이가 졸릴 때쯤에야 집에 왔다. 하루 중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 안 되니 아빠를 본 아이는 늘 신이 났고 아빠는 늘 아이만 보면 웃음을 지었다. 그 둘을 보며 과연 잠이 이 둘이 함께 하는 시간보다 더 중요할까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우리 가족은 남편이 오고 난 뒤에야 다 같이 저녁을 먹고 같이 시간을 보내다 남편, 나, 아이 순으로 잠이 들고는 했다.



잠도 스스로 들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도 혼자 힘으로 하던 아이는 내가 주말이라 늦잠을 잘 때면 먼저 일어나 거실에서 놀거나 간식을 챙겨 먹었다. 알아서 자고, 일어나는 것도 모자라 혼자 배도 채울 수 있는 아이라니. 다만 아이와 내가 기다린 건 남편인데 매일 남편이 가장 먼저 잠이 들고 그다음 내가, 그리고 잠 시간을 놓친 아이가 가장 흥분한 상태로 늦게까지 깨어있다는 문제가 생겼다. 한 번 잠이 들면 아이 울음소리 말고는 그 어느 것으로도 눈뜨는 법이 없는 남편은 아이가 뽀로로를 보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도 깨어나는 법이 없었다. 때로는 귓가에 노래를 부르고, 때로는 몸을 놀이기구 삼아 방방 뛰며 춤을 줬지만 남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편도, 아이도 잠이 들어야 혼자 거실에서 맥주도 한 잔 하며 혼자 만의 시간을 보낼 텐데 언제나 가장 먼저 잠드는 건 남편, 늦게 잠이 드는 건 꼬맹이었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자장가라도 불러주며 재워야 하는 날이 생겼지만 아이는 대체로 혼자 놀다 뒤늦게 잠이 들었다. 아침이면 당연한 듯 못 일어났지만 자는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고 대충 물로만 세수를 한 채 들쳐 엎고 등원을 하는 날이 이어졌다. 언젠간 고쳐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언제나 일찍 나가 늦게 들어오는 아빠와 잠깐이라도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바로 전 해에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등원 시간이 빨라졌다. 이른 기상에도 좀처럼 일찍 잠들 줄 몰랐던 아이는 뜻밖에 전혀 다른 문제로 수면 패턴을 바꿨다. 매일 늦게 먹고 자고 아침에는 빈속으로 지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아이 입에서 '속이 쓰리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유치원생이 속이 쓰리다는 느낌을 받다니. 병원 중에는 그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고 가스가 찬 걸로 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같은 시기에 나 또한 속 쓰림을 겪고 남편은 역류성 식도염으로 약까지 먹고 있던 터라 아이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다. 아쉽지만 남편이 오기 전에 일찍 저녁을 챙겨 먹고 잠도 일찍 잔 다음, 아침에도 일어나 식사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아침밥을 먹어본 적 없는 아이라 밥 먹는 건 힘들어했지만 어린이집에서도 먹던 것처럼 죽을 만들어주니 잘 먹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정말 아이의 속 쓰림이 줄어들었다.



갑작스러운 수면 시간 변화에 매일 밤 잠들지 않으려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힘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쉬운 방법이 있었다. 그건 바로 가족 모두가 일찍 잠이 드는 것이다. 아이의 피로가 몰려오는 시간인 아홉 시면 방에 들어가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 '자라.'라고 몇 번 말하다 보면 아이는 대체로 입을 삐죽이면서도 곧장 잠이 들었다. 아이와 같이 일찍 잠들기. 이것은 가장 쉬운 방법이자 가장 어려운 방법이었다.



방학이라고 다를까. 습관은 무서워서 방학 때도 어김없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여름이라 다섯 시쯤 일어나도 창밖은 이미 밝았다. 같이 잠이 들어도 언제나 나보다 한, 두 시간은 늦게 일어나는 아이 덕분에 매일 아침, 짧게나마 혼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요즘은 아이가 등교도 하기 전에 우리 두 사람이 먹을 밥을 하고 집안을 정리한다. 누군가는 내가 일찍 일어난다는 말에 남들보다 하루를 길게 살아 좋겠다고 하지만, 그만큼 남들보다 일찍 잠들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다. 다만 이른 시간에 이부자리에 들어 푹 잠들고 일어나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개운하다. 비록 예전처럼 늦게까지 영상을 보며 낄낄 거릴 시간은 없고, 일찍 잠들기 위해 커피는 입에도 대지 말아야 하며, 대부분 밤에 이루어지는 단톡방 대화는 언제나 맨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점은 아쉽지만 아이 건강과 덤으로 내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면 바꿀 가치는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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