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혼자서 화장실 가기, 밥 먹기, 인사 잘하기, 선생님 말 잘 듣기, 혼자 옷 입기를 연습시켰다. 학교에 간 후로는 교문에서 교실 잘 찾아가기, 수업 마치면 교문으로 곧장 나오기, 그리고 대답 잘하기를 매일 교육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생각지도 못한 교우관계에서 나타났다. 그것을 알아차린 건 아이가 학교에 가고 한 달쯤 지났을 때다. 학교 시스템이 마냥 새롭고, 처음 만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마냥 신났던 아이에게서 급격히 짜증이 늘었다. 학교에서는 잘 지내는 듯하다가도 교문만 벗어나면 온갖 불만을 털어놓았다.
학교에 가기 전에는 같은 반에 늘 친한 친구가 있었다. 새로운 반, 새로운 유치원에서도 친한 친구들을 비롯하여 아는 얼굴이 여럿 있었다. 그렇지만 학교에 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새롭게 친구를 사귀었지만 원래 단짝과는 다른 타입이라 재미있게 놀다가도 한 번씩 크게 부딪히는 면이 있는 듯했다. 예전에는 한 친구와 다투더라도 다른 친구와 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학교에는 새롭게 어울릴 친구가 없단다. 유치원에서는 함께 놀 친구가 없을 때면 노트를 챙겨 보냈고 노트만 한 권 있으면 그림을 그리며 혼자서도 잘 지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혼자 노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선생님은 되도록 아이들에게 다양하게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혼자 노는 것이 버릇되면 그 후로는 누군가와 어울리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테니까. 아이는 힘들어하지만 나 역시 선생님 말에 동의한다. 아직은 힘들어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워야 할 시기니까.
매일 잠들기 전 아이와 대화를 나눈다. 아이는 다른 친구들은 다 잘 지내는 것 같은데 자기만 잘 못 어울리고 잘 못 지내는 것 같단다.
최근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다. 나도 한동안 챙겨보다가 마음이 괴로워져서 결국 하차했다. 그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어릴 적 친구와 겪었던 일들이 자꾸 겹쳐서 떠올랐다. 학창 시절에 친구는 생존이었다. 무리에서 벗어나면 마치 누군가의 먹잇감이 될 것 같았다. 친한 무리나 단짝 친구가 있다고 해서 마냥 안심할 수도 없었다. 내 단짝이 무리에서 리더 격이면 겉으로는 친한 사이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상하 관계가 형성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때는 리더였던 아이가 다음 해에는 왕따를 당하고 소극적인 줄 알았던 누군가는 또 어느 무리에서 리더 역을 하고 있을 때가 있었다. 마치 생명력이 있는 존재처럼 학교 속 친구 관계는 매일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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