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키머러/하인해 옮김/눌와
<이까와 함께>는 제법 유명한 책이다. 누군가는 작가 로빈 월 키머러의 <향모를 땋으며>와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를 재미있게 읽은 후 알았거나, 서점에서 보았을 수도 있다. 아마도 대부분은 한강 작가가 한강 작가가 아버지 한승원 작가에게 선물한 책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을 이끼에 대해 한참 궁금해하던 시기에 만났다. 남태평양 섬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고대 생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관련 책을 찾기가 어려웠다. 몇 년의 기다림 끝에 이끼를 다룬 이 책 출간 소식을 들었다. 작가의 전작 <향모를 땋으며>를 읽다가 포기한 적이 있어 잠깐 고민했지만 결국 이끼를 알아보고자 구입 후 끝까지 읽어 보았다.
생명은 생명을 부른다. 91쪽
이끼가 숲에 끼치는 영향을 이보다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이 있을까. 남태평양에 위치한 대륙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에 제일 먼저 뿌리내린 식물 역시 이끼와 고사리였다. 사람 손이 닿기 전에는 화산섬인 하와이 역시 하등식물로만 가득했을 거라고 한다. 흙보다는 검은 돌이 많은 섬에서 나무 대신 하등 식물이 살았다는 사실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선뜻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것도 없는 폐기물 더미에서는 거의 뿌리내리지 않는 야생화가 솔이끼가 있는 곳이라면 거의 어디든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85쪽
이 책에는 폐기물 더미 위에 이끼를 심자 그 후로 다른 생명들이 덩달아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는 실험 결과가 나온다. 지구 땅 위의 일부분이 이미 쓰레기 더미로 뒤덮인 상황에서 이끼가 숲, 그리고 지구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할지, 앞으로의 세상에 어떤 희망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밝히는 대목이다. 이끼라면 어느 척박한 땅에서도 생명을 싹 틔우고 더 나아가 다른 생명을 위한 터전을 마련해 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끼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식물인지를 알리는 것이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생물학자가 아닌 사람이 생물에 관한 책을 읽을 때는 보통 두 가지 의도가 있다. 하나는 특정 생물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을 때, 또 하나는 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지혜를 얻고 싶을 때이다. 그들이 지구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궁금하거나 혹은 닮고 싶거나 둘 중 하나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두 가지 이유를 모두 충족한다.
로빈 월 키머러 글의 특징은 작가가 보는 모든 풍경을 해상도 높은 화면을 보듯 자세하게 묘사한다는 점이다. 같은 장소에 서 있어도 내 감각으로는 놓치고 갈 수많은 장면을 작가는 하나씩 짚어가며 알려준다. 이 책에서는 작가가 자연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간접적으로 그 시각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제대로 보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우리는 겉만 훑어보면서 '보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중간 척도에서 우리 시야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시력이 나빠서가 아니라 마음의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장치들이 너무 뛰어나서 우리는 맨눈을 믿지 못하게 되었을까? 아니면 기술이 없더라도 시간과 인내만 지니면 인지할 수 있는 것들에 우리가 무관심할 걸까? 세심함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망원 렌즈를 능가할 수 있다. 23쪽
매일 같은 길을 산책하다 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을 느닷없이 발견하는 때가 있다. 마법처럼 나타났다고 믿어질 만큼 아주 갑작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그 길을 얼마나 자주, 많이 지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자세히 봤는지가 더 중요하다. 가을에서 겨울이 넘어가면 거리를 물들이던 단풍도 다 떨어져 온통 앙상한 가지만 남은 풍경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거리에는 짙은 초록잎을 단 나무들과 마른나무줄기 위로 핀 지의류가 있고 땅에는 여전히 이끼들이 자라나고 있다. 건조한 날씨 때문에 조금 칙칙한 색을 띠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들거나 죽은 것은 아니다.
이끼는 몸속 수준 중 98퍼센트까지 잃더라도 다시 물이 공급되면 깨어날 수 있다. 69쪽
거의 죽음에 가까운 상태까지 가서도 수분만 있으면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일까. 이끼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지 않다. 길을 가다 꽃을 꺾으려는 사람에게는 손가락질해도 길을 걷다 이끼를 발로 차는 사람에게 생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설교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이끼도 아무 환경에서나 자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찮게 보일 수 있는 생명이지만 알맞은 조건이 아니면 자라나지 못하고 대신 잘 적응만 하면 다른 생명들을 이끌고 올 수 있다.
당신은 밖에서 걸을 때마다 보도블록 틈에 서식하는 수백만 개의 은이끼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밟았을 것이다. 159쪽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도 이끼를 키우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더욱 이 책을 추천한다. 이끼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끼를 내 공간에 끌고 와 보살피는 동안 간과하는 문제를 마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랜드마크와 맛집으로 길을 기억하는 시대. 길을 알지 못해도 화면 속 지도만 똑바로 쳐다본다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다. 우리는 가상현실 속을 걷는 것이 아님에도 현실 풍경을 기억하지 못한다. 도시 바닥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이끼 대신 유리 상자 속 이끼를 보며 감탄하고 지의류를 이끼라 부르며 벽을 장식한다. 이끼와 식물을 내 공간으로 가져와 매일 들여다본다고 해서 그들을 정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진실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끼와 함께>는 이끼 자체가 가진 생존 능력과 번식 능력, 이끼가 가진 가능성으로도 감탄을 일으키지만, 그 이상으로 다른 생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진정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가 바버라 킹솔버Barbara kingsolv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중히 여기는 대상이 소유욕으로 가득한 우리의 품 밖에서도 잘 지내도록 보호하고 싶다면 가장 이타적인 사랑을 해야 한다." 2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