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만 프로젝트' - 훌라
‘뒤뚱뒤뚱’
하면 엉덩이가 커다란, 그렇지만 체구는 작은 귀여운 생명체의 아장아장 걸어가는 뒷모습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뒤뚱뒤뚱’하면 훌라를 추는 내 뒷모습이 자꾸 연상된다.
‘읏차읏차’, ‘뒤뚱뒤뚱’ 거리며 영상 속 훌라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 한다. 선생님의 손끝은 파도에 실려오는 하얀 물거품처럼 미세하고, 가슴부터 발끝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몸 선은 매끄럽게 흐르는 바다 물결을 연상케 하지만, 텔레비전 화면이 어두워질 때마다 언뜻언뜻 나타나는 반사된 나의 움직임은 그저 뒤뚱뒤뚱과 삐걱삐걱 의 어디 중간쯤을 떠올리게 한다. 스텝을 옮길 때마다 입가에서 새어 나오는 ‘읏차읏차’ 소리는 또 뭔지. 분명 나는 노를 젓는 게 아니라 온 몸으로 바다를 표현하고 있는 것일 뿐인데 자꾸만 입으로 ‘읏차’하고 기합을 내뱉고야 만다.
훌라를 춘다고 할 때, 한 곡 전체를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설프게라도 다 따라 추는 거라고 상상하는 이가 있다면, 정정해드리고 싶다. 나는 노래 한 곡에 맞춰 훌라를 추는 게 아니라 동작 하나, 혹은 둘을 반복해서 출 뿐이다. 그리고 그 단순해 보이는 동작을 따라 추는 내내 뒤뚱 거리고, 읏차읏차 거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 모습을 보는 이가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망하고 한심스럽고 부끄러워서 뭐, 얼굴도 빨개지고 그런다.
기초 스트레칭과 스텝을 배우다가 포기하고 자세교정을 하고 난 후부터는 손동작을 중심으로 훌라를 익히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으로 익혔던 바다와 물고기 동작은 상당히 단순한 편인데 그게 선생님처럼 유연하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스텝과 함께 추기 시작하면 팔과 손가락 관절은 더욱 삐걱거린다. 바다와 물고기 이전에 산과 나무를 배우는 영상도 있었는데 산과 나무, 그리고 꽃은 바다와 물고기에 비하면 어려워서 선생님의 영상 순서와는 상관없이 바다와 물고기부터 익히기 시작했다.
손끝부터 팔꿈치를 이용하여 물결처럼 웨이브를 만들면 바다, 두 손을 바닥을 향하도록 포개고 가운데 손가락 세 개는 붙인 채 바깥쪽의 양 손가락을 떼어낸 후 웨이브를 만들어주면 물고기가 되는 데 따라 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진짜 바다처럼 움직이거나 물고기처럼 표현해 내는 건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 시선처리와 목 선을 신경 쓰는 것도 어렵고 스텝이 시작되면 몸통은 가만두고 하체만 움직이는 것은 아무리 해도 잘 되지 않아 답답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난관은 간주 부분의 스텝인데, 아무리 반복해서 봐도 간주 부분의 스텝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왜 저렇게 커다란 치마를 입고 춤을 추시는 걸까. 줌 수업이나 현장 수업을 기피했던 가장 큰 이유가 노출된 의상 때문이었는데(줌 수업이나 현장수업을 하는 분들 중 몸이 드러나는 의상을 입은 본인과 학생의 사진을 홍보용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 막상 춤을 따라 추려고 하니 몸매를 덮은 선생님의 의상이 배움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단번에 이해됐다.
다리가 앞으로 나올 때 골반은 어떤 모습인 걸까, 뒤로 빠진 다리는 어떤 모습이고 뒤꿈치는 얼마만큼 힘이 실려 있는 건지 주어진 화면 만으로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어 아쉬웠다. 덕분에 구글맵처럼 360도 회전 장면을 보고 싶다는 욕구가 춤을 따라 추는 짧은 몇 분 사이에 몇 번이나 끓어올랐다.
훌라를 출 때마다 몸치가 춤을 배우려고 시도했다는 것에 심히 후회가 됐다. 왜 하필 훌라를 추려고 했더라,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인연 이전에 애초에 내가 훌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하와이의 자연을 노래하는 하와이 곡들과 그 곡을 몸으로 표현하는 훌라. 그중에서도 수어를 연상하게 하는 율동이 좋았던 거 같다. 아마도 하와이어를 전부 알지 않아도 훌라를 알면 노랫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했다. 감정과 사건을 자기 나름의 느낌으로 표현하는 춤도 좋지만 수어를 배울 때처럼 단어와 관련된 동작을 외우고 그 동작을 모아 춤으로 만드는 훌라가 마치 몸으로 표현하는 노랫말 같아 흥미가 갔다.
방구석에서 아무리 훌라를 따라 춘다 한들, 남들 앞에서 출 만한 실력이 안 될 거란 건 미래의 내가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뻔히 보이는 사실. 그렇다면 나의 목표는 훌라 댄서가 아니라 훌라 댄서들의 춤을 보고 그 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하는 걸로 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목표는 남들 앞에서의 훌라 공연이 아니라 남들의 훌라 공연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눈을 갖는 것. 목표를 바꾸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 얼마나 알맞은 자기 합리화인지! 마침 글의 제목도 <운동하랬더니, 훌라를 마스터한단다>나 <운동하랬더니, 훌라를 잘 추겠단다>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그저 ‘훌라를 시작해보겠다’니 이 순간 과거의 나에게 깊은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