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바람 날 지도 몰라

'세 달만 프로젝트' - 훌라

by 으네제인장

‘몸이 안 좋은 걸까’

자꾸만 잠이 오고 축 늘어지기만 하는 어느 오전 시간, 기운을 내기 위해 아껴뒀던 만 이천 원 짜리 피로회복제를 꺼내 단숨에 들이켰다. ‘아으~ 써.’ 반짝 거리는 금색 뚜껑의 비싼 피로회복제는 쓴맛의 강도와는 달리 시간이 흘러도 기운을 회복시킬 기미가 없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더 늘어지니 문득 춤이나 춰볼까 하는 생각에 텔레비전 앞으로 가 훌라의 한 곡 댄스 영상들을 틀어 따라 흔들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운동이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데, 약간의 우울감이나 울적함에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걸 훌라를 추며 느끼고 있다.


훌라를 추며 기분을 전환시키고 나면 없던 기운도 조금씩 생겨난다. 처진 기운이 몸의 문제가 아니라 기분 탓이었나 보다, 그래서 피로회복제가 도움이 되지 않았나 보다, 알아차리면 그때부터는 기분을 나쁘게 한 문제가 뭔지, 기운을 내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뭔지 조금씩 뚜렷해진다.


‘아, 피곤해.’

라고 말하게 되는 날 아침이면 얼른 훌라를 추고 싶어 집안일도 평소보다 빨리 끝낸다. 집안일에 할애하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짬을 만들어 훌라를 추고 싶어서다. 열어둔 창문으로 습도 높은 바람이 불어 들어와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습도는 싫은 것이 아니라 그냥 습도일 뿐이라는 것, 바람은 바람, 햇빛은 햇빛, 공기는 그저 공기라는 생각으로 춤을 춘다.


아무리 즐기는 일이라고 해도 괜히 기합을 조금 넣어 추고 싶은 날에는 아랫배에 힘을 잔뜩 춘다. 땀이 흐를 정도는 아니지만 그냥 설렁설렁 출 때보다 체온이 오른다. 사십 분 가량 춤을 추고 소파에 앉아있으면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와 몸의 열기를 식혀준다. 심장은 경쾌할 정도로만 콩닥 거리고 덕분에 아침 피로로 인해 덜 깨어났던 몸이 가벼워진다.


잘 추는 것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후로는 훌라가 한층 더 재미있어졌다. 사실 세 층이라는 말이 있다면 세 층 정도는 더 즐거워졌다고 말하고 싶다. 스텝에 집중할 때는 그렇게도 잘 안되던 간주 동작은 리듬에 맞춰 추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 어느새 꽤 능숙해지기까지 했다.


아는 노래가 나오면 괜히 귀에 익은 가사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추기도 하는데 그러면 흥이 더욱 무르익는다. 가사를 다 외워서 부르면 더 재미있을 거 같은데, 하는 생각에 훌라를 추다 말고 노래와 가사를 찾아 따라 부르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하와이 무드로 바뀌어 있다.


리듬에 맞춰 마구잡이로 추다 보니 ‘삐걱삐걱’은 여전하지만 ‘읏챠읏챠’에서는 조금씩 벗어나게 됐다. 잘 추기 위해 긴장하고 있지 않아도 괜찮아, 틀려도 괜찮아 라고 생각하며 춤을 추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초심과는 달리 하늘과 땅을 잇는 존재라는 것도 잊는다. 그저 자연의 일부처럼, 바람결에 흔들리는 들풀처럼 몸을 살랑살랑 흔들다 보면 땀은 나지 않아도 서서히 몸이 깨어난다.


빠른 음악에 복잡한 동작의 훌라 댄스도 있고, 느린 발라드에 추는 느긋한 춤도 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심장 박동과 비슷한 박자의 노래에 추는 훌라다. 몸의 흐름을 억지로 바꾸는 대신 있는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 정말이지 즐거워서 요즘 건전한 방구석 춤바람이 제대로 들어버렸다.


조금도 힘들지 않아, 그저 몸을 즐겁게 깨우기 위해 훌라를 추다 보면 피곤이 가득한 오전도 두렵지 않다. 빈속에 커피를 들이켜는 일은 원래도 없지만, 그래도 물을 마셔서 속을 순환시킬 때보다 스트레칭을 하고, 춤을 추는 편이 오전 정신을 맑게 하고, 처진 기운을 일으켜 세우는 데에 훨씬 효과가 있다. 그러니 자꾸 훌라 생각이 날 수밖에. 춤바람이 난다고 해도 별 수 없다. 이렇게 무리 없이 기분과 기운을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방구석 훌라 춤바람 정도야 나라면 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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