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에 관한 오해

이소영/위즈덤하우스

by 으네제인장

노래 경연 대회 방송을 보면 나쁜 습관을 버리고 기분에 충실하여 부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새해에는 자연과 조금 더 가까워지려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쁜 습관처럼 기억에 새겨진 잘못된 오해가 아닐까. 그래서 2026년에 소개하는 첫 책으로 이것을 골랐다. 바로 이소영 식물학 일러스트레이터의 <식물에 관한 오해>다.


이 책의 맨 끝, 뒤표지 안쪽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무언가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대상과 같은 높이에 시선을 두려는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는 감각만으로는 대상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책 한 권을 읽는다고 해서 식물에 관한 오해를 다 풀 수는 없다. 책 속에 나온 오해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굳이 마지막에 저 문구를 넣은 것은 식물 하나하나에 얽힌 오해를 푸는 일보다 식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일이 가장 중요해서 일 것이다.


목차를 보면 처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식물에 관한 오해'라는 챕터다. 그다음으로 '식물을 바로 바라보기', '식물의 힘', '식물과 함께 하는 생활'이 이어진다. 오해를 푸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을 제대로 알고,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목차를 구성한 글에서 전해진다.


식물을 두고 가지는 오해로는 대체 무엇이 있을까. 가장 큰 오해는 작가가 '들어가며'에 써 둔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식물을 연약하고 수동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건 식물이란 생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방증이며, (중략) 제가 만나온 식물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며, 땅에 고정되어 있을 뿐 빠르게 형태를 변화시키고, 번식을 위해 누구보다 삶에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교묘하게 공격적이기까지 한 생물입니다.


식물이 연약하고 수동적이라 생각한다면 보호해야 마땅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쉽게 식물을 업신여기거나 입으로만 불쌍히 여긴다. 멋대로 약한 존재라 부를 거라면 적어도 아껴주는 노력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도 않는다. 오히려 식물이라는 약한 이미지를 조롱하거나 약한 존재로 보이고 싶을 때 식물이 가진 이미지만 도구처럼 사용한다.


우리 주변의 실내 화분, 가로수, 꽃시장이나 꽃집에 놓인 식물들에게는 스스로 번식하고 살아갈 자유가 없다. 오로지 인간이 원하는 장소에 놓이고, 인간의 손길에 의해 생과 사가 결정된다. 적어도 틈새의 식물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뿌리를 내려 스스로 살아간다. 16쪽


이 분야에서 잡초만큼 많은 오해를 가진 식물이 있을까. 온실 속 화초는 약하고, 길가 잡초는 강하다 말하지만 반대로 틈새에 자라거나 보기에 엉뚱한 장소에 터를 잡은 잡초는 불쌍하다, 외로워 보인다며 마음 아파한다. 실제로 그들이 강하고 약한지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 시선에서 그들을 멋대로 판단하고 틀 안에 가둬버린다. 마음껏 햇살을 쐴 수도 있고 자연에서 자유롭게 오가는 곤충과 균과 공존하는 틈새 잡초가 과연 불쌍하고 외로운 존재일까.

식물에 얽힌 또 다른 오해는 바로 기후위기와 관련된 것이다. 익숙한 계절이 아닌 다른 때에 피어난 꽃을 두고 기후위기의 근거로 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기후위기는 분명 많은 생물에게 혼란을 주고 있지만 때로는 제때 피운 꽃을 두고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든 문제를 다 기후위기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오히려 기후위기라는 중대한 문제를 한낱 낭설로 치부해 버릴 근거가 되기도 한다.


춘추벚나무와 장미가 가을에 꽃을 피운 게 이상해 보인 것은 가을에 꽃 피우는 장미와 벚나무가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를 의심하기 이전에 우선 우리의 무심함부터 돌아볼 일이다. 34쪽
자연은 설정값을 넣으면 늘 같은 결괏값이 나오는 물건이 아니다. 인간 개체 각의 생각과 행동을 누구도 예측할 수 없듯, 식물 역시 수많은 개체 중 단 한그루, 가지 하나의 꽃 하나 정도는 타이밍을 착각해 불시개화(개화하는 시기가 아닌데 개화하는 현상) 할 수도 있다. 35쪽


가을에 핀 꽃을 두고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건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인간이 저지른 일을 두고도 기후위기 탓으로 돌릴 때에 있다.


산을 깎아 도로와 아파트를 짓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식물을 찾는답시고 생태계 교란의 위험이 있는 외래 생물을 적극적으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우리 고유의 자생 생물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조차 사람들은 '기후 위기'라는 단어로 뭉뚱그려 지구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을 아닐까. 35쪽


사회가 먼저 나서서 변화해야만 해결되는 개인 문제도 있지만 때로는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도 사회 탓을 하는 경우가 있다. 자연에서 식물을 대하는 과정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뭐든지 기후위기 탓을 해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 저지른 일은 인간이 해결해야 한다.


여기서 언급한 오해는 책에 나온 것 중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매실나무, 목련, 벚꽃, 장미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열을 내뿜는 식물, 독을 가진 식물 등 신비로운 이야기와 식물에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과 팜유를 통해 식물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도 마련되어 있다. 흥미로운 식물 이야기를 하나씩 해 나가는 동안 식물에 관한 여러 오해는 대부분 인간의 착각과 잘못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배운다.


식물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리는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꽃다발일 수도 있고, 집에서 애정을 다해 보살피는 화분일 수도 있다. 길가에 핀 잡초나 인도에 있는 가로수, 산과 들에 있는 나무와 풀을 연상할 수도 있다. 인도 틈에 자라나는 이끼도, 들풀도, 화단에 있는 낮은 나무도, 길가의 큰 나무도 모두 식물이다. 그 모든 존재를 식물이라는 이름 하나로 부른다는 것은 그만큼 생겨나는 오해도 많다는 뜻일 테다. 올해에는 이 책을 읽고 타인이 그 어떤 편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봐주길 바라는 마음처럼, 식물 역시 선입견을 지우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한 해이길 바라본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