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만 프로젝트' - 훌라
무척이나 더운 한 주였다. 훌라를 추고 싶은 마음은커녕 모든 기본 욕구마저 잊게 하는 습한 더위. 게다가 다음 주부터는 더 더워진다고 하던데 이 정도면 춤을 출 게 아니라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낫지 않을까.
갑작스러운 더위에 의욕을 잃고 소파에 앉아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을 읽었던 어느 날, 신작도 무척 좋았지만 하와이에서의 일상을 기록한 <꿈꾸는 하와이(夢みるハワイ)>가 떠올랐다. 이 책은 하와이 관련 에세이 중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하와이는 미국령이지만, 그리고 원주민의 땅이지만 그곳에는 일본인의 비율도 결코 적지 않다(물론 한국인도). 역사의 영향이라는 건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하와이에 가서 영어보다 일본어를 더 자주 사용했던 것도, 하와이어를 처음 배울 때 일본에서 만든 하와이어책의 도움을 받은 것도 다 우연은 아니다.
우리나라보다 하와이에 살 거나 오간 사람도 많고, 하와이를 사랑한 시기도 더 빠르다 보니 아무래도 하와이 관련 책이나 정보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에 훨씬 많다. 특히나 ‘요시모토 바나나’는 폴리네시안 국가의 섬이나 자연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다른 작가에 비해 열대 섬 관련 이름의 소설이나 에세이도 많다. 내가 만나본 책들 중 여성의 시선에서 하와이를 바라본 에세이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 처음이라 예전에도 지금도 하와이 에세이 하면 <꿈꾸는 하와이>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에세이뿐 아니라 하와이어, 하와이 패션 모두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보니 하와이나 하와이 문화를 접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일본의 정보에 기대게 될 때가 많다. 얼마 전에 구매한 훌라 잡지 <Hula Lea> 역시 일본에서 만든 계간지다.
여기부터 유료 분량입니다.
훌라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일본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훌라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아무래도 선택의 폭이 넓지가 않다. 어차피 온라인으로 배우는 거라면 지역적 한계에서 벗어나 조금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선생님에게 욕심이 생기다 보니 나 역시도 결국엔 일본인 훌라 선생님을 찾게 되었다.
더 많은 훌라 정보를 얻기 위해 일본의 훌라 선생님을 찾게 되는 게 나뿐은 아닌지 많은 선생님들이 훌라 정보를 올릴 때 일본어와 한국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몰랐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일본과 우리나라 양국을 오가며 훌라 수업을 하다가 최근에는 줌 수업으로 훌라 수업을 대체한 선생님도 있었다.
내가 자주 찾는 선생님은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수업을 올릴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주로 일본어를 사용하지만 페이스북의 훌라 영상에서는 한국어로 수업을 해주고 있다. 줌 수업처럼 시간을 정해두고 하는 수업이 아닌 선생님이 올려주는 영상을 원하는 기간 동안 마음껏 오픈해서 볼 수 있도록 만들어둔 페이스북 훌라 수업은 나처럼 비정기적으로 훌라를 연습하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유용한 서비스다.
훌라를 배우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고, 훌라를 가르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 게다가 훌라는 수어 춤이다 보니 사람들은 각자 서로의 언어를 이용하여 하와이어라는 제3의 언어를 익히게 된다. 훌라를 추며 훌라의 손동작을 익히고, 그 춤이 노래하는 곡의 하와이어 가사를 다시 우리말이나 일본어로 공부하는, 그야말로 일석이조 언어 공부가 된다.
몇 년 전 하와이 여행을 앞두고 일본 작가들의 하와이 에세이를 찾아보거나 경유지로 들린 일본에서 하와이 여행책을 살 때 우리나라보다 많은 하와이 정보를 가지고 있는 그들이 조금 부러웠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에도 하와이에 대한 책이나 정보가 많아지긴 했지만 훌라에 대한 것은 아직 일본보다 부족한 듯하다.
그게 뭐 어때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꼭 훌라나 하와이뿐 아니라 많은 분야에서 정보로 앞선 일본을 생각하면, 그리고 그 원인이 되는 역사를 떠올리면 마냥 좋다고만 하기가 어렵다. 그들이 하와이를 여행하고 사랑하는 동안, 하와이에 대한 책을 쓰고 훌라를 추는 동안, 무너진 나라를 재건축하고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린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속이 쓰리기도 하다. 훌라를 배우면서 생각이 너무 멀리 가버린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훌라를 추고 하와이를 좋아하다 보면 일본을 접하게 되고, 그러면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하와이에 대해 더 많은 걸을 즐기고 좋아하게 된 배경을 떠올리게 되니까. 훌라를 좋아하고 하와이를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런 과거의 일들이 가끔 씁쓸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