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만 프로젝트' - 훌라
‘아이고 훌라는 무슨 사치다 사치.’
어린이의 방학이 시작된 후로는 매일 같이 ‘아이고고’하고 곡소리를 내는 중이다. 자다가도 허리가 아파 깨어나는 걸 보니 그래, 육아란 이런 거였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집안일과 육아, 그리고 글을 쓰고 책까지 읽으려면 그래, 곡소리가 이 정도는 나와줘야지.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를 안아 든 날의 저녁이 되면 잠깐 핸드폰을 들고 있는 동안에도 손목이 덜덜 떨린다. 아이의 방학 기간 동안에는 인스턴트 밥과 배달시킨 반찬으로 연명할 생각이었는데 풉, 웃기는 소리, 다 있는 음식을 그냥 차려 먹을 힘도 남아 있질 않아 결국엔 퇴근한 남편을 향해 ‘아무거나 시켜먹자 아무거나’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다.
하루 일과를 보내고 나면 장아찌처럼 쪼글쪼글 절어버린 모습이 되지만 씻을 힘이 없어서 낭패일 때도 적지 않다. 차라리 안 먹고 덜 자고 말지 씻는 일과 청소 만은 미루지 않았던 내가 육아 앞에서는 달라진다. 모든 욕구 중 가장 강했던 ‘씻고자 하는 욕구’가 피로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야 만다. 오늘 안 씻으면 내일은 못 씻을지도 모른다는 불투명한 미래가 아니었다면 이 더위에도 안 씻고 잠드는 날들이 아마도 줄줄이 이어졌을 거다.
이런 생활이 고작 며칠만 이어져도 고된 운동 대신 훌라를 고집한 연유들이 다시금 떠오르게 된다. 그래, 굳이 일부러 힘든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거다. 당장에라도 씻지 않으면 안 되는 땀나는 운동을, 근육통이 생기는 운동을, 인상을 쓰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운동을, ‘죽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운동을 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런 건 운동을 하지 않아도 그냥 일상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훌라를, 추고 싶을 때마다 춘다는 건 ‘여유’다. 땀 대신 몸에 살짝만 열이 날 정도만 하는 것도, 근육통이 살짝만 생기게 하는 것도, 미소가 절로 번질 만큼만 하는 것도 다 여유다. 내게 필요한 건 몸을 고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적당히 움직이며 굳은 몸을 푸는 정도로만 하는 운동 혹은 움직임이다.
아니, 얼마 전만 해도 근육이 빠져서 살이 덜렁거렸는데, 단 며칠 사이에 남은 지방도 빠진 건지 출렁, 덜렁 거릴 건덕지가 없다. 언제나 그랬듯 정말이지 육아는 날 야위게 한다. 휴.
힘이 들 때 훌라를 추고 싶다 생각하는 건, 훌라를 출 만한 여유를 되찾고 싶다는 거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잠에 취한 상태에서도 계속 어떤 일을 해야만 하는 일상 말고 ‘아이고, 골반을 좀 흔들었더니 다리가 조금 쑤시네, 히히’ 정도로만 딱 힘들고 싶다. 아 물론, 그런 일상은 꿈같은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훌라를 출 수 있을 만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라도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꾸게 된다.
딱 열흘뿐인 아이의 여름방학, 집구석에 처박혀 씨름하는 일 말고 휴가를 맞은 남편과 셋이서 하와이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딸아이와 함께 훌라를 배우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아이가 잠든 동안 다른 할 일 없이 방구석 훌라를 출 수 있다면(그런데 아이가 잠을 자지 않는다. 할 일이 많은 건 두말할 것도 없고), 집안일을 하는 동안 하와이 음악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지금은 정말 더할 나위 없겠다.
*기분을 하와이 무드로 바꿔줄 노래 한 곡 추천!
Ke Kali Nei Au - Bill Kaiwa
최근에 읽은 책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1900년대 초 하와이로 사진결혼을 떠난 조선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읽다 보면 눈시울이 자주 붉어지는데 그들이 처한 형편과 그 형편에도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마음을 다 잡는 그들의 상황이 마치 내 엄마나 할머니의 일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자주 동하기 때문이다(진짜 내 엄마나 할머니가 살아온 환경과는 많이 멀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 쉽게 이입이 되는 게 신기하다).
사진으로 외모를 확인하고, 그들이 전해주는 정보만 믿고 포와(옛날에 쓰였던 하와이를 일컫는 말)로 떠난 조선의 처자들은 하와이의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신랑의 얼굴을 보고 혹은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통곡을 한다. 이미 혼인신고를 끝내고 온 거라 이제와 결혼을 물리기도 어려운 처지라 처자들은 그저 삼삼오오 모여 서로를 부둥켜안은 밤이 새도록 우는 것 밖에 하지 못한다. 조선만 그런 게 아니라 함께 배를 타고 온 일본인 처자들 역시 같은 이유로 눈물짓지만 결국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단체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책 속에는 단체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과 그때 입은 옷과 꽃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만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는지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하와이니까 결혼행진곡이 나왔을까, 교회라면 찬송가가 나왔을까, 멋대로 상상을 해보다 문득 하와이 음악 중 결혼 음악도 있는지 궁금해졌다. 찾다 보니 어렵지 않게 결혼 곡을 찾아냈는데 버전이 정말 다양했다. 하와이라고 해도 조선인들의 단체 결혼식장에서 하와이의 결혼 음악이 흘러나왔을 리 없지만 만약 그들의 결혼이 조선에서 상상했던 것처럼 여유롭고 호화로운 것이었다면 어쩌면 결혼식 내내 흘러나오는 여러 곡들 중 한 번쯤은 저 곡이 나오는 때도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Elvis Presley가 부른 영어 번안 버전인 Hawaiian Wedding Song은 하와이 느낌은 덜하지만 Elvis Presley의 묵직함 음색이 듣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