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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Jul 27. 2022

부채춤을 추면 '열이 올라요'

쥘부채를 들고 춤을 추다 보면 맨손으로 출 때보다 빨리 땀을 흘린다

뻐근해진 등근육에 잠을 설쳤다. 부채를 들고 춤을 출 때 어떤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지 알 수 있을 만큼 딱 오른쪽 목부터 등까지의 근육만 뭉쳤다. 맨손을 휘휘 저을 때는 팔 근육만 당겼는데 부채를 들고 춤을 추기 시작하니 뭉치는 근육의 폭도 한층 넓어졌다.


한국무용 수업을 처음 등록할 때만 해도 내가 출 무용이 어떤 것일지 알지 못했다. 시간대가 맞다는 이유로 영남교방청춤 수업을 골랐을 뿐인데 느린 박자에 고상한 느낌의 춤이 마음에 들어 다행이라 여겼다. 세 달이 지나고 여전히 같은 시간대의 수업을 새로 등록한 터인데 갑자기 이번에는 부채춤을 춘다길래 조금 의아해 하긴 했지만 지난번 춤과는 다른 매력의 춤사위를 보자 수업 첫날부터 의욕이 솟았다.


부채춤에 흥이 난 건 비단 나뿐이 아니라서 많은 수강생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에 임한다. 어찌나 의욕이 넘치는지 기본 동작으로 몸을 풀고 난 쉬는 시간에도 선생님이나 잘하는 분에게 부채춤 동작을 물어보거나 보충 연습을 한다. 다들 아직은 서툴기 때문에 정작 다 같이 춤을 춘다고 해도 아이돌의 무대처럼 칼각같은 퍼포먼스는 기대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부채를 든 손으로 같은 방향을 향해 팔을 뻗고 내리고 젓다 보면 부채의 꽃그림 탓인지 맨손으로 추던 춤보다 더 우아해 보인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썼던 부채보다 두껍고 무거우며 선명한 그림이 그려진 연습용 양면 부채는 질이 들지 않아 아직은 잘 접히거나 펼쳐지지 않는다. 그런 부채를 들고 팔을 위로 들었다 내렸다, 그리고 접었다 폈다 하다 보면 맨손으로 춤을 출 때보다 금방 몸에 열이 난다. 동선을 익히는 일이나 동작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도구까지 추가가 되니 간단한 동작에서도 헤매는 일이 다반사다. 다들 의욕은 넘치나 기본 동작 수업이 끝난 뒤에 볼 수 있었던 활기찬 기세는 부채춤 수업이 끝나자마자 꺾이고야 만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면 지난 수업 때의 고됨을 잊은 채 설레는 마음으로 부채 주머니에서 부채를 하나둘 꺼내기 시작하는 것이 보고 있으면 너도나도 같은 마음인 게 느껴져 웃음이 난다.


요즘에는 없겠지만 예전에는 국민학교, 초등학교 운동회날 다 같이 무용을 추는 행사가 있었다. 가장 어린 학년인 1학년의 꼭두각시 춤도 귀여웠지만 꼭두각시 춤을 연습하던 당시에도 언니들의 부채춤이 참 어른스러우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년이 올라간 후 부채춤을 추게 되었을 땐 기분이 썩 좋았다. 부산의 초등학교에서는 방과 후에 동래학춤을 가르치는 곳도 많았는데 어린 마음에 하얀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추는 동래학춤보다는 한복에 깃털 달린 부채를 들고 추는 부채춤에 더 흥미가 갔다. 고학년이 되어 드디어 부채춤을 추게 되었을 때는 부드러운 깃털이 달린 쥘부채 하나를 들었을 뿐인데 마치 선녀가 된 기분이 들었다. 여럿이 보여 꽃 모양을 재현해내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동그란 모양을 예쁘게 잘 만들어냈을 때는 뿌듯하기도 했다.


얼마 전 가수 선미의 무대에서는 커다란 부채가 등장했다. 접히거나 유연하게 움직이는 부채는 아니지만 커다랗게 제작된 부채로 무대를 한 공간을 채워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적인 색을 표현하기 위해서 부채춤과 고무줄놀이를 안무에 넣었다고 하던데 현대적인 의상이나 훌라춤을 변형시킨 안무가 섞여 아주 한국적이라고 느껴지진 않아도 부채로 인해 이색적이고 풍성하게 꾸며진 무대에 보는 재미가 있었다.


부채춤은 우리나라의 전통춤으로 특히 여럿이 동그랗게 모여 꽃 모양을 나타내는 동작은 우리나라 부채춤에서 볼 수 있는 거라고 한다. 그렇지만 유튜브에서 ‘folding fan dance’를 검색하면 부채춤이 아시아 춤이나 중국 춤으로 오인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걸 보면 케이팝 가수들이 한국 전통춤을 활용해 안무를 짜거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소부터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일이 왜 중요한지 알게 된다.


한 손으로 쥐기에 조금은 큰 쥘부채로 춤을 추느라 수업 이후 며칠 동안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부채춤에 대해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건 한복 치마를 입고 부채춤을 추는 일이 단순히 즐겁기만 해서는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입는 원피스나 긴치마와는 다르게 조금 더 격식을 차린 듯한 느낌을 주는 한복 연습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고 있으면 스스로가 특별한 존재가 된 듯한 착각이 들어 이 기분과 경험을 마구 알리고 공유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저절로 일게 된다. 수업을 한 달이나 빼먹은 사람치고는 애정이 넘쳐서 그 부분이 민망하긴 하지만 누군가는 내가 올린 인증숏 한 장 혹은 쓴 글 한 편으로 한국무용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더 용감하게 떠벌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이 즐거움을 보다 더 소문낼 수 있게 얼른 무용 수업 날이 다가왔으면 좋겠다. 다음 주는 어린이의 방학으로 빠지게 되겠지만 방학이 끝나는 대로 다시 부채춤을 출 수 있다 생각하니 그날이 더욱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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