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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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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Apr 17. 2023

곱창, 대창, 막창이 좋아 (지사제와 함께라면)






장기능이 별로 좋지 않다. 임신과 출산 이후로 더 안 좋아졌다. 그래도 모유수유를 끝낸 후론 필요할 때마다 지사제를 먹을 수 있으니 괴로움이 십 분의 일로 줄어들었다. (남은 십 분의 일은 계속 이렇게 살다 간 언젠가 장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공포랄까)

암튼 장이 좋지 않아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거의 탈이 나곤 하는데 장에는 좋지 않다는 매운 음식, 기름진 음식, 날 것, 과일 등은 바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스트레스받을 때면 생각나는 뼈 있는 닭발, 몸이 조금 안 좋을 때면 생각나는 뜨끈한 갈비탕, 철마다 골라 먹는 맛이 있는 생선회, 그리고 제철 과일들을 어떻게 안 먹고 살 수가 있냐고요. 물론 간이 적게 된 국물요리나 식감을 살린 구운 채소 등도 좋아한다. 

최근에 가장 즐겨먹은 나의 적(정확히는 나의 장의 적)은 내장 삼종세트다. 오랜만에 냉장고를 청소하다 냉동실에서 꽁꽁 얼어있던 막창과 대창을 발견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된 이 여정은 일주일째 이어졌다. 

1차로 프라이팬에서 초벌구이를 한 후 2차로 오븐구이를 해, 겉이 바삭해진 막창과 대창은 술을 부르는 맛이었고 그래서 냉장고에서 꺼내온 술과 함께 먹고 마셨다. 그 후로 오븐에 먼저 구운 후 프라이팬에 옮겨 구워 먹기, 프라이팬으로 굽고 오븐에 옮겼다 다시 프라이팬으로 굽기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오븐과 가스레인지를 더럽혔다. 맛있게 구워진 대창과 막창은 맥주와 함께 하기도 했고 또 와인과 함께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내장은 이틀 째부터 성이 나있는 상태)

한 번 성이 난 장은 쉽게 진정되지 않으므로 한동안의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내겐 지사제가 있었고 지사제를 먹으며 곱창전골을 먹고 또 남아있던 막창과 대창을 먹어치웠다. 화장실에 가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진 않지만 속은 계속 부글거리는 느낌. 불안했지만 끝까지 먹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왜냐면 아직 막창과 대창이 남아있었으니까. 

마지막 대창은 프라이팬에 초벌구이를 해주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오븐용 그릇에 담은 후 간장과 올리고당을 일 대 일로 섞고 연겨자와 후추를 넣어 만든 양념장을 부어 오븐에서 한 번 더 구워 주웠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중간엔 그릇에 바닥에 생겨난 기름과 흐른 양념을 키친타월로 제거한 후 다시 한번 더 구워주었고, 바삭, 쫄깃하게 완성된 대창은 또다시 연겨자에 살짝 찍어 수제 맥주와 함께 먹어주었다. 

마지막 날에는 지금껏 기름으로 허옇게 더럽혀진 오븐과 가스레인지 그리고 싱크대를 청소했는데 그것은 정말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뜨거운 물이 참으로 많이 필요한 작업이었고 결국은 얼른 에어 프라이기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먹을 거 청소라도 간편하게 하면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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