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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Apr 17. 2023

엄마의 믹스커피





매일 아침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한다. 그리고 그 매일 같은 통화에 꼭 빠지지 않는 질문은

“엄마, 아침밥은?”

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 답은 ‘응, 지금 커피 마시고 있다’.

그러면 나는 빈속에 무슨 커피냐며 잔소리를 하지만 엄마는 늘 ‘괜찮다 물 먹었다’라고 대답할 뿐이다. 

커피를 마셔야지 정신이 든다는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 한 잔, 집안일이 다 끝나고 쉬면서 한 잔, 이웃분을 만나 또 한 잔, 저녁 식사 후 아빠와 마지막 한 잔을 마신다고 한다. 몸에도 안 좋은 믹스 커피를 왜 그렇게 많이 마시냐며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원두티백을 사다준 적도 있지만 엄마는 몇 번 챙겨 마시는 듯 하더니 다시 믹스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서 체중이 늘기 시작한 엄마는 커피만 끊어도 살이 빠질 것 같은데 믹스커피는 끊지 못하고 오히려 애꿎은 다이어트 보조 식품만 사모으고 있다. 

그런데 아이를 키워가면서 점점 그런 엄마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아기가 태어난 후 하루 24시간이 비좁아 지면서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또 에너지를 내기 위해 나 역시도 단 커피를 찾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남편을 비롯한 다른 가족들은 아기가 어린이집에 가거나 잘 때 함께 자거나, 피곤할 땐 집안일을 조금 미뤄라고 말하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집은 깨끗했으면 좋겠고 아이와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으며 내가 하고 싶은 공부도 일도 다 하고 싶다. 그러다보니 아침 저녁으로 영양제도 열심히 챙겨먹어야 하고 카페인과 당분이 충분히 들어간 커피나 밀크티도 필요하게 됐다. 엄마처럼 믹스커피를 마시진 않지만 매일 따뜻한 우유에 네스프레소 캡슐 두 개, 그리고 연유나 메이플 시럽이 듬뿍 들어간 커피를 마시는 나는 오늘도 아침 밥 대신 커피를 마셨다. 엄마와 달리 장이 좋지 않아 빈속에 우유가 든 커피는 무리지만 영양제와 물을 먹고 그 다음 과일과 함께 커피를 마시면 묵은 피로에도 정신이 조금 차려진다.

엄마처럼 하루에 여러 잔의 커피를 마시지는 않지만 가끔은 오후에도 피로를 느껴 그럴 땐 홍차를 마시곤 한다. 식사를 했을 땐 가벼운 티로, 그렇지 않았을 땐 진하고 달달한 밀크티로. 

예전엔 집에만 있는 엄마가 매일 피곤해 하고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알 수 있다. 전업주부인 나도, 엄마인 나도, 그리고 그냥 나도 포기할 수 없는 내가 되려면 비좁은 하루 틈에서 진한 카페인과 높은 당분의 힘을 빌려야만 한다는 것을. 조금 있으면 어버이날이 다가오는데 이번에는 엄마께 건강을 위해 커피 좀 줄여달라는 부탁 대신 뱃살에 좋다는 건강 보조제를 주문해 드려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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