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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Apr 17. 2023

삼천원의 행복




프라이팬, 냄비, 밀크 팬, 웍, 찜기, 오븐, 그리고 손잡이 석쇠.

이것들은 바로 내가 주로 사용하는 조리도구이다. 프라이팬, 냄비, 밀크 팬은 매일 사용하고 웍, 찜기, 오븐은 이틀의 한 번꼴로 사용하는데, 손잡이 석쇠는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대체 용품이 없어 우리 집에서는 필수품으로 여겨진다. 

마트에서 삼천 원을 주고 구매한 손잡이 석쇠는 건조 오징어를 구워 먹기 위해 구매한 것인데, 날이 갈수록 활용도가 높아져 지금은 더욱 다양한 요리에 사용하는 중이다. 사실 요즘에는 오징어를 석쇠에 구워 먹기 보다는 전자레인지에 바싹 말려서 먹는 걸 더 좋아하지만, 쥐포나 학꽁치 포처럼 말린 생선포 같은 경우는 꼭 석쇠에 구워서 먹고 있다. 생선포는 겉만 태우듯이 굽는 게 아니라 속까지 노릇노릇하게 익혀 말랑하질 때까지 굽는데 속은 익히되 겉은 타지 않게 구우려면 불 조절과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그래도 굽는 게 조금 귀찮아서 그렇지 겉은 바삭, 속은 쫀득하게 익은 생선포는 먹다 보면 술잔보다 손이 더 자주 가게 된다. 

그리고 김, 생김을 구울 때도 꼭 석쇠를 사용한다. 겨울이 오고 맛있는 생김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엄마가 꼭 두, 세 종류의 생김을 사서 나눠주고는 하는데 그러면 나는 그걸 석쇠로 구워 안주로 먹는다. 술 없이 그냥 먹어도 고소한 향에 단맛이 살짝 나서 먹다 보면 항상 세, 네 장은 그냥 먹게 돼서, 시간이 걸려도 꼭 한 장씩 석쇠에 끼워 붉은빛의 생김이 초록빛으로 변할 때까지 약한 불에 이리저리 움직여 구워준다. 그렇게 구워주면 어느 한 부분도 타지 않고 먹기 좋을 만큼 바싹하게 구워져 보기에도 좋고 맛도 훨씬 좋아진다. 

그래도 역시 석쇠가 가장 유용하게 여겨질 때는 완성된 음식에 불향을 입힐 때인 거 같다. 기름기가 많은 재료에 사용하기는 부담스럽지만, 오븐으로 조리를 해서 기름기가 빠질 때로 빠진 고기 같은 경우에는 석쇠에 끼워 불에 가까이 대도 기름이 많이 나지 않아 그리 위험하거나 뒤처리가 귀찮지 않다. 배달시킨 소금구이 치킨이 아쉽게 느껴질 때도 석쇠에 끼워 불향을 살짝 입혀주면 맛있게 먹을 수 있고 오븐에 구운 돼지 등뼈도 석쇠에 끼워 불향을 입히면 밖에서 사 먹는 쪽갈비 구이 못지않게 맛이 좋아진다. 대신 고기에 불향을 입힐 때는 약한 불이 아닌 가장 센 불에 짧게 노출 시키는 편이 겉바속초에 도움이 된다. 가스레인지가 기름으로 범벅될 일도 적고.

주방에 삼천 원이라는 적은 비용으로 이렇게 다양한 재료를 맛있게 조리할 수 있는 조리도구가 과연 얼마나 될까.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지만 하나 구매해두면 음식과 삶의 질이 달라는 게 바로 손잡이 석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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